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선거 패자도 ‘정치 보복’ 걱정 안 해도 되는 미국
2024년 6월 1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1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올해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층위의 선거가 치러지는 해입니다. 우리나라도 총선을 치르고, 스브스프리미엄을 통해 자주 관련 소식을 전해드린 미국 대선도 오는 11월입니다. 오늘날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적 양극화일 겁니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갈수록 상대방을 향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고,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의 원흉이 오직 상대편에 있다며 손가락질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비판이 점점 격해지다 못해 “나는 잘못한 게 전혀 없고, 모든 문제는 저쪽 편의 잘못”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다 보니, 서로 건설적인 토론은커녕 기본적인 소통도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이 확정된 올해 미국 대선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겁니다. 두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나 전제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할 만큼 이번 대선은 “지면 끝장”인 승부,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겨야만 하는” 최후의 결전이 됐습니다.

선거는 냉엄한 승부입니다. 아무리 원대한 뜻을 품은 정치인이라도 선출직에 도전한 이상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선택받지 못하면 꿈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비판하고, 내가 상대방보다 나은 점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선거에 나선 두 후보, 두 정당 가운데 한쪽이 정말 사라져야 할 문제의 원흉이고, 다른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고결한 존재인 경우가 실제로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는 걸 다른 누구보다 유권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잣대를 우리 편에, 나한테 들이댔을 때 떳떳하지 못한 경우를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냉철한 자기 객관화는 오늘날 정치에서 정말 보기 드문 현상이 됐습니다.

전문번역: 남 비판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는 일이 가능할까? 정치에서.

 

미국을 비롯해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구 사회에서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낯설지 않습니다. 관련한 논의의 역사도 깊죠. 주로 인종, (이민 1, 2세대인 경우) 출신 국가에 따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정치적인 가치관이 형성되는 만큼 같은 인종이나 같은 언어를 쓰는 이민자 집단 안에서는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인종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한국에선 정체성 정치가 다소 낯선 개념입니다. 지역주의와 일견 비슷한 면이 있지만, 미국의 인종, 출신 국가, 지역 등에 비하면 그 차이가 훨씬 작습니다. 인구통계학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한국 정치를 바라볼 때 적용할 만한 기준은 세대와 성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개인의 이념이나 신념에 따른 정치적 지향을 정체성 정치가 덮어버릴 만큼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 정치는 강력한 지표입니다. 예를 들어 독실한 기독교 혹은 가톨릭 신자로 성소수자의 권리나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현재 민주당의 진보 인사들이 주장하는 정도로 보장해주는 데 동의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도 흑인과 라티노 남성 유권자 사이에서는 백인 남성 유권자에 비해 민주당 지지율이 높습니다. 정체성이 이념을 덮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이념에 앞서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은 같은 집단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흑인들은 1960년대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누군가 보는 눈이, 그것도 나와 같은 흑인이 지켜보고 있을 땐 민주당을 꼭 지지해야 할 것만 같은 압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흑인들에게 흑인 면접관이 직접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설문조사를 하면 95%가 민주당이라는 답이 나오지만, 온라인으로 조사하거나 흑인 아닌 면접관이 대면으로 조사하면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하는 비율이 85%로 낮아졌습니다.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땐 “제한맨”,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엔 “제한토”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발 한국인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혹은 토트넘)를 응원하자”는 말의 준말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응원하는 클럽팀을 고르는 데 국적이 굳이 영향을 미쳐야 할까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응원하는 스포츠팀을 고르는 건 개인의 자유라 생각합니다.

다만 정치는 그래선 안 된다고 지적한 닐 그로스 교수의 주장에 저도 동의합니다. 정치 성향은 정체성에 따라 공식처럼 정해지는 것보다 개인이 스스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숙고한 끝에 만들어가는 편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임 있는 판단이 모여 선거의 향방이 결정될 때 정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책임 있는 판단이란 남을 욕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돌아보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점점 더 평행우주 가까워지는 미국의 양극화 정치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보다 훨씬 심각해 보입니다.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기존 정치권과의 갈등이 잦아졌고, 2020년 자신이 패배한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사당 테러를 사실상 방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뒤에는 양측 지지자들이 서로 반감을 갖고 적대시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과정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아시다시피 땅덩이도 넓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동선이 좀처럼 겹치지 않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평생 마주치지 않는 경우도 여전히 많고, 각기 펼쳐진 평행우주에서 평생 살다가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의 정치적인 견해 차이는 미미해 보이는 수준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치적인 가치관이 달라 가족이나 친구와 싸우고 서먹해지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한국에선 그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과 애초에 부딪치고 엮일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선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나마 ‘나와 의견이 다를 뿐 틀리지 않았음’을 헤아려볼 수 있는 기회는 한국이 훨씬 더 많습니다.

미국 정치에 관한 글을 자주 쓰다 보니,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선거에 관해 했던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특히 선거가 “지면 끝장”인 승부, 소위 ‘멸망전’이 되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 번 더 강조하며 글을 맺으려 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건 상대편을 밟고 올라가는 것도,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나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을 지닌 동료 시민이 생각한 비전과 내가 생각하는 길 사이에서 조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다 같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권력을 위임하는 민주적인 절차인 선거를 치르는 유권자의 마음가짐에 달렸습니다. 나의 고상한 의견은 언제나 옳고, 상대방의 의견은 늘 틀렸다고 치부하는 한 민주적인 토론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토론이 없는 선거는 민주적일 수 없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우려스럽지만, 미국을 한국과 비교했을 때 부러운 전통 한 가지는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역사가 아주 길다는 점입니다. 단지 역사가 긴 데 그치지 않고, 그래서인지 정치 보복의 문화가 거의 없습니다. 선거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 상대방 후보라도 정적(政敵)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기도 합니다. 정적이라고 하면 어딘가 제거해야 할 대상처럼 느껴지는데, 미국에서 선거에서 진다고 제거될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실제로 져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물론 트럼프는 이번에도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이 당선되면 곧바로 자신을 “마녀사냥”한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미국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덜한데도 여전히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대한 보복이 우려되곤 합니다. 정치 보복을 어느 정도 막고 견제해 줄 수 있는 보루 가운데 하나가 유권자들의 각성 아닐까요? 나와 상대편의 견해 차이라는 것이 크게 보면 다르지 않은 목표를 향해 가는 접근법만 달랐던 것이라면, 내가 권력을 쥐었다고 상대방을 제거하거나 지워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 시민에게 선거는 나와 다른 생각을 조율해 보고, 내 의견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다듬어서 꺼내보고, 필요하면 고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억지로 토론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기회를 살려보는 건 어떨까요? 다른 거창한 담론과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딱 하나만 전제하고 대화를 나눠봅시다. 나와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상대방도 나처럼 나라를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전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