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하철을 타는 일본 어린이들과 사회적 신뢰
2015년 10월 6일  |  By:   |  세계  |  3 Comments

일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부모님이나 보호자 없이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어딘가를 가는 어린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예닐곱 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책가방에 어린이 티켓을 고리로 달아놓고 다부진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이 아이들은 자립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처음 하는 심부름(はじめてのおつかい)>은 정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새해 혹은 명절 때마다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수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TV 프로그램입니다. 서너 살밖에 안 된 꼬마 아이들이 처음으로 엄마아빠가 주문한 심부름을 수행하는 과정을 아이들은 모르게 영상에 담은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입니다. 처음에는 겁을 잔뜩 먹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은 이웃 할아버지, 가게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부모님이 일러준 찬거리를 삽니다.

도쿄에 사는 12살 가이토 군은 아홉 살 때부터 혼자 지하철을 탔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좀 나긴 했지만, 아주 많이 났던 건 아녜요.”

처음에는 노심초사 하던 가이토 군의 부모도 아홉 살이면 (지하철을 혼자 탈 만큼) 충분히 컸다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또래 아이들이 곧잘 혼자 지하철이며 버스를 타고 다니므로 가이토를 보냈습니다. 가이토의 새엄마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가이토가 워낙 야무진 아이이기도 하지만, 기차가 안전하고 좀처럼 연착하는 일이 없고 노선도도 이해하기 쉽게 잘 돼 있으니까요. 가이토가 잘 할 줄 알았어요. 저는 가이토보다 더 어린 나이에 처음 혼자 도쿄 기차를 타기 시작했는 걸요.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어떻게 목적지까지 잘만 다녔어요. 지금은 가이토가 길을 잃어도 우리한테 전화할 수 있으니까 더 안심이 되죠.”

어떻게 아이들을 복잡한 대도시의 대중 교통 수단에 맡길 수 있는 걸까요?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분명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에 대해 문화인류학자 드웨인 딕슨(Dwayne Dixon)은 아이들의 자립심보다도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공동체에 있는 누구라도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배웁니다. 반대로 자기도 항상 남을 도와야 한다고 배우죠.” 학교에서 교직원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급식을 배식하고, 교실을 청소하는 일을 돌아가며 맡는 것도 그런 책임감을 몸소 익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공동으로 쓰는 공간, 물건을 함부로 다뤘다가는 결국 스스로 청소를 하거나 고장난 걸 고쳐야 한다는 걸 체득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불필요하게 공공장소를 더럽히거나 공공 기물을 파손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전반적으로 범죄율이 매우 낮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혼자 지하철을 태워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아마 낮은 범죄율일 겁니다. 도시 곳곳이 대중교통, 혹은 걸어다니기에 적합하게 설계돼 있기도 합니다. 차보다 보행자, 자전거가 우선이고 대중 교통이 워낙 잘 되어있다 보니 도쿄에서 모든 이동의 절반은 대중 교통, 25%는 도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한 이동은 특히 미국에 비하면 대단히 적습니다. 그렇다고 도쿄 지하철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히 지하철은 여성이나 여자 어린이들에 대한 성추행 범죄의 온상입니다. 여성 전용 객차가 생긴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도 일본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대단히 어린 나이에 꿋꿋이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는 자식을 믿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와 사회 전체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아이에게 독립심을 강조하며 아이를 굳세게 키워내는 문화는 일본 말고도 많지만, 내 아이가 곤경에 처하면 누군가 반드시 도와줄 거라는 보편적인 믿음은 일본 사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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