[뉴페@스프] 몰려드는 이민자들, 미국 정치권이 해결할 수 있을까
2024년 3월 1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24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원래 미국인’이란 표현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닌 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당장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에서,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 집안 출신입니다.

미국 이민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대에 따라 이른바 ‘백인의 범주’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에 건너오는 이민자 대부분은 유럽 출신이었습니다. 미국의 인종 구성 가운데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의 미국보다 훨씬 더 높았는데, 오늘날 센서스에서라면 백인으로 집계할 ‘같은 백인’ 내에서도 출신 국가 등에 따라 타자화가 일어났고, 엄연한 차별이 있었던 겁니다. 예를 들어 100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계 이민자는 백인으로 취급받지 못했으며, (출신 국가는 제각각이던) 유대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사그라든 건 그보다도 더 최근의 일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이자, 엄연히 기득권을 쥔 백인의 범주는 보통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규모와 속도에 따라 바뀝니다. 특정 국가 출신이나 특정 인종의 이민이 빠르게 늘어나 인구 구조가 바뀌면 자연히 관계가 다시 설정되기 마련이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상황이나 환경이 이 잣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이 공격받았거나 전쟁을 벌일 때가 그런데, 1940년대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뒤 (많지 않았지만) 미국 내 일본계 이민자들의 향한 차별이 그랬고,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에 사는 아랍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수시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곤 했습니다.

지난 10여 년으로 한정해 보면, 미국의 이민 문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집단은 단연 라티노 이민자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부터 남으로 쭉 이어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라티노 이민자들은 피부색과 언어, 문화 등이 (백인이 중심이 된) 미국과 달라서 미국 사회에 어울리거나 공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참담한 경제 상황을 피해 더 나은 삶을 꿈 꾸며 미국에 오는데, 미국으로서는 너무 많은 이민자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민에 필요한 요건이 규정돼 있지만, 이를 지킬 수 없어 필요한 서류를 다 갖추지 못한 채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미승인 이민자”도 적지 않습니다.

 

라티노 이민자 유입에 대비하지 못했던 미국 정치권

라티노 이민자들은 꾸준히 미국으로 유입됐습니다. 이민자가 너무 많아 문제가 된 게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란 뜻입니다. 나라 경제가 붕괴해 국민들이 잇따라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난 베네수엘라의 경우처럼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미국으로 오려는 이민 수요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진 상황에서도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이민자 문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은 채 시간을 허비한 정치권의 잘못도 큽니다.

실제로 미국의 이민법은 꾸준히 늘어나는 라티노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전혀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법이 계속 발의돼 상원과 하원 중 한 곳을 통과했지만, 거기까지였죠. 이민 문제에 관한 견해 차를 갈수록 좁히지 못한 민주당과 공화당에 이민은 차라리 정쟁의 소재로 삼는 편이 나은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전문 번역: 미승인 이민자 막기 위한 논의가 ‘정치적 수렁’인 이유는

 

최근 들어 대통령과 상, 하원의 다수당이 모두 같은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 집권 첫 2년(2009~2011)과 트럼프 대통령 집권 첫 2년(2017~2019),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 집권 첫 2년(2021~2023)이 있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의료보험 보장 대상을 확대하는,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추진하는 데 주력하느라 이민 문제가 자연히 뒤로 밀렸습니다. 그러다 오바마 집권 2기인 2013년에 상원이 이민법 개혁안을 냈지만, 공화당이 다수당이던 하원의 반대에 가로막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입만 열면 라티노 이민자를 범죄자로 몰아세워 비방하는 데만 몰두했지 의회와 머리를 맞대고 이민법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점정부였던 첫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데 치중해야 했습니다. 또 인프라 재건 등 바이든이 내건 공약에서도 이민자 문제는 뒷전이었던 데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은 이민법 개혁안을 처리할 기회를 또 놓쳤습니다.

