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타인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024년 3월 5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1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공감’, ‘공감 능력’이 화두로 떠오른 시대입니다.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범죄의 원인을 공감 능력 결여에서 꼽는 범죄 전문가들도 있고, 4차 산업과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공감 능력이야말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중요한 영역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나를 이입하고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2003)>에서 지구 반대편의 재앙을 작은 스크린으로 너무나 손쉽게 접하게 된 현대인들이 타인의 고통과 끔찍한 참사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제기했습니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정체성을 가지고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온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타인의 다름과 상실,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며 공감한다고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세상을 넓고 깊게 읽기를 방해하는 착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누구나 뉴스에서 끔찍한 소식을 접하고 괴로워하다가도, 당장 다음날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 앞에 금세 잊고 마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다소간의 죄책감을 느낀 분도 많을 겁니다.

전문 번역: 무기력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그 감정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새해 첫날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읽어보면,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참상, 사회적 거악의 존재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무관심이나 냉혹함 때문이 아니라,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감에서 오는 무력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함’이 아니라 ‘공감성 고통(empathic distress)’이라고 설명하죠.

필자는 ‘당신의 고통을 나도 느낀다’는 ‘공감(empathy)’과 그런 마음을 느꼈을 때 내가 하는 행동에 초점을 둔 ‘연민(compassion)’의 개념을 비교해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고통받는 이에게 나의 공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나와 타인, 세상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편의상 칼럼에 등장하는 두 개념을 ‘공감’과 ‘연민’이라는 단어로 번역했지만, 어딘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노파심에 원어를 덧붙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말로도 공감과 연민, 동정 등 여러 가지 개념을 뭉뚱그려 사용해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지인지, ‘empathy’와 ‘compassion’의 차이에 관한 질문과 답변을 검색 엔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한 웹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empathy’는 나를 타인의 처지에 놓고 거기서 느낄 만한 감정을 느껴보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일” 혹은 ‘역지사지’에 가까운 개념이죠. ‘compassion’은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면서 나아가 돕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겁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개념인 ‘측은지심’이 ‘compassion’과 비슷한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남의 불행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 위험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달려가 구한다는 ‘행동’으로 설명되니까요.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도 저서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2022)>에서 “공감의 기저에는 더 높은 수준의 컴패션이 존재한다”라며, 그것이 “타인을 향한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 이상의 가치이며 타인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욕구와 헌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진심 어린 공감은 실제로 타인의 고통을 덜어준다고도 하죠. 압도적인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들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작은 행동 하나로 무력감을 조금씩이나마 극복해 나가는 것. 이제 막 시작된 새해 결심 중 하나로 삼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