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심도, 시골도 아닌 교외지역에 늘어나는 빈곤층
미국의 빈곤층 하면 흔히들 대도시의 도심 슬럼가나 시골의 헛간 같은 판잣집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빈곤층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곳은 다름 아닌 교외 지역(suburbs)입니다. 2000년대 첫 10년 동안 미국 최저생계비(4인가족 기준 22,314 달러, 약 2,500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은 교외 지역에서 53%나 늘어났습니다. 도시의 빈곤층 증가율은 23%였습니다. 2010년 기준 교외에 살고 있는 빈곤층은 1,530만 명으로 1,280만 명이 사는 도시를 앞질렀습니다. 조지아 주 애틀란타 북서쪽에 있는 콥 카운티(Cobb County)의 경우 1인당 평균소득이 평균을 크게 웃도는 부유한 카운티지만 빈곤층들의 유입이 꾸준히 이어져 빈곤층 비율이 1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2.6%에 달합니다.
도시의 경제력이 높아질수록 집값은 오르고 빈민들이 모여살던 슬럼가는 재개발 구역이 됩니다. 새로 들어서는 주거지역에서 살기엔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점차 교외로 밀려난 겁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온 이민자들도 비싼 도시 대신 교외를 선택합니다. 주택경기 붕괴로 촉발된 지난 경제위기 때 일자리가 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는 교외지역 서민, 빈민들의 대다수가 종사하고 있는 건설업과 제조업이었습니다. 악재가 겹친 셈이죠.
살 곳을 잃고 교외로 밀려났지만, 교외 지역이 빈곤층들이 살기에 편리하지도 않습니다. 콥 카운티의 경우만 해도 애틀란타를 오가는 통근열차가 아예 서지 않는 곳입니다.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굉장히 불편한 곳인데 집도 없어 교외로 흘러든 빈곤층들에게 차는 있더라도 기름값이 비싸서 좀처럼 쓸 수 없는 애물단지입니다. 일용직 노동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등 일을 하러 가려면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는데, 빙빙 돌아가는 노선에 턱없이 부족한 자리에 하루 두세 시간을 도로에 갇혀 보내기 일쑵니다.
문제는 미국의 지방 정부들은 물론 빈곤에 맞서 싸우는 시민사회, 자선단체들도 교외 지역의 빈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최근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부족하겠지만, 지방정부들이 하루빨리 데이터를 모으고 정책을 세워 주거는 물론 교통, 보육시설 확충에 이르기까지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