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경합지 잡긴 잡아야 하는데… 바이든의 딜레마, 돌파구 있을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경합주의 표심이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거란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미국 대선은 주별로 표를 집계해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하는 승자독식 방식을 따릅니다. 그래서 어차피 승부가 뻔히 정해진 주들 말고 경합주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대선과 중간선거에서 나타난 표심, 최근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 대선에서 경합주로 꼽히는 주는 6개입니다. 남부의 조지아(GA), 중부 러스트벨트 지역을 포함한 미시건(MI), 위스콘신(WI), 펜실베니아(PA), 그리고 서부의 네바다(NV)와 애리조나(AZ)입니다.
경합주 가운데 네바다와 미시건주는 3월 4일(월) 현재 이미 경선을 치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승기를 굳힌 공화당과 관행에 따라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의미 있는 도전자가 나서지 않은 민주당 모두 경선 결과에 쏠리는 관심은 예년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미시건은 다소 뜻밖의 이유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미시건주에 많이 모여 사는 아랍계 미국인 유권자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대거 “지지 후보 없음”에 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미시건주에는 20만 명 정도의 아랍계 미국인이 살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치른 미시건주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 후보 없음” 표가 10만 표 이상 나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스라엘의 편을 들자니 한 표 한 표가 소중한 경합주에서 승리에 필요한 아랍계 유권자들의 표를 잃을까 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아랍계 유권자들의 말을 들어주다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격의 빌미만 제공하는 꼴일 수 있습니다. 2016년 대선 미시건주에서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고작 1만 1천여 표를 더 받아 승리하고 배정된 선거인단 16명을 싹쓸어 담았는데, 득표율 차이는 0.23%P에 불과했습니다. 미시건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는 말 그대로 푯값이 아주 비싼, 귀한 표인 셈입니다.
물론 아랍계 유권자들이 바이든한테 실망했다고 트럼프를 찍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 트럼프는 애초에 무슬림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대신 오히려 이들을 향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고 그 반사이익을 노렸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경합주에서 10만 표를 잃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일일 겁니다.
그런데 미시건주 경선이 있던 지난달 27일 히트맵 뉴스의 로빈슨 메이어 편집장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을 보면, 미시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러스트벨트 안에서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이 미시건주인데, 바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태풍과 같은 변수가 곧 미국 시장에 상륙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중국산 전기차 BYD(비야디)입니다.
전문 번역: 중국산 전기차의 부상이 왜 미국 대선의 중요 변수인가, 설명해드립니다.
지난해 전미자동차노조의 파업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사건이었습니다. 스프를 통해서도 소개했듯이 오랫동안 이윤을 나눠 받지 못한 노동조합이 단체행동을 통해 효과적으로 경영진을 압박한 결과,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죠. 그런데 노동조합이 파업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던 데는 정치권을 포함한 전반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자동차노조 파업을 상징하는 사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이든 대통령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나란히 서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적힌 피켓을 같이 들고 연대를 표시한 장면을 담은 사진입니다. 물론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려면 노동자들의 월급이 올라야 했고, 원래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걸 정책 목표로 삼는 민주당의 대통령이니 노조의 요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현역 대통령 사상 최초로 노동조합의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을 연출한 데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자동차노조의 파업이 일어난 지역이 미시건주 같은 경합주가 아니었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 피켓을 들고 서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노조가 거둔 역사적인 승리의 기쁨이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전미자동차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자동차 생산을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옮기는 데 대부분 반대합니다. 생산 공정 자체가 다르고, 생산 설비도 새로 바꿔야 하는 일이라 고용 안정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노조는 지난해 단체협상을 타결하면서 전기자동차 생산을 늘리되 생산 전환 속도를 조절하고, 기존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강화해 고용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등 나름의 안전장치를 넣었습니다. 3대 자동차 제조사들도 협상 타결을 위해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전기차로의 전환과 관련한 바이든 대통령의 속내는 상당히 복잡했을 겁니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나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바이든 대통령이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은 또한,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선거를 치렀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편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기후변화 대책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는 여론이 높으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죠. 그래서 바이든은 노조와 연대하면서도 전기차 전환에 관한 언급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합주 미시건에서 열심히 유세를 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의 이런 모습을 “위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는 날조된 가짜뉴스라며, 자신이 당선되면 내연기관 차량 생산이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성비 측면에서 감히 경쟁할 엄두도 나지 않는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등 각종 관세 장벽을 세워 어느 정도 수입을 제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입 제한 조치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스스로 공정한 시장 경쟁을 막는다는 비판에 영영 귀를 닫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주창할 수 있던 건 우수한 기술력 등 산업별로, 부문마다 최소한 한 가지 확실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야디를 필두로 한 (미국 기준) 해외 자동차 브랜드들의 수입산 전기차들 앞에선 미국이 내세울 수 있는 비교우위가 매우 빈약해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매긴 관세 탓에 더 비싸진 중국산 전기차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싸진 미국산 전기차가 여전히 도무지 경쟁할 수 없는 수준이란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똑같은 제품은 아니지만, 제품의 성능이나 효능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가격 차이가 크다는 건 전기차 생산 인프라 측면에서 미국이 뒤처졌다는 뜻입니다.)
올해 대선에서 다시 맞붙을 것이 유력한 바이든과 트럼프는 정치적 성향부터 정책, 가치관까지 서로 다른 점투성입니다. 그런 두 전·현직 대통령에게서 찾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비슷한 점이 있다면 바로 중국을 향한 정책 기조입니다. 흔히 집권 중에 중국과 관세 전쟁을 벌였고, 걸핏하면 중국을 향한 혐오 발언을 내뱉는 트럼프만 중국에 강경한 정책을 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을 견제하고 필요하면 억제하려는 생각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메이어가 칼럼에 썼듯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을 모두 다 되돌려놓은 건 아닙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매겼던 높은 관세를 일단 그대로 놔둔 게 대표적입니다.)
똑같이 중국을 견제하고 비판하지만, 정치적 수사와 세부 정책을 보면 둘의 차이가 보입니다. 트럼프는 단순하고 명확하게 중국을 응징하는 식으로 무역 정책을 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그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으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중국에 선제적으로 관세를 매기는 식이죠. 관행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트럼프는 그런 데 아랑곳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중국이 보복 관세를 매기면서 관세 전쟁이 벌어졌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은 중국에 ‘화끈하게’ 보복했다는 이미지를 남긴 것 외에 실리를 챙겼다고 보긴 어려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바이든의 무역정책은 적어도 트럼프의 무역정책보다 접근부터 훨씬 더 복잡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공급망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을 계속해서 추진하다 보니, 서로 모순인 과제와 목표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일도 생겼습니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자연히 중국과의 교역량을 늘려왔는데, 미국이 앞장서서 중국을 견제하는 통에 중국과의 무역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동맹국에 특정 분야에서는 중국과 무역을 하지 말라고 종용하면서 그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해 주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가운데 누가 선거에서 이기든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으로 인해 미시건주 자동차 산업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이미 늦었을지 몰라도 더 늦기 전에 전기차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생산 능력을 키워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유권자인 노동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딜레마 상황에서 두 후보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특히 기존에 자신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을 붙들어 놓아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미시건주 선거는 점입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