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숨 쉬는 건 범죄가 아니다”…노숙도 마찬가지? 간단치 않은 사정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6월 말이면 회기를 마치고 여름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지난주가 이번 회기에 예정된 구두변론을 진행하는 마지막 주였습니다. 5월은 대법관들이 진정인과 피진정인 또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추가로 듣는 일 없이 기존에 들었던 의견을 다시 정리하며, 서로 토론과 숙의를 거쳐 판결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일찌감치 결론이 난 사안에 관해서는 5월 중에 판결을 발표하는 때도 가끔 있지만, 그러는 일은 정말 드물고 대부분 판결이 회기를 마치기 직전인 6월에 잇달아 나옵니다.
지난주 연방 대법원은 여러 굵직굵직한 사안에 관해 양측의 의견을 듣는 구두변론을 진행했습니다.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로 뒤집으려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가 대통령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므로 면책특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트럼프 측의 주장을 듣기도 했고, 이번 대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임신 중절권에 관한 사건의 구두변론도 열렸습니다. 그 가운데 사건 자체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미국 사회 전체에 미칠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집이 없어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범죄자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비춰 정당하냐는 다툼입니다.
오레곤주의 그랜츠 패스라는 인구 4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를 상대로 노숙자와 이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해 진행된 그랜츠 패스 대 존슨(Grants Pass v. Johnson) 사건도 연방 대법원의 심리 목록 중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UC버클리 로스쿨의 임상 프로그램 디렉터인 로라 라일리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길에서 자면 불법”…그들을 더는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라
라일리가 지적했듯 핵심은 노숙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정부의 법 집행이 수정헌법 8조 위반이냐 아니냐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8조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선 살펴보죠.
과도한 보석금을 요구하거나 과도한 벌금을 부과하거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범죄를 저질러 법을 어기면 물론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 형벌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이어선 안 된다는 내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정부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취지는 흠잡을 데 없지만, 무엇이 과도한지, 또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은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 기준이 모호해 해석을 두고 다툴 여지가 늘 있습니다. 보통법 전통을 따르는 미국에서는 그래서 헌법을 판례에 비춰 해석하며, 그 해석을 두고 이견이 생기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갑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그랜츠 패스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에서 집을 잃고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해지고, 집값이 계속 올라 내 집은 고사하고 월세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서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그런데 집을 잃은 사람들이 당장 몸을 뉠 만한 노숙자 쉼터 같은 시설은 태부족했습니다.
그랜츠 패스보다 앞서 노숙자를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두고 소송이 진행된 바 있습니다. 아이다호주 보이즈(Boise) 시의 노숙자 로버트 마틴 씨를 시 정부가 공원 풀숲에서 노숙했다는 이유로 주법에 따라 입건, 처벌하자 마틴 씨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마틴 대 보이즈(Martin v. Boise) 사건의 쟁점도 수정헌법 8조였습니다.
원고인 마틴 씨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노숙자가 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집을 잃게 됐는데, 노숙자 쉼터 같은 시설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잠은 자야 하는데 잘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게 됐다는 거죠. 다른 사람을 해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사람의 본능 가운데 하나인 잠을 잤다는 이유로 범법자가 돼 처벌받는 건 가혹하다고 마틴 씨는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마틴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노숙자 쉼터와 같은 시설을 충분히 마련해 놓지 않고 노숙자를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건 수정헌법 8조 위반이라고 본 겁니다. 보이즈 시는 당시 법원의 결정에 항소했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그때는 대법원이 사건을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묵혀 있던 사건이 그랜츠 패스 대 존슨 사건과 병합돼 함께 대법원 판결을 받게 됐습니다.
“숨 쉬는 걸 범죄로 규정할 순 없잖아요?”
구두변론에서 대법관들이 던지는 질문을 보면, 많은 경우 대법관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대법관 9명이 보수 6, 진보 3으로 분류되는 “보수 우위” 상황인데요, 이번 사건에서도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대체로 노숙자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을 자는 건 생물학적 필요에 따라 모든 인간이 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잖아요? 숨 쉬는 것처럼요. 그런데 공공장소에서 숨 쉬는 걸 범죄로 규정할 순 없죠.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는 건 거리에서 숨을 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요?
