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재개합니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1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주부터 노벨상 수상자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경제학상 발표만 남겨둔 가운데 한국에선 한강 작가의 문학상 수상이 단연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에 앞서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각각 인공지능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큰 진전을 이룩한 과학자에게 수여돼 지금은 ‘인공지능(AI)의 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꼭 과학자나 개발자,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상에서 점점 더 인공지능을 자주 접하고, 인공지능과 부대끼며 사는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을 단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채널은 챗GPT로 대표되는 챗봇일 겁니다. 챗GPT의 성능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는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쌓이는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해 지금 이 순간도 학습하고 축적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입니다. 챗GPT를 개발해 운영하는 오픈AI뿐 아니라 구글과 메타 등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전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용자가 원하면 내 데이터를 학습에 쓰지 못하게 설정할 수 있지만, 고객이 자신의 데이터를 양도하도록 기본적으로 설정해 둔 경우가 많아 소용이 없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인공지능의 성능 덕에 챗봇은 이미 다양한 곳에 도입됐습니다. 거의 모든 서비스 기업의 고객센터는 챗봇을 통해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자로 주고받는 대화라면 꼭 사람이 직접 하지 않더라도 챗봇이 인간을 대신해, 인간을 흉내내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 꽤 많습니다. 물론 중요한 정보는 인간의 검수가 필요하고, 중요한 의사결정도 사람이 내려야 하지만, 그래도 챗봇의 쓰임새는 분명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제 문자로 주고받는 대화뿐 아니라, 음성으로 하는 대화도 가능해졌습니다. 물리적인 질량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하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음성은 문자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로 만들어내기 훨씬 쉽죠. 특히 아무 목소리가 아니라 특정 인물의 목소리도 데이터만 충분히 주어지면, 얼마든지 복제해 낼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셸 게임(Shell Game)”을 진행하는 에반 래틀리프가 자기 목소리를 학습해 흉내 내는 AI판 에반 래틀리프를 만들어 가족, 지인들과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전문 번역: 텔레마케터 전화를 AI에게 받게 했다… ‘괜찮은데?’ 싶다가 깨달은 교훈
좋은 데이터를 많이 모아 학습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점점 더 인공지능이 능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올 겁니다. 특히 물리적 세계의 복잡성에 노출되지 않아도 되고, 순전히 데이터만 분석할 수 있는 분야부터 바뀔 겁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현실에 도입되지 못하는 이유로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일이 인공지능에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숫자와 데이터로 이뤄지는 금융은 인공지능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훨씬 수월한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100달러를 보낼 때 100달러 지폐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저 보내는 사람 통장 잔고에서 100달러가 줄고, 받는 사람 통장 잔고에 100달러(에 해당하는 원화)가 늘어나면 끝입니다. 적어도 금융에선 숫자와 데이터로 모든 게 움직이죠.)
AI 래틀리프는 이내 간파당했습니다. 그러나 래틀리프의 데이터를 더 많이 학습하고 나면 인공지능 음성봇은 머지않아 ‘전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음성봇이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라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궁금한 질문에 답변을 해준다면 분명 쓸모가 있는 일이겠죠.
정교해지는 음성봇이 걱정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당장 보이스피싱이 더욱 감쪽같아지면 그로 인한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내 목소리나 말투를 똑같이 따라 하는 음성봇이라면 내 가족이나 지인을 속이기도 좋을 겁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로 인한 피해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보호장치를 마련할 겁니다. 기계의 방식을 새로 뛰어넘는 인간의 방식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인간을 감쪽같이 흉내내는 인공지능이라도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인간에게 더 큰 외로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좀 더 근본적인 과제를 던집니다. 음성봇의 쓸모가 많아지면, 온 세상에 대화가 넘쳐날 테고, 역설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대화, 교류는 빠르게 줄어들 겁니다. 잠을 잘 필요도 없고, 감정의 소모도 느끼지 않는 인공지능이 대화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를 테니까요.
AI 오물의 오디오 버전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사람은 역설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외로움을 달래고 덜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이기에 정답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인간(人間)이란 단어의 의미처럼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본질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하고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담으로 사람과 사람의 대화라는 게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나 전화 통화, 채팅 말고 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 어쩌면 문학도 아주 고차원적인 인간의 대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가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더라도 그 작품을 읽으면 마치 작품 속 주인공, 나아가 그 주인공을 만들어내고 그려낸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기계 번역의 수준이 놀라울 만큼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번역기가 가장 잘 옮기지 못하는 텍스트가 행간에 수많은 뜻과 생각과 이야기가 담긴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미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론을 학습한 챗GPT는 한강 작가에 관한 질문에 곧잘 답하고, 심지어 한강 작가의 문체와 톤으로 시를 써보라고 하면 시도 단번에 써내려 갑니다. 그러나 결국 이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쓴 글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글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단조롭게 시듭니다.
음성봇이 점점 더 많아지면, 일상에서 노출되는 대화도 훨씬 더 많아질 겁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간을 흉내낸 인공지능과의 대화만 많아진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끊어지고, 대화와 교감도 실종되며 우리는 전부 다 더 외로워지고 말 겁니다. 어쩌면 이를 막아줄 안전장치 중 하나가 문학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책 주문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고 합니다. 부디 이번 수상이 더 많은 사람이 문학을 가까이하고,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대화도 늘어나고, 공동체의 연결 고리도 더 튼튼해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