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몸통’ 트럼프를 기소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 다음은?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2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19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마지막 발표는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조사 대상인 사건과 사람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함을 넘어 ‘역사적인’ 특조위라고 쓴 미국 언론도 많습니다.
미국 하원은 임기가 2년인데, 1월 6일 의사당 테러 특조위는 2021년 7월 1일에 꾸려졌으니, 위원 아홉 명은 자신의 임기 대부분을 2021년 1월 6일에 일어났던 일을 조사하는 데 쓴 셈입니다.
의회가 필요에 따라 조사권을 발동해 청문회를 열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번 특조위는 전례 없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며,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조사인 만큼 그 어떤 의회 조사위원회보다 세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특조위는 19일 1년 6개월의 대장정을 마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형사 기소해야 한다고 법무부에 권고했습니다.
의회 조사위원회 발표 영상 조회 수가 수백만
오늘은 마지막 발표의 하이라이트를 짚어보겠습니다. 미국 국회방송인 씨스팬(C-Span)을 포함해 여러 방송사가 발표 전체를 실황으로 중계했고, 요약본도 여러 개 올렸지만, 1월 6일 특조위 유튜브 채널이 올린 영상만 해도 조회 수가 12만 회가 넘습니다. 특조위를 향한 세상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홉 명의 위원 가운데 위원장 베니 톰슨(미시시피)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이 7명, 부위원장 리즈 체니(와이오밍) 의원을 포함해 공화당 의원이 2명입니다.
베니 톰슨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1월 6일 테러는 미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송두리째 뒤흔든 비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 있는 사람이 응당한 책임을 지고 필요하면 처벌받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당인 공화당을 사당화하면서 당에는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들만 남았다고 설명해 드렸죠. 그런 공화당 의원 중에 용감하게 트럼프를 겨냥한 특조위원으로 참여한 두 명은 누굴까요?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기도 한 리즈 체니 의원과 애덤 킨징거(일리노이) 의원은 둘 다 일찌감치 트럼프와 거리를 둔 인물입니다. 1월 6일 테러 이후 하원은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임기 중 두 번째로 탄핵했는데, 이때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 10명 가운데 둘의 이름이 있습니다.
특히 리즈 체니 의원은 트럼프와 척을 진 대가로 공화당 당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의원총회 의장직에서 축출됐고,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는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가 지지한 해리엇 헤이지만 후보에게 완패해 이번 의회 임기가 끝나면 야인이 됩니다. 톰슨 위원장의 모두 발언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체니 의원은 마찬가지로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미국을 향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며,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를 언급했습니다.
1861년 4월, 링컨 대통령이 북부군(Union Army)을 소집했을 때 제 고조할아버지께서는 지체 없이 입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4년간 용감히 싸우셨죠. 미국 시민은 자유로운 의사를 모아 구성한 정부를 지키고자,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매일 출퇴근 길에 의사당 건물 중앙 로툰다 홀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자유롭게 구성한 정부, 이를 보장하는 평화로운 권력 이양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선조들이 피 흘려 이뤄낸 소중한 민주주의를 어느덧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우리에게 1월 6일 의사당 테러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내내 고조할아버지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킨징거 의원은 선거구 개편 이후 자신의 지역구가 동료 공화당 의원의 지역구와 합쳐지자, 지난해 일찌감치 중간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체니와 킨징거 의원은 자리를 보전할 걱정을 안 해도 됐기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보낸 온갖 협박과 비난에 굴하지 않고 특조위 업무를 끝마칠 수 있던 겁니다.
하원, 트럼프 대통령을 형사상 기소해야 한다고 권고
하원은 특조위원 9명 가운데 4명을 변호사 출신으로 꾸렸습니다. 1시간 반에 걸친 마지막 발표는 트럼프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채워졌습니다. 이 밖에도 인상적인 발언이 많았지만, 다 소개하기 어려우니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특조위는 1년 6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의사당 테러의 전모를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의회에는 범죄자나 범죄 용의자를 법정에 세울 권한이 없습니다. 이는 법무부와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이죠. 대신 특조위는 형사 기소를 권고(criminal referral)하며, 그 근거를 자세히 나열했습니다. 형사 기소 권고란 의회가 법무부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다음 사람이 다음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도 필요한 수사를 진행해 이들의 범죄 혐의가 밝혀지면 이들을 기소해달라.”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특조위 마지막 발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결론 부분 발표는 제이미 라스킨(메릴랜드) 의원이 맡았습니다. 라스킨 의원이 정리한 혐의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 18조 1512절 (c)항: 누구도 미국 정부가 수행하는 공적인 업무 절차를 방해하거나 오도하거나 훼방해선 안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사 존 이스트만을 비롯해 의사당 테러를 기획한 핵심 세력들은 선거 결과에 따라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도록 한 미국 제도의 핵심 절차를 방해하려 했으므로, 이 조항을 위반했다.