사실 노숙이란 단어를 곱씹어 봐도 비슷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homeless”니까 단지 “집이 없는 상태”나 “집이 없는 사람”을 뜻하지만, 노숙의 한자어 “露宿”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우리말로 노숙은 집이 없는 상태보다도 “이슬(露) 맞으며 잠을 잔다(宿)”는 뜻을 내포하고 있죠. 집이 없으면 당연히 밖에서 자는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을 범죄로 규정한다면 그 규정이 잘못됐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노숙자를 처벌하려는 게 아니라 노숙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오늘 전문을 번역해 소개한 칼럼도 그렇고 대체로 노숙자들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우려는 충분히 소개한 것 같아 지금부터는 도시와 시 정부의 주장을 중점적으로 소개해 보려 합니다. 라일리도 칼럼에서 “정치적인 성향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도시 간의 단합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는데, 도시들의 하소연과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인권단체들이 노숙자를 위한 의견서를 제출한 것처럼 그랜츠 패스 시의 편에서 논리를 개진한 의견서도 접수됐습니다. 이 가운데 (전국에서 노숙자 문제가 가장 심각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샌프란시스코시, 카운티 정부가 낸 의견서를 보면, 제9 순회 법원의 판결 때문에 노숙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 정부는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노숙자 위기는 (시 정부가) 준비한 해결책들을 모두 무력화할 만큼 심각합니다. [제9 순회 법원의 판결은] 샌프란시스코시 정부가 노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정부에게서 사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는 건 노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권한과 역량까지 같이 빼앗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결과 노숙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방치되면 주민 전체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공중보건, 치안, 복지 전반의 서비스 지원도 차질을 빚게 됩니다.
시 정부가 법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것이 노숙자를 처벌하거나 몰아내는 게 주된 목표가 아니라 노숙 문제를 해결해 도시 전반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는 겁니다.
“충분한” 노숙자 쉼터는 어느 정도?
노숙자 쉼터를 확충하는 문제도 보기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앞서 순회 법원이 “충분한 임시 쉼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노숙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는데, 여기서 “충분한” 쉼터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문제는 예산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절차가 상당 부분 시 정부, 카운티 정부 등 지방정부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기껏 시설을 지었더니, 옆 동네 노숙자들이 대거 우리 동네로 넘어와 다시 과밀 상태가 되고, 침상이 부족해 공공장소에 노숙자 텐트촌이 늘어나면 어떡하나?”
누군가 이렇게 질문했을 때 그럴 리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노숙자 쉼터가 일종의 공공재라면, 현실적으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죠.
또한, 정부가 아니라 종교단체나 비영리단체에서 지은 노숙자 쉼터도 있는데, 이 경우엔 노숙자들이 엄격한 규정을 지키기 싫어서 쉼터에 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쉼터에 머무는 동안은 마약은 물론 술, 담배도 해선 안 되고 통금 시간을 엄수해야 하며, 반려견 등 동물을 데리고 올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는 종교 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곳도 있죠. 노숙자들이 이런 곳을 싫다고 할 경우 이런 시설은 “충분한” 노숙자 쉼터가 있는지 따질 때 계산에서 빼야 할까요? 아니면 넣어야 할까요? 얼핏 사소한 차이 같지만, 노숙자가 “비자발적으로” 노숙자가 됐는지를 판단할 때 중대한 차이를 낳는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법원은 구두변론을 진행했지만, 아직 판결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글 머리에 밝혔듯 이 사건의 판결도 6월에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도시 편에 설 것으로 보이고,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노숙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어떤 판결이 나오든 라일리 디렉터가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입하고 시행하는 일도 더는 미뤄선 안 될 겁니다.
집을 잃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정신건강 치료를 받고 퇴원한 사람들이나 교도소,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에게 임시로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원이 끊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마련해 주는 자활을 도와야 하며, 경범죄 이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법률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도 정부 차원에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했고, 경제적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더 몰렸습니다. 노숙자 문제도 심각해졌고, 여기에 마약 등 치안에 문제가 되는 문제가 겹치면서 도시들은 골머리를 앓게 됐습니다. 연방 대법원이 양측의 우려를 최대한 달랠 수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