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지금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disunity)하는 것”
크리스티안 아만포(CNN 앵커, 이하 아만포): 기술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인류가 지금과 같은 위기를 겪은 적이 또 있었다고 보시나요?
유발 하라리(이하 하라리):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대유행하는 전염병은 적어도 지난 100년 안에는 없었다고 봅니다. 즉,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생전에 겪어본 적 없는 가장 끔찍한 전염병을 목도하고 있는 거죠.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무섭고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인류의 역사를 좀 더 넓고 길게 살펴보면,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래도 현대 인류가 새로운 전염병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가장 잘 갖추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아만포: 왜죠?
하라리: 의학이 발달했으니까요. 14세기에 아시아와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생각해보면 전체 인류의 30~50%가 절멸한 끔찍한 전염병이었지만, 그때 인간은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어요. 그럴 만한 과학적 지식이 없었죠. 이번 코로나19는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유전자 지도를 파악하는 데 2주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류는 적어도 누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가려내는 검사를 재빨리 할 수 있게 되었죠. 물론 바이러스의 유전자 지도를 그렸다고 바이러스를 곧바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지금 인류는 바이러스에 맞설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만포: 그렇다면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공포와 혼란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하라리: 지금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disunity)하는 겁니다. 국가들끼리 서로 돕지 않고 필요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으며 각자 갈 길을 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습니다. 신뢰의 부족도 문제인데, 비단 정부나 국가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끝에 반목하게 되는 상황이 올까 가장 걱정됩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신뢰를 갉아먹고, 국가 간에도 연대하기보다 갈라서고 다투는 일이 특히 많았습니다. 세계가 전염병이 창궐하면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해왔는데, 그러던 중에 코로나19가 터진 겁니다.
2008년 경제 위기를 생각해 봅시다. 물론 금융시장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경제 위기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다르지만, 모든 인류가 고통받고 극복해야 하는 위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리더들이 있었습니다. 그 리더들은 세계적으로 대체로 신뢰를 받았고요. 이 리더들이 서로 힘을 합친 덕분에 어쨌든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죠. 그러나 특히 지난 4년 사이 우리는 국제적인 시스템과 신뢰가 잇따라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앞서 2008년 금융위기와 2014년에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책임 있는 리더의 역할을 맡았던 미국은 지금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2016년 선거로 당선된 트럼프 행정부는 시작부터 미국은 전 세계의 리더가 될 생각이 없다고 천명했습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와 친구로 지내는 데도 관심이 없으며, 오직 미국의 이해관계만 최우선으로 놓고 행동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죠. 미국이 설사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봤자 예전처럼 미국을 따르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나만 소중하고, 내가 제일 먼저야!”라고 외치는 이가 리더로 성공한 사례는 없거든요.
이렇게 책임 있는 리더도 없고, 국제적인 협력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 곳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면 그게 지구 어디든 순식간에 모든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바이러스를 제때 억제하지 못하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진화하는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사실 2014년 에볼라도 서아프리카에 있는 한 환자에게 달라붙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뒤 전염력이 4배나 강화됐고, 결국엔 끔찍한 팬데믹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 어디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인류는 똘똘 뭉쳐서 바이러스에 맞서야 합니다.
아만포: 똘똘 뭉쳐야 한다는 점은 잘 알겠는데요, 최근 들어 득세한 포퓰리즘이나 국수주의 성향의 정부가 “이게 다 세계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지금은 국경을 닫고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또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뭉치자”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하라리: 고립(isolation)은 절대로 전염병을 막고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정보(information)를 최대한 빠르고 널리 공유하는 방법뿐이에요. 지금 지구상에서 전염병이 도는데 울타리를 치고 국경을 닫는다고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확실하게 고립되려면 중세 시대도 아니라 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 인류가 그렇게 역행하는 건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죠. 지금 가장 확실하게 해야 할 경계선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선인 국경이 아녜요. 대신 인간의 세상과 바이러스가 사는 세상 사이에 쉽게 넘나들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세우는 일이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에 둘러싸여 함께 살고 있어요. 인간과 함께 지구에 사는 동물에게도 다양한 바이러스가 있고, 지역마다 다른 바이러스가 있기도 하죠. 그러나 원래 인간 세계에 있지 않던 바이러스가 인간 세계로 어떻게든 넘어오게 되면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바로 그래서 장벽을 높이 쌓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박쥐에게만 있던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인간 세계로 들어와서 인간의 몸에서 살아남고 인간의 행동 양식에 적응해버리면 그때 가서 그 바이러스와 싸우는 일은 정말 어려워집니다.
지구상의 다른 어딘가에서 발발한 전염병을 국경을 잘 닫으면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마디로 환상에 불과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국경을 닫는 대신 인간 세계로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함께 막아야 합니다.
아만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하라리: 전 세계적으로 유행병에 함께 대처하는 의료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서아프리카든 이란이든 중국이든 어디서든 발생한 병을 그저 그 지역, 그 나라, 남의 공동체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들어와선 안 되는 인간 세계로 뚫고 들어왔다면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조직도 더 강화해야 하고, 국제적인 연대도 더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의료 장비든 인력이든 보낼 수 있는 걸 보내서 돕고, 무엇보다도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적인 지원도 곧바로 이뤄져야 합니다. 전염병이 처음에 특정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칩시다. 이때 해당 정부가 바이러스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당 지역을 봉쇄하고 경제활동을 중단해버리면 그로 인해 받게 될 경제적 타격이 두려워서 전염병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적잖은 경우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흐르는 시간이 전염병을 막는 데 꼭 필요한 절체절명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타격이 좀 있더라도 다른 나라가, 이웃 지역과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손실을 보전해줄 거라는 신뢰를 미리 쌓아둬야 합니다. 지체없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 필요한 방법을 다 동원할 수 있도록 말이죠. 다른 나라에서 시작된 전염병이라도 초기에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돕지 않아 바이러스가 퍼지면 결국 제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나도 이를 피해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초반에 서로 돕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아만포: 어쨌든 이제는 바이러스가 곳곳에서 창궐해 팬데믹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퍼진 바이러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는 늦었지만 부랴부랴 국경을 닫고 여행을 금지하는 등 조치에 나섰고요. 이건 어떻게 보세요?
