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내분, 정치적 이념이 아닌 문화 전쟁이 핵심입니다
워싱턴포스트, Philip Bump
조지아주에서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하원의원으로 당선되기 전에 했던 말들(각종 음모론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을 향한 폭력, 학교 총기 난사 사건과 9/11 조작설에 대한 옹호)을 두고 그린의 편을 드는 공화당 의원은 (적어도 공개석상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했던 리즈 체니 의원은 당내에서 그린 의원보다 훨씬 더 큰 저항에 부닥쳤죠. 리즈 체니 의원의 하원 총회 의장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고 표를 던진 공화당 동료는 60명이나 됐습니다. 반대로 그린 의원은 상임위에서 축출되기는 했지만, 무려 199명의 공화당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맥락이 있습니다. 체니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반면, 그린은 어느 정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죠. 문제가 된 발언들이 모두 당선 전에 나온 것이라는 점도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는 없다”는 주장의 근거처럼 공화당원들에게 좋은 구실이 된 게 사실입니다. 동료 의원을 상임위에서 쫓아내는 껄끄러운 결정을 민주당에 넘겨버릴 수 있었던 것도 공화당 의원들은 내심 기뻤겠죠. 민주당을 탓하는 동시에 그린 의원에 대한 처벌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말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 모든 사태는 앞으로 공화당이 얼마나 “트럼프주의”를 고수할 것이냐의 문제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딱 떨어지고 이해하기도 쉬운 프레임입니다. 공화당이 트럼프의 행동에 비판적인 구성원에게 더 화를 낼 것이냐, 아니면 트럼프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를 모방하는 쪽에 더 화를 낼 것이냐의 문제로 말이죠.
하지만 이 프레임은 불완전합니다. 진짜 문제는 공화당이 정치적 이념에 초점을 두는 정당이 될 것이냐, 아니면 문화 전쟁에 집중하는 당이 될 것이냐입니다.
체니 의원과 그린 의원은 이 두 가지 길을 보여주는 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액시오스(Axio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다수는 두 의원에 대해 별 의견이 없습니다. 공화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그린 의원에 대해 잘 몰라서 딱히 낼 만한 의견이 없다고 답했죠. 민주당 지지자들의 경우 그린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이는 드문 현상이 아닙니다. 민주당 소속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역시 보수 매체 덕분에 공화당원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으니까요. 이번 조사에서도 체니와 그린의 시각 중 어떤 쪽에 더 끌리냐는 질문에 공화당 지지자 10명 중 8명이 두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호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논의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경쟁자들과 달리 보수 매체의 통화(currency)인 문화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애초에 미국을 더 낫게 만들 정책이나 아이디어를 앞세우는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권자들이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대놓고 비웃는 쪽이었죠. 대신 그는 이민, 테러리즘, 임신중절과 같이 정책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민주당과 전력을 다해 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실질적인 통치 행위를 거의 하지 않을지언정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력을 무기 삼아 좌파와 싸우면서 그 약속을 지켰죠.
“트럼프주의”는 트럼프 한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가 공화당 정치의 최전선으로 끌고 들어온 문화 전쟁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합니다. 특히 법안을 통과시킬 희망이 거의 없는 의원들에게 어필하죠. 법안을 통과시키는 대신 의원직을 활용해 매트 개츠 의원처럼 폭스뉴스 죽돌이가 되거나, 로렌 보버츠 의원처럼 총기 옹호론자로 이름을 떨칠 수 있으니까요.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에 대한 변호 양상을 보자면, 이 문화 전쟁이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하이오주의 짐 조던 의원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딱히 그린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비판을 “캔슬 컬처(cancel culture, 남들과 다른 의견을 표출했다가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하고 탄압을 받게 된다는 주장)”라는 더 큰 내러티브와 연결하려 했습니다. (캔슬 컬쳐는 미국 우파가 좌파를 비판할 때 자주 끌어오는 개념입니다.) 애덤 킨징어 의원에 따르면, 그린 의원 본인도 공화당 동료 의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그린 의원 한 사람이 한때 유대인들이 쏜 레이저가 캘리포니아 산불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공화당이 이런 터무니없는 의견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듯한 집단으로 전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론장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문화 전쟁은 당이 떨어졌을 때 급히 단것을 먹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야당이 되면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어렵지만, 정치적인 주제를 평가하거나 법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그에 비해 트윗을 올리거나, 폭스뉴스에 출연해 리버럴들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죠.
폭스뉴스의 계산도 같습니다. “캔슬 컬쳐”에 대한 의견을 갖기는 코로나 구제안에 대한 의견을 갖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우측에서 오로지 문화 전쟁에 전념하는 경쟁자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는데, 폭스가 여기에 참여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폭스뉴스는 연방 정부 적자 보도보다 “캔슬 컬쳐”에 대한 논의에 40% 더 많은 방송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 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폭력 사태를 낳게 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당이 될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 이견이 존재할 수 있는 당이 되려는 걸까요? 허구한 날 좌파가 뭘 하고 있는지를 놓고 싸우면서, 상대 당은 미국을 망하게 하려고 혈안이 된 사회주의자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당이 되려는 걸까요?
그린은 문화 전쟁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의원 자리를 얻어냈습니다. 한 선거 홍보 영상에서 그녀는 AOC와 일한 오마르 의원의 얼굴을 배경으로 장총을 든 채 “우리나라를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낼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과거 발언으로 비난을 마주하자, 그린 의원은 “민주당의 유일한 목표는 공화당과 우리의 일자리, 우리 경제,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삶을 파괴하고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하느님의 창조물을 지우려는 것뿐”이라며 민주당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는 그린 의원 개인의 반성보다는 공화당이 앞으로 어떤 정당이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