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도시전설(Supermyth): 도시전설을 해결하는 것처럼 속이는 도시전설(2/2)
2016년 5월 27일  |  By:   |  과학  |  No Comment

허술한 인용 때문에 벌어진 이 모순적인 이야기가 “심각한, 그러나 다소 뻔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고 레크달은 내게 말했습니다. 뽀빠이와 시금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모순은 또한 오류가 어떤 식으로 전파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이 가졌을 어떤 우월감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즉, 도시전설을 깨부순다는 것 자체가 이 이야기가 전파되는 데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사람들은 경계를 낮추었습니다. 이는 마치 어떤 일을 기억하려 할 때 더 쉽게 잊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도시전설에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할수록 다른 사실을 더 쉽게 믿게 되는 것일까요? 회의주의는 과연 자기 파괴적인 것일까요?

서튼 역시 이메일을 통해, 반대주의(contrarianism)가 음모론자나 백신 반대주의자처럼 “충분히 증명된 사실을 거부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게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밝히려 하며 또한 다른 이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회의주의자들의 강박적인 노력 때문에 “과도한 개인적 희생”을 겪게 되는 어려움 역시 지적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도시전설과 오류로 가득 찬 꿈의 나라” 지하에서 길을 잃게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서튼은 또 다른 커다란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이 주제는 그가 지금까지 다루었던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것이었습니다. 뽀빠이의 시금치와 같이 단순한 이야기에 도전할 때는 잃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튼의 이번 도전 상대는 훨씬 더 신성시되는 대상이었습니다. 바로 회의주의자들의 용사이자 위대한 과학 영웅인 찰스 다윈이었습니다. 2014년, 그는 1년 내내 하루 18시간을 일한 끝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책의 제목을 “널리우스 인 버바, 다윈의 가장 큰 비밀(Nulls in Verba 주: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 Darwin’s Greatest Secret)”으로 지었습니다.

서튼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연 선택 이론의 창시자는 다윈도,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도 아니며 이들은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부유한 스코틀랜드의 산림 관리인이었던 패트릭 매튜의 생각을 훔친 것이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내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윈과 월리스가 적어도 부주의했다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좀 더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찰스 다윈이 매튜의 가설을 표절함으로써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기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서튼은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가슴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윈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입니다.”

패트릭 매튜가 자연선택을 먼저 발견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은 아닙니다. 그는 1830년대에 출간한 “군함용 목재와 식림에 대하여(On Naval Timber and Arboriculture)”의 부록에서 자연선택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자연과학자였던 존 루던은 이 혁신적인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듯합니다. 그는 매튜의 이론을 “다양한 종과 변종의 기원”의 원리로는 “난해하며” 또 독창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1860년, 다윈이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하고 몇 달 뒤, 매튜는 다윈에게 – 지금은 다윈이 “20년” 간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진화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유명하지만 –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윈은 그에게 보낸 답장에서 “매튜 씨는 내가 자연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종의 기원을 설명한 그 이론을 몇 년 먼저 만들었습니다.” 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곧, “나는 나, 혹은 다른 어떤 자연과학자도 매튜 씨의 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말은 매튜의 이론이 무시되었으며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갔음을 – 곧, 매튜 자신도 자신의 이론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 암시한다고 서튼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훌륭한 아이디어도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적절한 천재를 만나지 못할 경우 피어나지 못한다는 또 다른 초도시전설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서튼은 자연 선택이 “위대한 천재”만이 알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의 주장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몇 달간의 연구 끝에, 매튜의 연구가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적어도 7명 이상의 자연과학자들이 그의 책을 인용했으며, 그중에 세 명은 다윈이 “학계의 내부 인사”라 부른 이들이었습니다. 그는 다윈이 직접 남긴 기록 중에 “매튜주의(Matthewisms)” 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서튼은 위의 발견으로 이미 자신의 주장은 증면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다윈을 지지하는 학자들, 특히 마이클 셔머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유명한 회의주의자들에게 논쟁을 신청했고, 영국 왕립학회에는 매튜가 다윈보다 먼저 자연선택 발견의 영예를 받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시금치 신화에 대한 논문을 읽은 이들은 누구나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반면 – 심지어 시금치 신화의 주요 등장 인물인 테렌스 햄블린의 사과까지 – 다윈에 대한 그의 책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많은 학자는 그의 주장을 무시했습니다. 킹스 칼리지의 마이클 윌 등의 몇몇 학자는 서튼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패트릭 매튜에 관한 책을 쓴 윌은 서튼이 발견한 증거들이 다소 약하고 부수적인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음모도 없습니다.” 그는 매튜 스스로도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알리기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음을 지적했습니다. 1862년 매튜는 “30년 이상 언론이나 사적인 대화에서 자연선택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가 그런 생각을 말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서튼은 자신의 시도가 너무 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 자신이 회의주의자에서 괴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연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 연구가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발견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엄청난 것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어야만 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진실이지요.” 그는 전형적인 “제멜바이스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멜바이스 효과”란 새로운 위험한 아이디어는 제시되는 즉시 사람들로부터 거부된다는 것입니다.

서튼은 1840년대 산욕열의 원인이 의사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밝힌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21세기판 인물일까요?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의 손을 소독하게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출산 여성의 사망률을 1/10로 낮추었습니다. 곧, 소수점을 실제로 옮긴 것이지요. 그러나 그에 대한 잘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너무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무시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습니다. 결국 그는 정신병에 걸려 수용소에서 삶을 마쳤다고 합니다. “사실의 반감기”에서 아베스만은 이 이야기 역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의 이해를 개선할 수 있는 사실을 접할 때조차 이를 종종 무시하게 됩니다.”

물론 제멜바이스 이야기도 사실이 아닙니다. 서튼은 제멜바이스의 일화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 역시 하나의 도시전설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학계에서 선호하는, 이 이야기의 본질을 모순적으로 드러내는 도시전설이라는 것입니다. 서튼은 셔윈 눌란드의 연구를 인용해, 제멜바이스는 따돌림받거나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또한 제멜바이스보다 먼저 손을 소독해야 한다고 주장한 의사들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제멜바이스의 신화는 19세기 말, 헝가리 정부의 집중적인 홍보 덕분에 과학 문헌에 실리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멜바이스 학자 케이 코델 카터는 적어도 제멜바이스가 의학계에서 전혀 무시되지 않았으며, 1863~1883년 수십 차례 인용되었고, “그 숫자는 동시대의 거의 모든 이보다도 많은 횟수”라고 썼습니다.

이런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여전히 제멜바이스의 이야기를 인용하기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들이 얼마나 자신의 본래 믿음과 배치되는 사실을 거부하는지의 예로 사용합니다. 물론 여기서 본인은 예외입니다. 즉, 그 학자들은 제벨바이스에 관한 사실을 거부하는 것으로 “제멜바이스 반응”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초도시전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아이러니를 반복하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과연 이 끝없는 광기의 재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회의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는 서튼에게 물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토끼굴(역자: 엉터리 문제)을 피하는 것이 답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별로 도움이 되는 답은 아니네요.”

1부에서

(파이브서티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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