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구국의 결단” 바이든 그 이후…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2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1월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후보 사퇴 소식은 현지 시각으로 일요일(21일) 오후 전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X(옛 트위터) 자신의 개인 계정에 오후 1시 46분 “미국인에게 쓰는 편지”를 올렸습니다. 반년가량 남은 이번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재선에는 도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 전문 번역) 이어 30분쯤 뒤에는 “내가 4년 전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처음 한 일이자, 가장 잘한 선택이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를 지명한 것”이라며, “나는 사퇴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은 해리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트럼프를 이겨 달라”는 두 번째 트윗을 올렸습니다.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겁니다. 이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서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18일 끝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부통령 후보 J.D. 밴스로 진용을 짠 공화당에 맞서 민주당은 관행대로 현직 대통령, 부통령이 재선에 나서는 대신 카말라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그리고 해리스가 지명하는 러닝메이트가 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됐습니다. 선거가 10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재선에 도전하던 현직 대통령이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기로 한 건 미국 정치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기세등등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카멀라 해리스가 막아설 수 있을지, 해리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바이든에게 실망하고 우려하던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바뀔지, 해리스는 지적되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부통령 후보를 누구로 뽑으면 좋을지 등에 새롭게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 대선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은 소개하는 칼럼이 무엇이든 현직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선언에 관해 쓰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마침,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발표 전에 데이비드 브룩스가 민주당은 (트럼프를 꺾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쓴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오늘은 이 칼럼을 토대로, 민주당과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최근의 부진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문 번역: 민주당,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 ‘마가’를 상대하려면
브룩스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허투루 보지 말라고 당부하며 동시에 경고합니다. 8년 전에는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가 주장하는 주변부의 슬로건에 불과해 보였지만, 2016년 대선 깜짝 당선, 4년간의 집권, 재선 실패와 선거 결과 불복 등 바람 잘 날 없던 지난 8년 사이 “마가”는 엄연한 정치 사조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후보 대신 “리틀 트럼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제 공화당은 레이건주의 대신 ‘마가’를 당의 정강으로 삼은 거나 다름없다고 분석합니다.
레이건주의가 전통적인 공화당, 즉 친기업, 자유무역, 시장경제, 작은 정부, 문화적으로는 중도 내지 온건 보수 성향의 부자 엘리트를 기반으로 한다면, ‘마가’는 트럼프식 경제적 포퓰리즘을 토대로 합니다. 노동계급, 특히 자유무역이나 정보통신 기반 신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뒤처진 제조업 분야의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책을 펴고,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기업과 엘리트에 적대적이며, 보호무역을 선호하고, 무조건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보다는 필요할 경우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사회복지를 보장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밴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보다도 ‘마가 세계관’이 투철한 인물입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막대한 돈을 당장 끊고, 그 돈을 러스트벨트에서 곤궁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지원하거나 불법 이민자를 막고 미국 남부 국경 수비를 탄탄히 하는 데 쓰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말합니다. 기업의 권한이 커지는 걸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반독점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의 리나 칸 위원장을 극찬한 적도 있고, 기존 공화당 정치인에게선 보기 어려울 만큼 ‘친노조’ 성향입니다.
민주당의 미션: 긍정적인 비전 보여줘야
이런 트럼프와 밴스를 상대할 해리스와 민주당이 범해서는 안 될 실수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브룩스가 지적한 대로 “마가”를 허투루 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전체 득표에서 앞섰다고 해도 2016년 민주당은 중요한 경합주를 경시한 끝에 다분히 얕잡아보던 트럼프에게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때의 교훈을 잊는다면 그에 어울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브룩스의 또 다른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트럼프의 문제, 부족한 자질, 기소된 범죄 혐의를 열심히 읊는 것, 즉 트럼프를 향한 네거티브가 선거 전략의 핵심이 돼서는 안 됩니다. 물론 트럼프가 저지른 잘못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에 따른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많을 겁니다. 그러나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다른 쪽에선 몰상식한 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기고 나서 “이기는 놈이 곧 정의”라고 쏘아붙일 겁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에 승복한 적이 없습니다.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방조한 것도, 헌법이 보장하던 임신 중절권을 폐기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것도 트럼프입니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트럼프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긍정적인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번듯한 정치 사조로 성장한 ‘마가’에 맞서려면 그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신 중절권을 앗아간 트럼프와 공화당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당이 집권하면 이를 어떻게 다시 살려낼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부분을 지원하고 어떤 정책을 도입할지,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안전”이란 가치를 담보할지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공화당과 대조되는 긍정적인 비전을 보여주기 좋은 분야가 기후 대책일 겁니다. “마가 세계관”에는 2024년에도 기후변화가 진짜인지 의심하는 시선, 기후 위기를 애써 외면하려는 주장도 포함돼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의 공약이나 정책을 봐도 “에너지 자립” 같은 개념은 종종 보이지만, 기후변화에 맞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거의 없습니다. 깨끗한 에너지,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그 시장을 키워나감으로써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미국이 어떻게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 보여주는 건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중요합니다.
비전을 보여주고 어필하기 쉽지 않은 분야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민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공화당은 지난주 전당대회 둘째 날의 주제를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Make America Safe Again)”로 잡고, 시종일관 바이든의 이민정책을 공격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처음 2년 넘게 이민 문제를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남부 국경의 치안 문제에도 신경을 덜 쓴 건 맞습니다. 이를 공화당 주지사들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했고, 트럼프가 이를 포착해 “바이든은 국경을 활짝 열어 미국을 위험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며 공격했는데, 대단히 효과가 컸습니다. 이후 3년 차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뒤늦게 이민 문제를 해결 또는 완화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고, 그 가운데 일부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한 번 굳어진 이미지는 좀처럼 만회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아메리칸드림’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제적 기회가 보장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이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건 아메리칸드림의 중요한 전제인데, 바깥을 향해 문을 걸어 잠근 사회에는 경제적 역동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공화당 전당대회 내내 애국, 애국심이란 말은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발표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며 좋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다시 원점에서 시작되는 2024년 선거에서 어떤 비전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