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밖에서 편하게 사회생활하니까 애 키우는 게 고된 줄 모른다” 맞는 말일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6월 2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를 진단할 때마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점점 더 심해지는 젠더 갈등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닉 크리스토프의 칼럼에도 한국 사회의 저출산 대책의 발목을 잡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로 젠더 갈등이 꼽혔습니다. 물론 자세한 통계과 꼼꼼한 근거를 들며 한 주장은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 문제가 완전히 낯선 분들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저만 해도 주변에 결혼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이들 중에는 성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서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부부 중에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육아와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데 관한 서로의 기대치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적잖은 불화를 겪는 이들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특히 육아를 ‘공평하게’ 또는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문제를 두고는 남녀 간에, 엄마와 아빠 사이에 이견을 좁히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처럼 보입니다.
사회마다 관습과 문화가 형성된 배경과 맥락이 있을 테니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단순히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은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육아를 비롯한 가사 노동 전반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엄마와 아빠 중에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여전히 엄마가 훨씬 더 높고, 실제로 육아에 쓰는 시간 차이도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적은 집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한국처럼 큰 차이가 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 찾기 어렵습니다.
아빠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빠 육아”가 자녀의 발달에도 좋고, 배우자(여성)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아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누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아빠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본인이 희생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하는 데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면 고민 없이 그 일을 하는 게 당연한 선택일 테니까요. 뉴욕타임스에 아빠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면 얻을 수 있는 여러 장점 가운데 아빠 본인의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전문 번역: 남성이 “아빠가 되면” 뇌도 반응한다고? 인생까지 바뀐다고?
회백질(gray matter)이라고 불리는 뇌의 조직층이 칼럼에서 소개한 연구의 핵심입니다. 회백질이 줄어들면 뇌는 더 효율적으로 기능합니다. 이는 부모가 자녀와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거나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뇌의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그동안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될 때 회백질의 부피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색스비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남자도 아빠가 될 때 여자가 엄마가 될 때처럼 회백질의 부피가 줄어듭니다. 줄어드는 정도는 대체로 여성보다 적었지만, 아빠의 뇌와 호르몬이 엄마와 마찬가지로 변한다는 건 아빠도 엄마처럼 육아에 참여하도록 신경생물학적으로 설계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색스비 박사는 “아빠 육아”가 아빠에게 미치는 효과에 특히 더 주목합니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회백질이 쪼그라든 아빠일수록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답했으며,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도 덜 받았습니다. 또 육아에 직접 참여하는 건 장기적으로 뇌를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빠가 주양육자로서 육아하면서 의미를 찾고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표본이 적어 최종 결론을 내는 건 신중해야 하며, 수면 장애나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아빠도 회백질이 많이 줄어든, 즉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빠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어 육아의 키를 쥐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육아는 기본적으로 엄마(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를 고치려면 아빠도 육아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상황을 참작해 다시 말하면 꼭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어야 한다기보다 엄마든 아빠든 집안 사정에 따라 부부가 협의해서 함께 아이를 기르는 게 육아를 분담하는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은 얼핏 일리 있는 주장으로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 고정관념으로 인해 생겨나는 해악이 분명합니다. 육아를 돕고 싶은 아빠라도 스스로 보조적인 역할만 하기로 한계를 정해두면 자연스레 육아에 참여가 떨어지게 되고, 남은 육아 부담은 배우자인 엄마가 다 떠맡게 됩니다. 보조적인 역할을 아무리 충실히, 오래, 많이 해보더라도 주양육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로 무엇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지 못하면 자연히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고, 사소한 오해와 문제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애나 보니까 사회생활이 얼마나 고된 줄 모른다”는 시대에 한참 뒤처진 하소연을 태연히 내뱉는 아빠들이 지금은 다행히 많이 없어졌지만, 저는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이 인지 능력이나 공감 능력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생 해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고, 잘못된 점을 지적받은 적이 없어서 뭐가 잘못인 줄도 모를 뿐입니다. 해보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도록 방치한 사회의 제도나 문화를 함께 탓해야지 개인의 감수성만 문제 삼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제도만 놓고 보면 한국 사회는 육아 지원이 잘 갖춰진 편입니다. 당장 아빠가 육아 휴직을 쓰는 데 법적인 걸림돌은 전혀 없습니다. (미국은 법이 보장한 육아 휴직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육아 휴직을 쓰는 아빠는 많지 않습니다. 급여나 차후 승진에서 불리해지는 걸 감수하고도 휴직하겠다는 ‘용감한’ 아빠가 있을 수 있지만, 이때도 여전히 “회사 상황”이나 “팀 사정” 뻔히 알면서 선뜻 휴직하겠다고 나서기가 눈치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제도를 개선할 때 육아 휴직을 쓰려는 아빠가 눈치 보지 않도록, 굳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용기’를 낼 필요가 없도록 다양한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해봤더니 절실히 알겠더라”에서 시작되는 이해와 협동의 선순환으로 바꿔낼 수만 있다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아주 많습니다. 아빠가 나선다고 육아 자체가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육아가 얼마나 고된 노동이자 어려운 과제인지 직접 해보고 체감하는 순간 부부 사이에 쌓였던 오해가 상당 부분 알아서 풀릴 겁니다. 육아의 주체로 부부가 “원팀”이 된다면 가족의 결속력도 높아집니다. 나아가 부모가 함께 길러낸 아이는 자연히 ‘육아는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지니게 됩니다. 젠더 갈등도 줄고, 여성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더 균형 잡힌 선택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남성도 유교 문화 속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린 채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정작 “아빠 됨”의 기쁨은 느끼지도 못하던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뇌 건강이 좋아지는 건 어쩌면 부수적인 혜택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인식을 뜯어고쳐 문화를 바꿔내는 데는 지금껏 가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는 개인의 용기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통념을 거스르는 선택을 했을 때도 손해 보는 거 없이 오히려 행복하게 잘만 살더라는 사례가 자꾸 쌓이고 알려지도록 정부는 세심하고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엄마나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하는 육아”가 기본이 되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