하라리: 특히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보면 회원국 정부들이 각각 따로 판단을 내리고 대책을 세워 집행하고 있죠. 유럽연합이라는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여요. 오히려 그래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유럽연합이 처음 내건 그 가치에 걸맞은 의미 있는 제도라는 걸 입증할 기회가 왔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이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를 돕는 데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탈리아 국민은 물론 유럽연합 전체가 그 효용을 전 세계에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는 수많은 유럽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유럽연합이라는 제도 자체를 붕괴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염병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아만포: 사회적 영향력에 관해 여쭤볼게요.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무엇보다 믿을 만한 소식을 알려주는 곳도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더 스스로 고립되는 쪽을 택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하라리: 우선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신뢰가 곳곳에서 무너져내렸다는 점입니다. 정부를 믿지 않고, 언론이 전하는 정보를 믿지 않는 사람이 특히 최근 들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격리 조치가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일 만큼 제대로 이뤄지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져내린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들이 행동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감시 체계가 엄청나게 강화될 거라는 점입니다. 평소 같으면 큰 저항에 부딪혔을 이런 정책이 코로나19로 일어난 준전시 상황 때문에 용인되고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난 다음에도 생체학 신호를 포착하고 추적해 기록하는 감시 체계는 계속 살아남아 우리를 옥죌 수 있습니다. 이런 감시 체계는 겉으로는 다음에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르는 전염병의 창궐을 예방하기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겠지만, 실제로는 얼마든지 전체주의 정권의 탄생과 유지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악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라 부르는 영역을 모두 지워내는 전례 없이 막강한 감시 체계의 등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온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 모두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 만큼 공중 보건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를 위해 프라이버시 문제는 잠시 미뤄도 좋다는 목소리를 아마 이기지 못할 겁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는 대신 프라이버시는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환경에 살게 될 겁니다.
물론 지금 인류가 개발한 기술은 대단히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인류는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전염병의 발발을 아주 일찍 감지하고 진단할 수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동선을 모두 파악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억제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인류를 효과적으로 관찰하고 감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정확히 다른 걸 관찰하고 감시하는 데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말이죠. 이런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던 것들을 어떤 의미에선 유례없이 빨리 퍼진 이번 전염병이 싹 치워줬고, 전체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질 길을 닦아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만포: 무시무시한 전망과 논리를 이야기해주셨는데, 사실 인간이 원래 스스로 고립하는 걸 싫어하는 종(種)이잖아요? 이탈리아에서는 수만 명이 그저 원래 일상생활하듯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려고 모이려다 정부 지침을 어겨 강제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뉴스도 나왔죠. 집에 갇혀 지내다 보면 외로움에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감금증후군(shut-in syndrome)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런 문제도 사실 사회 전체적으로 염려해야 할 문제 아닌가요?
하라리: 인간이 전염병에 취약한 이유가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시다시피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전염병의 균, 바이러스는 정확히 사람이 맺은 관계망을 따라 옮고 퍼져 나갑니다. 어떻게 보면 바이러스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장 잘하는 행위를 이용해 자기들이 성공을 거두고 반대로 인간을 위협하고 있어요.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는 서로 만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고, 또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서로 도와주려는 본능이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아프면 당연히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아니 여건을 바꿔서라도 내가 직접 가서 보살피고 도와주려 하잖아요. 정서적으로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손을 꼭 잡아주거나 포옹을 하고 볼을 비비기도 하죠. 생각해 보세요. 바이러스가 정확히 방금 말한 경로로 퍼지잖아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의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를 믿고, 그래서 그 정보를 신뢰한다면 사람들은 적어도 전염병이 진정될 때까지는 사람이라서 으레 하고 싶은 행위를 자제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물리적인 접촉을 삼가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시 모를 바이러스가 옮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겠죠.
둘째는 전체주의 접근법입니다. 이는 현대 기술의 발달 덕분에 가능해진 새로운 방법으로 중세 시대 때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전체주의 접근법이란 그 기술을 활용해 구축할 수 있는 최대한 강력한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보다 공중 보건에 압도적으로 더 큰 가치를 두고 전염병에 직접 맞서는 겁니다. 이미 지금 우리는 체온계를 입에 물거나 귀에 꽂지 않아도 멀리서 떨어져서 사람의 체온을 잴 수 있습니다. 체온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을 가려내고 나면, 그 사람이 오늘 하루 어디서 누굴 만나 무얼 했는지도 모두 추적해서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누가 정부 지침을 어기고 다른 사람을 만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으며, 볼에 뽀뽀를 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데 일조했는지 처벌할 증거를 모으는 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믿지 않고,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그 정보와 지침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강제하는 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건 강력한 감시 체계가 뒷받침하는 전체주의 정권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정말 큰 위험을 내포한 문제인 겁니다. 부디 인류가 그 방향으로는 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