- 18조 371절: 누구도 미국을 상대로 사취 음모를 꾸며선 안 된다. 미국 정부가 법에 따라 수행하는 기능을 방해하거나 지연하거나 가로막는 행위가 사취에 해당하는데, 트럼프와 이스트만을 비롯한 핵심 세력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등 거짓말을 일삼으며, 사취를 음모했다.
- 18조 1001절: 누구도 일부러 연방 정부를 속이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고의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와 이스트만을 비롯한 핵심 세력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동시에 실제 미국 유권자가 던진 표가 아닌 표를 만들어내거나 선거인단을 겁박하거나 선거인단의 의사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부정하게 뒤바꾸려 했다.
- 18조 2383절: 누구도 미국을 전복하려는 내란을 기획하거나 선동하거나 가담해선 안 된다. 내란죄는 미국 헌법이 직접 금지하는 중대 범죄로, 내란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을 박탈당해 연방정부나 주정부 선출직을 맡을 수 없게 된다.
미국 법전(U.S.C.,United States Code) 18조가 형법과 형사소송법인데, 라스킨 의원에 따르면 네 가지 혐의 모두 18조 형법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습니다.
라스킨 의원은 형사 기소 권고의 근거가 될 구체적인 혐의 네 가지를 말하기 전에 공정성의 원칙을 언급했습니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테러는 미국 헌법과 제도를 향한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그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개인의 범죄 혐의에 관해 이미 수사를 마치고 대부분 피의자를 기소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번 일은 단순한 일회성 폭동이 아닙니다. 미국 시민이 선거를 통해 표시한 의사를 무시하고 선거 결과를 마음대로 뒤집으려는 계획을 처음부터 세우고, 공격을 부추긴 세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시를 따른 보병은 감옥에 가는데, 공격을 지시한 장군과 우두머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적어도 우리의 사법제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의사당에 쳐들어간 폭도들은 대다수 단순 가담자인 보병이고, 책임져야 할 장군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워싱턴 D.C.로 불러 모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연설을 했으며, 의사당 건물이 난장판이 되는 모습을 몇 시간째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로 지켜보고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 트윗을 올린 트럼프 대통령이 몸통이란 거죠.
이제 공은 법무부로 넘어왔습니다. 마침 지난달 법무부가 임명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1월 6일 의사당 테러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계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의회 특조위의 보고서를 채택하거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지만, 의사당 테러를 방조하고 부추긴 몸통이 트럼프였다는 증거와 논리를 이렇게 자세히 모아둔 보고서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문번역: 역사는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어떻게 기억할까?
음모론도 수출이 될까?
1월 6일 의사당 테러 특별조사위원회의 마지막 발표는 미국에서도 많은 관심이 쏠린 사안이었지만, 이번 칼럼이 특히 더 눈에 들어온 이유는 글의 도입부 때문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어기면서까지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던 트럼프와 트럼프주의는 폴그린이 칼럼에서 묘사한 1930년대 나치의 모습과 닮은 꼴이기 때문이죠.
물론 폴그린도, 폴그린이 강력히 추천한 레이첼 매도우의 팟캐스트 울트라도 트럼프나 트럼프 지지자들을 곧바로 나치와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독일에서 쿠데타를 모의하다 대거 검거된 극우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자들과 꽤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분명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독일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제국의 시민들에 관해선 스프에 올라온 이 글에 자세히 정리돼 있습니다.)
미국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상정하고, 지금 자신을 향한 공격도 모두 딥스테이트의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나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단 한 번도 주권 국가였던 적이 없으며, 유대인 자본을 비롯한 어둠의 세력이 독일과 유럽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제국의 시민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통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두 세력은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거부하며, 백신 회의론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서로 가짜뉴스와 유사과학, 음모론을 주고받았습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이들만 공유하는 거대한 반향실을 지은 셈입니다.
경쟁국이나 적국에 조력자를 심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등의 활동은 어느 나라 정보국이든 다 하는 일일 겁니다. 그렇더라도 나치 독일이 인접한 유럽 나라도 아니고, 미국의 정부, 의회에 이렇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미국 의회는 1938년 해외 기업이나 로비 단체들이 미국에서 로비 활동을 벌일 때 그 내용을 미국 정부에 신고하도록 한 외국대리인 등록법(FARA, 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을 제정했습니다. 당시 법을 제정한 가장 큰 이유는 나치와 공산주의 세력이 미국에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처음 읽었을 때 나치나 공산주의가 미국에 얼마나 활동했길래 저런 이유를 달았을지 의심했었는데, 폴그린의 칼럼을 보면 나치의 영향력은 실제로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미국이 그 역사가 잊히도록 방치한 것이죠.
특조위의 조사 결과를 법무부와 스미스 특검이 얼마나 수용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지 못지 않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 미국 정치와 역사를 보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