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미국 대법원 돕스 판결, 중간선거 뒤흔들까?
미국 대법원은 지난 여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이로써 반세기 동안 미국 헌법이 보장해 온 여성의 임신중절권은 더는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게 됐습니다. 앞서 5월 유출된 판결문 초안에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사무엘 앨리토 대법관은 6월 실제 판결문에서도 임신 중절은 대법원이 옳고 그름을 가릴 사안이 아니라 시민이 선출한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로 대 웨이드를 폐기한 이른바 돕스(Dobbs) 판결의 의미와 영향은 뉴스페퍼민트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했고,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도 자세히 다뤘습니다.
당시 뉴스페퍼민트는 특히 돕스 판결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여러 분석을 전했습니다. 민주당은 분노한 여성들이 선거에서 공화당을 심판해줄 거로 기대하지만, 과연 표심이 정말로 결집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할 만한 카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유권자 심리에 기대는 건 다분히 민주당의 덧없는 희망사항처럼 보이기도 했죠.
그런데 올해 치른 여러 보궐선거와 특별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들의 표심을 보면, 민주당의 희망사항이 아주 덧없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선거는 원래 여당에 불리한 ‘정권 심판’ 선거이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간신히 반등했어도 여전히 높지 않습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쪽은 아직 공화당이지만, 공화당도 기름값이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한창이던 지난 봄 만큼은 안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9월 7일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의 도입부였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민주당에게 희망이 있다는 분석이 한창 나오던 때였죠. 그러나 선거가 임박할수록 이번 선거는 전형적인 중간선거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즉 기본적으로 중간선거에서는 집권 여당을 심판하는 기조가 강하게 나타나고,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치안, 이민 등 민주당에 불리한 사안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내일 치를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전반적인 우세가 점쳐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표적인 블루 스테이트인 뉴욕주에서도 공화당이 하원에서 의석을 많이 빼앗아 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 표심의 원인에 관해서는 차후에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선 두 달 전에 짚었던 흐름을 복기하는 차원에서 지난 글을 예정대로 시차 발행합니다.
먼저 이 표를 함께 보시죠.
파이브서티에잇이 정리한 표인데, 제목처럼 민주당은 돕스 판결 이후 치른 선거에서 눈에 띄게 더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원래 지역구의 성향(Partisan Lean)과 실제 득표율 차이(Vote Margin)를 비교해 표심의 변화(Margin Swing)를 정리한 건데, 돕스 판결 전에 치른 보궐선거, 특별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득표율이 평균 2%P 올랐습니다. 그런데 돕스 판결 이후에는 민주당이 무려 9%P나 더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물론 전국적인 선거는 아직 치른 적이 없으므로, 표본이 많지 않은 이 선거 결과만 놓고 중간선거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파이브서티에잇의 나다니엘 라키치 기자는 민주당의 득표율이 뚜렷이 오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썼습니다.
지난달 23일 뉴욕주는 두 군데 지역구에서 하원 보궐선거를 치렀습니다. 19번 지역구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곳인데, 여기선 민주당 팻 라이언 후보가 공화당 마크 몰리나로 후보를 2%P 차이로 꺾었습니다. 파이브서티에잇 분석에 따르면 원래 공화당이 4%P 앞설 것으로 예측되던 곳이므로, 민주당 쪽으로 표가 6% 정도 더 쏠린 셈입니다. 공화당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던 23번 지역구에서도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공화당 조 셈폴린스키 후보가 예상대로 승리하긴 했지만, 민주당 막스 델라 피아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7%P로 예상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민주당은 이처럼 경합 지역구에서 잇달아 승리하거나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지더라도 표 차이를 많이 줄인 ‘졌잘싸’ 선거가 이어지자 조금씩 고무되는 모습입니다. 보궐선거에서는 승패 자체보다도 원래 해당 지역의 표심과 투표 결과 드러난 표심의 차이를 읽어 전반적인 여론의 추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 지난 6월 말부터 민주당 후보들이 눈에 띄는 선전을 펼쳤습니다.
정치 컨설턴트 탐 보니어(Tom Bonier)도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보궐선거 결과가 주는 메시지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니어는 보궐선거 결과보다도 돕스 판결 이후 투표하기 위해 등록하는 여성 유권자들이 급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투표를 하려면 사전에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주목한 선거는 캔자스주에서 치러진 주민투표였습니다. 지난 8월 2일 캔자스주는 대법원의 돕스 판결에 따라 캔자스주 헌법에 임신중절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삽입할지를 주민투표에 부쳤습니다. 캔자스주 유권자들은 반대 59%, 찬성 41%로 분명한 의사를 표시합니다. 임신중절권은 법이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았던 거죠. 캔자스주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56%)가 바이든(42%)을 손쉽게 꺾은 보수적인 주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다.
대법원이 돕스 판결을 한 6월 24일 이후 캔자스주에서 새로 등록한 유권자의 69%가 여성이었습니다. 앞선 6개월간 신규 유권자 등록 정보를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3%P 많을 뿐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돕스 판결 이후 40%P로 급증한 겁니다. 당장 주민투표를 예고했던 캔자스주에 비하면 다른 주에서 새로 등록한 여성 유권자 증가세는 완만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돕스 판결로 인해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가 실제로 어려워진 주일수록, 또 임신중절권과 관련해 오는 11월 선거에 걸린 게 많은 주일수록 새로 등록한 여성 유권자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뉴욕 19번 지역구 선거에서도 새로 유권자로 등록한 여성들의 지지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 등록 유권자 가운데는 여성이 52%로 남성보다 딱히 많지 않았지만, 우편투표나 사전 투표로 의사를 표시한 여성 유권자는 남성 유권자보다 18%P나 많았습니다.
돕스 판결에 대한 여성들의 거센 분노가 실제 투표에 반영되자, 몇몇 공화당 후보들은 부랴부랴 이미지 세탁에 나섰습니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주 상원 후보인 블레이크 마스터스(Blake Masters)는 임신중절권을 강력히 비판해 왔는데, 최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임신중절을 극단적으로 제약하거나 비난하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순화했습니다.
아직 남은 두 달 동안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공화당은 야당으로서 누릴 수 있는 유리함을 자꾸 잃어가고 있습니다. 국가 기밀이 담긴 문서를 집에 버젓이 가져다 놓았다가 자택을 압수수색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선거에 도움이 안 되고 있지만, 민심이 민주당 또는 ‘보수 심판’으로 돌아선 데는 대법원의 돕스 판결이 분명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따놓은 당상’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와 같은 수식어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중간선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선호투표제에 관해 설명하며 예로 들었던 알래스카주 하원 특별선거 기억하시나요? 부재자투표, 우편투표 결과를 다 더한 뒤 즉시 결선 투표를 집계한 결과 이변이 연출됐습니다. 민주당 펠톨라 후보가 공화당 페일린 전 주지사를 꺾은 겁니다. 공화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알래스카주에서 반 세기 만에 민주당 하원의원이 탄생했습니다. 두 후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2년 임기를 걸고 다시 한번 맞붙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주 필라델피아 연설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관전 포인트가 많아지는 중간선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