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미국 대학 캠퍼스 시위를 외면할 수 없는 ‘바이든의 딜레마’
2024년 6월 29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작된 반전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졌습니다. 2주 차를 맞아 시위는 더 거세지는 양상입니다. 대학 측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잇따라 정학 등 징계를 내렸고,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대학 본부 등 주요 건물을 점거하면서 항의하자, 대학 측이 다시 경찰의 진입을 요청해 학생들을 체포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학생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거나 맞불 시위대와 시위대 사이에서도 충돌이 빚어지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입니다.

뉴욕, LA 등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한 주요 도시의 시, 경찰 당국은 폭력적인 시위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백악관도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양측은 폭력을 부추긴 건 상대방이라며 대치를 거두지 않고 있고, 양측의 요구사항도 좁혀지기는커녕 더 어긋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테러 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가자지구에 전쟁이 발발한 뒤 저는 줄곧 정말 어려운 과제지만,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칼럼과 주장을 소개해 왔습니다. 그런데 캠퍼스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시위대와 대학교, 맞불 시위대, 그리고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공통분모 찾기”란 역시 쉽지 않은 과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얼핏 보면 간단한 구호조차, 간단치 않은 사정과 맥락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조차 양측이 전혀 다르게 해석하다 보니, 대화의 물꼬를 트기조차 어렵습니다.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는 구호 “Free Palestine”이 그렇습니다. 국경을 어떻게 그을지를 두고도 의견을 모으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멀쩡히 살던 땅에서 쫓겨나 요르단강 서안 일대와 가자지구의 좁은 땅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 가자지구의 경우 팔레스타인 사람 수백만 명이 쓰는 생필품을 비롯한 모든 물자를 통제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자국민 정착촌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주둔하던 군대를 물린 것도 2005년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점령군이나 다름없었죠.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는 구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현재 이스라엘이 들어선 땅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로, 자유를 누리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으며, 이스라엘은 부당한 점령을 멈추고 군대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의 다른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구호의 의미를 달리 받아들입니다. 이들은 이 구호가 단지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구호의 맥락을 살펴보면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한다며, 이 구호와 구호를 외치는 사람을 배격합니다.

문제가 되는 구호의 전문은 우리말로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아랍 사람들의 땅”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강은 요르단강, 바다는 지중해를 뜻합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이죠. 여기를 아랍 사람들의 땅이라고 부르는 건 곧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혐오 발언이자, 반유대주의의 망령이라는 겁니다. 한쪽의 해방이 반드시 다른 쪽의 멸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해도 당사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 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잠시 총을 내려놓는 휴전은 있을 수 있겠지만, 분쟁의 불씨는 계속 남으므로, 영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이번 시위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니 “반전 시위”라 부르면 가장 건조하고 객관적인 이름이 될 것 같은데, 시위대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들은 전쟁의 책임이 명백히 한쪽에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양측이 무기를 내려놓고 휴전이나 평화 협상에 나서라는 주장보다는 일방적인 가해자인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캠퍼스에서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이나 젊은이가 주축인 시위대 안에서는 말이죠. 그래서 미국 언론은 대부분 지금 시위대를 친팔레스타인 시위대(pro-Palestine protesters)라고 부릅니다. 폭스뉴스 등 보수 언론은 이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등 반유대주의 구호를 외친다고 주장하며 반이스라엘 시위대(anti-Israel protester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일 미국 의회는 무엇이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인지를 아예 법으로 명문화하겠다며, 반유대주의 인식법(Antisemitism Awareness Act)을 제정했습니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미국은 법조문으로 옳고 그름을, 준법과 불법을 세세히 구분해 놓지 않는 보통법 전통을 따르는 나라입니다. 그런 미국에서 무엇을 반유대주의라고 규정하고, “뭐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불법”이라고 명시해 놓은 법을 만들었다는 건 그만큼 사안이 이례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법을 만들어도 여전히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반유대주의 인식법 제정을 주도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은 처음 경찰이 컬럼비아대학교 캠퍼스에 들어가 시위대를 끌어내고 체포한 뒤 그 현장을 찾아 “필요하면 주 방위군을 투입해서라도 폭력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고 말해 시위대의 주적이 됐습니다.

시위가 번진 데는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캠퍼스 안에서 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뉴욕시 경찰(NYPD)에 캠퍼스 진입과 시위 진압을 요청한 대학교 당국과 네맛 샤픽 총장의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가장 철저히 보장돼야 할 대학교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체포되고 대거 징계를 받자, 학생들 사이에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 겁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 꼭 한쪽 편을 들지 않던 사람들도 대학 당국의 조치를 비판하며 시위대와 연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위가 다른 학교로 삽시간에 번져나간 것도 뉴욕 경찰이 100여 명의 학생을 체포하고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한 뒤였습니다.

 

연방제 국가 미국에는 중앙(연방) 경찰청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치안을 유지하는 정부의 책임자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연방제 국가 미국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의 경찰청 자체가 없습니다. 연방 차원의 경찰은 우리가 아는 연방수사국(FBI)이 범죄 수사와 기소를 맡긴 하지만, 특히 치안 업무는 각 주 정부와 지방 정부 산하에 있거나 서로 협력하는 지방 경찰이 독립적으로 맡습니다.

