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걷자는 “증세 동맹” 가능할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1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불평등이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여러 문제와 부작용의 결과 갈수록 심각해진 부의 불평등은 그 자체가 다시 사회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심할 경우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원인이 됐습니다. 자칫 헤어 나오기 어려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UC 버클리 경제학과의 가브리엘 쥐크망 교수는 “21세기 자본”으로 잘 알려진 토마 피케티, 에마누엘 사에즈 교수와 함께 지구적인 차원에서 점점 심화하는 부의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 온 젊은 학자입니다. 지난해에는 40세 이하 경제학자 가운데 앞으로의 연구 성과가 기대되는 학자에게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쥐크망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전 세계가 부자 증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평소에 하던 주장에 비해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지적된 지는 꽤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해결책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상황을 고려하면, 시대의 사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불평등을 줄이는 문제에 관해 우리 사회는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게 해주는 글입니다.
전문 번역: 억만장자들이 최소한의 소득세도 내지 않는 이유, 세금을 걷는 방법
오늘은 현재 부의 불평등이 어느 수준인지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그래프 한 편을 소개하고, 쥐크망이 제시한 해법의 실효성에 관해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가 글이나 기사, 콘텐츠와 상호작용한다는 뜻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이미 많은 언론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호칭이 붙곤 하는데, 정확히 이들이 얼마나 부자인지 보통 사람들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깃허브 유저 MKorostoff가 이해를 돕기 위해 제프 베조스의 재산을 예로 들어 그래프를 그리고, 이를 간단한 인터랙티브 그래프로 만들었습니다.
독자가 해야 하는 상호작용은 단순합니다.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을 견디며 베조스의 재산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오른쪽으로 마우스 스크롤을 계속 밀어보는 겁니다. 그래프를 그릴 때 베조스의 재산은 1,850억 달러였는데, 지금은 2,100억 달러로 더 늘어났다는 점도 참고하시고, 오래 걸리지 않으니 꼭 한 번 직접 마우스를 스크롤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구와 태양의 크기를 비교해 이해하기 쉽게 써둔 기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밖에 여러 비유, 표현이 떠올랐지만, 이 그래프야말로 아무리 설명해 봤자, 직접 해보는 데 미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프 중간중간 나오는 설명 가운데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1,000달러는 너무 작은 점이라 모니터에 붙은 먼지처럼 보인다. 아니, 먼지도 저 작은 점보다는 큰 경우가 많다.
- 미국 가계의 중위소득이 6만 8,000달러인데, 이 작은 사각형은 그래도 눈에 보인다.
- 이어 100만 달러, 10억 달러가 표시되고, 베조스의 재산 1,850억 달러가 등장한다.
- 옆으로 눕힌 거대한 막대그래프 아래 눈금이 있는데, 눈금 하나가 50만 달러다. 미국의 주택 중위가격이다. 베조스의 재산으로 평균적인 집을 40만 채 이상 살 수 있다.
- 중간에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연봉의 평균(3만 5,000달러)이 아주 잠깐 스쳐 간다.
- 미국의 모든 암 환자에게 항암 치료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이 90억 달러다. 베조스의 재산은 2020년 7월 20일 (급등한 주가 덕분에) 하루에 130억 달러가 불어났다.
- 베조스 같은 갑부 중의 갑부 앞에선 우리가 흔히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재산 규모도 그야말로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비욘세의 재산도 4억 달러밖에(?) 안 되고, 창업자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 합류해 지분이 적은 애플의 CEO 팀 쿡의 재산도 고작(?) 6억 2,500만 달러다. 의사의 평생 기대소득(670만 달러)나 변호사의 평생 기대소득(400만 달러)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다.
- 부자의 재산을 빼앗거나 강제로 환원하자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다.
- 위험을 무릅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시행에 옮겨 성공한 사람이 보상받는 건 당연하다. 다만 과연 이렇게 많은 부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게 맞는지에 관해선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한다.
- 베조스를 포함한 미국 최고 갑부 400명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3조 2,000억 달러다. 미국 전체 소득 수준 하위 6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재산의 합보다 많다. 400명이 대략 2억 명보다 재산이 더 많은 거다.