단점정부가 아닌 분점정부에서도 양측이 협의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법도 새로 만들고, 발생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상대방을 협상과 경쟁의 대상보다 파괴하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정치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분점정부에서 의미 있는 법안을 처리하는 건 요원한 일이 됐습니다. 당장 기본적인 정부 예산안부터 처리하지 못해 하원의장이 축출되고, 매번 임시로 늘린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극한의 대치가 벌어지는 게 미국 의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다시 대선의 해가 밝았고, 공교롭게도 공화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다시 후보로 세울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민 문제는 트럼프 집권 1기와 마찬가지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트럼프는 이민자와 외국인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고 의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행정명령 등 대통령의 권한을 동원해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 겁니다. 이미 의회의 반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던 집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국가 출신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책은 거대한 논란만 일으켰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수요는 전혀 줄지 않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제도는 밀려드는 이민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공화당 주지사들의 전략: “난민 편도 여행”

이런 와중에 지난 202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텍사스주 그레그 애보트 주지사와 플로리다주 론 드산티스 주지사 등 남부의 공화당 주지사들이 새로운 전략을 폅니다.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채 미국으로 온 라티노 이민자들을 버스나 비행기에 태워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뉴욕이나 시카고 등 대도시, 매사추세츠주의 마서스 비냐드와 같은 휴양지로 보내버린 겁니다. 대도시 한복판에, 또는 휴양지 공항의 대합실도 아닌 활주로 한켠에 영어를 거의 못 하는 라티노 이민자 수십, 수백 명을 내려놓고 버스, 비행기는 곧바로 돌아갔습니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티켓 없는 “편도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불법 이민자가 넘쳐나 사회적으로 부담되는 상황을 실제로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고상한 척 이상만 부르짖는 위선자들아, 한 번 너희도 직접 곤란한 상황에 처해 봐라.’

민주당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한번 보자는 심산이었을 텐데, 공화당 정치인들의 노림수는 어느 정도 적중했습니다. 민주당 주 정부, 시 정부와 의회는 적잖은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이민자, 난민이 급작스레 유입되는 상황에 대비가 돼 있지 않던 도시, 지방 정부의 관련 예산은 이내 바닥나 버렸습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공화당으로선 이민 문제에 있어 민주당의 무능함을 드러낸 데 이어 민주당에서 내분까지 일어나니 일석이조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이민 문제는 공화당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선전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이민 문제에서 공화당에 더는 끌려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 지도부와 협의해 이민법 개혁안을 들고 나와 공화당과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정치’ 회복 전엔 해결 어려워

공화당과 민주당, 트럼프와 바이든 가운데 누가 더 이민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요? 저라면 한쪽보다는 둘 다 한 발씩 양보하고 뜻을 맞춰야만 가능하다고 답하겠습니다.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통해 펼 수 있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엔 이민 문제처럼 환경이 바뀌면서 생겨난 문제는 그 바뀐 환경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만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데, 그러려면 법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못지않게 법을 만드는 입법부도 아주 중요합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의회와 진지하게 협상해 장기적인 효과를 염두에 둔 법안을 제정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민 문제는 지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설사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당이 같은 단점정부가 탄생하더라도 지난 흐름을 되짚어봤을 때 다음 중간선거에서 곧바로 다시 분점정부로 바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을 제정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과 의회의 협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민자를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트럼프의 혐오 발언이나, 난민들을 사람이 아닌 짐짝처럼 비행기, 버스에 실어 나르는 공화당 주지사들의 ‘쇼’는 기껏해야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의제에 발목이 잡혔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민 문제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던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 협상하며, 유권자들에게도 이를 알려야 합니다.

상대방 당과 협상하고 때로 필요하다면 한 발씩 양보하고 손을 잡기도 하는 건 비겁한 일이나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극단으로 치닫는 대결 양상을 떠올리면, 과연 미국에서 오랫동안 실종된 ‘정치’가 되살아날 수 있을지 무척 우려스럽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선과 함께 치르는 의회 선거를 통해 새로 꾸려질 다음 회기 의회가 필요한 정치력을 발휘해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