즉, 만약 한국에서 경찰이 대학교 캠퍼스 내 시위를 과잉 진압한다면, 결국 비판의 화살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게까지 미치겠지만, 뉴욕 경찰이든 텍사스 보안관이든, LA 고속도로 순찰대 경찰이든 대통령의 임명권이 닿지 않는 철저히 독립된 조직입니다. 그래서 공권력에 대한 반발이 당장 오는 11월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볼 때 방정식이 한국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 유권자들도, 시위대가 비판하는 유대인들도 모두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캠퍼스 진입을 요청한 네맛 샤픽 총장도 시위대와 의회(특히 공화당 정치인)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딜레마에 빠졌는데, 바이든 대통령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캠퍼스 시위는 물론 이번 전쟁 자체가 다루기 굉장히 어려운 사건입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칼럼이 한 편 실렸습니다.

지난주 틱톡 금지 법안과 함께 여러 가지 법안이 한꺼번에 일괄 처리됐는데, 그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무기를 지원하기로 한 법안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에 필요한 군사 물자를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이고,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은 무기를 보내줄 수 있게 된 나라가 다름 아닌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무기 지원은 대대적으로 홍보해 온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원조와 무기 지원은 쉬쉬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전문 번역: 미국은 왜 떳떳하게 하지 못할까?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왜 그럴까요? 닉 크리스토프가 칼럼에서 지적한 원인 가운데 민주당과 바이든의 지지층 가운데 이스라엘을 향한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바로 지금 대학가에 번진 반전 시위와 맥이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포함된 젊은 세대는 대체로 민주당과 바이든에 우호적인 유권자들인데,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스라엘의 공격과 이를 말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생각을 물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세대별 차이를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퓨리서치 센터가 올해 2월 13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인 1만 2,693명을 대상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응답자의 연령을 18~29세, 30~49세, 50~65세, 65세 이상으로 나눠 답변을 정리해 보면, 가장 젊은 세대이자 대학생이 포함된 18~29세는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머지 세대와 뚜렷이 다릅니다.

전체 세대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사람(14%)보다 팔레스타인 사람(33%)에게 더 공감한다고 답했고, 팔레스타인 사람이 호감(60%)이라고 답한 비율이 이스라엘 사람이 호감(46%)이라고 답한 비율보다 높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는 이유가 타당하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도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으며, 10월 7일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 공격을 진행한 방식을 용납할 수 없다(46%)고 답한 사람이 이해된다(21%)고 답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았습니다. 전쟁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도 너무 이스라엘 편을 들어서 문제(36%)라고 답한 사람이 너무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서 문제(10%)라고 답한 사람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모두 다른 세대의 답변과 차이가 명확합니다.

미국의 Z세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백인의 비율이 50%가 되지 않을 만큼 인종 다양성이 높은 세대고, 아랍계 미국인도 많습니다. 본인이 아랍계 미국인이 아니어도 학교에서 같은 반에 아랍계 미국인 친구가 한두 명씩 있는 경우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많은 거죠. 이들에게 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박해는 역사 교과서 속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미 부강한 나라 이스라엘이 주변의 힘없고 가난한 나라를 군사적으로 괴롭히고 공격하는데, 왜 미국이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쩔쩔매며 원조를 해주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겁니다. 이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등의 반유대주의로 보기 힘든, 그냥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 인식입니다. 분명 한 세대 전에는 모든 인류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던 피해자였지만, 지금 자라나는 세대, 젊은 세대가 보기엔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엄연한 가해자인 거죠.

 

바이든의 딜레마

일각에선 현재 캠퍼스 시위를 두고 1968년 베트남전쟁 반전 시위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반전 운동은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군대에 징집돼 전쟁터로 끌려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전쟁으로 국방비 지출이 너무 많아져서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되기도 했죠.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물론 미국의 중동 정책에 아주 중요한 전쟁이지만, 미군이 직접 참전한 전쟁이 아니고, 아무리 무기를 많이 지원해도 미국 경제를 뒤흔들 정도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선 지지를 받을지 몰라도 과연 이번 시위가 전반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젊은 층 유권자도 외면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이스라엘과 냉랭하게 거리를 두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젊은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실망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경합주에서 치명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외에 중요한 지역구 의석이 뒤집힐 수도 있고요.

유대인들의 선거자금과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유권자 숫자로만 따지면 많지 않지만, 유대인은 정치권은 물론 재계, 학계 등 엘리트 계층 전반에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은 5월에 학년이 끝나고, 긴 여름방학을 맞습니다. 학교들은 내심 얼른 방학이 돼 시위의 열기가 식고 긴장 상태도 알아서 풀리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공화당은 계속해서 대학교 총장들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워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하원 교육위원회가 시위가 일어난 대학들이 연방정부 교부금을 어떻게 쓰는지 감사를 벌이겠다고 밝혔으며, 오는 23일 예일대학교와 UCLA 총장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청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금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전쟁에 발목이 잡히고 말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