스크롤만 해서 베조스의 재산을 표시한 막대그래프 끝에 이른 분은 없을 겁니다. 저도 중간에 아래 나오는 표시바를 보고는 포기했습니다.
‘증세 동맹’ 가능할까?
가브리엘 쥐크망의 목적은 갑부가 얼마나 재산이 많은지 드러내 이들을 악마화하는 게 아닙니다.
법을 지키며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됐다면 이는 비난보다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준법과 범법, 편법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분야가 바로 세금인데, 쥐크망은 베조스 같은 갑부들이 세금을 안 내도 너무 안 내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칼럼에 소개된 LVMH의 창업자 베르나르 아르노처럼 유럽의 갑부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도 재벌 총수 일가가 세금을 제대로 냈느냐 안 냈느냐는 늘 논쟁의 대상입니다.
쥐크망은 전 세계가 일종의 증세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피케티가 제안했던 전 지구적인 부유세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제안인데, 조세 회피라는 미명 아래 지금도 버젓이 계속되는 사실상의 탈세를 억제하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전 세계가 다국적 기업의 이윤에 최소한의 법인세를 매기고, 베조스나 아르노와 같은 갑부들의 재산에 최소한의 부유세를 매기자는 제안입니다. 이들이 올리는 소득이 대부분 비과세 대상이다 보니, 이들의 재산은 한도 끝도 없이 불어납니다. (워런 버핏은 이런 상식에 어긋나는 세제가 부의 불평등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걸 막기 위해 이른바 버핏 세제(Buffett Rule)를 제안하기도 했죠.)
정부가 세금을 거두면 필요한 데 돈을 잘 쓴다는 보장이 있냐는 지적과 비판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고, 사회마다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할 주제지만, 누진세와 같은 세제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정부의 미덕을 과도하게 찬양하며 무책임하게 세금을 깎은 결과 지금처럼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세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는 그 나라 시민들이 활발한 정치 참여를 통해 제대로 감시할 거라고 가정하고, 오늘은 쥐크망이 제안하는 증세 동맹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습니다.
상황을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각국 정부는 증세 동맹에 참여하면 기대 세수가 늘어나는 점이 좋지만, 반대로 기업이나 갑부가 우리나라를 떠나 (증세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습니다. 증세 동맹에 참여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세제를 유지한다면, 세수는 그대로 유지되고 운이 좋으면 다른 나라 기업이나 부자들이 우리나라로 이주해 세수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장기적으로 불평등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심화할 수도 있다는 건 단점이겠죠.
여기서 중요한 건 다국적 기업이나 부자들이 “세금 올리면 이 나라를 떠나버리겠다”는 위협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겁니다. 기업 경영을 비롯해 부자들이 부를 쌓고 재산을 증식하는 과정에서 법인이나 개인은 이들의 주소지,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노동력, 거주 국가의 제도 전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원칙적으로 정부가 세금을 거둬 예산을 집행하는 일은 결국 원활한 기업 활동에 필요한 토양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이나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와도 그 나라를 “아예 떠나 버리지는” 못 합니다. 여러 국적을 얻어 그 가운데 세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최대한 납세의 의무를 해결하는 게 최선입니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모든 나라가 최저 세율을 부과하는 데 동의해 증세 동맹을 꾸린다면, 지금과 같은 조세 회피 또는 탈세를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다국적 기업이나 부자들이 사실상 세금을 안 내도 되는 곳에 유령 회사를 만들거나 주소지를 바꾸는 식으로 세금을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많아 보이는 정책이지만, 법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겁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는 증세 동맹을 구축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지만, 트럼프는 이미 감세 정책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본인은 모두의 세금을 깎아준다고 주장하지만,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철저히 부자들을 위한 감세였다는 것이 이미 데이터로 드러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증세 동맹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방울을 달아야 하는 건 목숨을 내놓는 정도의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하는 나약한 개인이 아닙니다. 대신 전 세계 시민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면 될 일입니다. 갑부들의 말도 안 되게 많은 재산의 극히 일부를 세금으로 돌려받아 공동체를 위해 쓰자는 주장이 급진적이지 않다는 쥐크망의 지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면 전 세계 시민들이 협력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