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장르가 된 범죄실화물, 어떻게 소비하는 게 정답일까
2024년 3월 9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1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의 잔혹함과 끔찍한 범죄, 그 어두운 세상의 단면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은 역사가 깊습니다. 사형 등 형벌을 집행하는 것이 서민들의 엔터테인먼트였던 먼 과거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범죄와 범죄자를 조명한 콘텐츠는 늘 인기가 있었죠. 서구에서는 1889년부터 60여 년간 법정에서 경험한 사건을 에세이로 써서 발표한 스코틀랜드의 변호사 윌리엄 러피드를 현대 범죄실화(true crime) 장르의 아버지로 꼽습니다. 오늘날 범죄실화는 신문과 잡지, 도서와 TV, 라디오, 팟캐스트, 유튜브, 영화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나의 장르입니다.

전문 번역: 30년 전 살해당한 언니, 우리의 고통을 오락으로 포장해 버린 ‘범죄실화’ 장르

 

지난 8일 뉴욕타임스에는 이처럼 범람하는 범죄실화 장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실렸습니다. 범죄 피해자 가족이 쓴 글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습니다. 필자 애니 니콜의 언니 폴리는 열두 살 때였던 1993년, 자택에 침입한 범인에 의해 납치, 살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평화로운 중산층 주택가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세간의 분노를 일으켰고, 많은 언론이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다뤘죠. 필자는 이러한 미디어의 행태가 선정적인 방식으로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사생활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실제 사건을 왜곡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고 비판합니다. 나아가 중산층 백인 소녀 살해 사건과 같은, 잘 팔릴 만한 사건만 주목하면서 실제 범죄 취약계층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에 눈을 감아 상황이 더 악화하는 점도 지적하죠.

‘범죄실화 장르’라는 용어가 익숙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대부분 이 장르를 이미 접해보셨을 겁니다. 범죄 다큐멘터리나 범죄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드라마는 스트리밍 사이트 인기 콘텐츠 목록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알고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 사전>, <궁금한 이야기 Y>, <용감한 형사들>, <실화 탐사대> 등 화제성 높은 TV 프로그램들도 조금씩 결이 다르지만, 모두 범죄실화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범죄실화 장르는 왜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일까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흉흉한 세상에서 범죄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여느 탐사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처럼, 묻힌 사건에 필요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범인을 잡거나 정책적인 개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안전하고 안락한 방 안에서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과 같은 심리를 자극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당 범죄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 범죄실화 장르의 제작과 소비라는 문제를 좀 더 신중하고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소설 <나를 찾아줘(Gone Girl)>로 잘 알려진 작가 길리언 플린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골든 스테이트 킬러(I’ll Be Gone in the Dark)>라는 범죄실화 작품의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범죄실화를 사랑하지만, 독자로서 내가 다른 누군가의 비극을 소비하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여느 책임감 있는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최고의 작품, 즉 끈질기고 통찰력이 있으며 인간적인 작가가 쓴 작품만 읽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주목받지 못하는 소수자 대상의 범죄를 집중적으로 다룬 시리즈나,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하거나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배제하는 재연 영상 등 장르 내의 자정 현상도 조금씩 눈에 띕니다.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애니 니콜이 제작하는 팟캐스트처럼 피해자의 서사와 범죄 예방, 교화 등을 중심에 둔 제작물 역시 더 많아지면 좋겠지요. 어제저녁 퇴근 후 내가 유튜브에서 재생했던 범죄실화물은 어떤 기준과 윤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나요? 소비자로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