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당신이 먹는 것의 먹는 것까지 생각해 보자는 제안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3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4월, 저는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의류공장 붕괴 사고 10주기를 맞아 쓴 글에서 윤리적인 소비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나눴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의식주의 공급망을 하나씩 따져보면서 음식은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제약이 있어서 지구 반대편으로 오가는 일이 흔치 않다고 썼습니다.
냉장 혹은 냉동 보관하지 않는다고 상할 걱정이 없는 의류에 비하면 분명 식재료나 식품이 옮기기 힘든 건 맞지만, 몇 가지 생각해 볼 요인이 더 있었습니다. 우선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통 중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었습니다. 비용이 줄면서 공급이 쉬워진 겁니다. 대개 한 번 사면 못 해도 몇 년을 입는 옷과 달리 사람은 매일 거르지 않고 에너지원인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즉 먹을거리는 입을거리보다 전체적인 수요가 훨씬 더 빨리 늘거나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다소 정체됐지만, 21세기 들어 꾸준히 지속된 세계화로 인해 이제는 먹을거리도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 유통,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먹을거리는 다른 어떤 상품, 서비스보다도 더 많은 소비가 자주 일어나고, 생산과 유통에 이르는 산업 전반이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식품과 식재료 공급망은 의류 공급망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합니다. 그러다 보니 먹을거리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윤리적인 소비 문제도 한둘이 아닙니다.
전문 번역: 오늘 저녁 먹은 오징어튀김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안 얼비나는 오징어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오징어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이 (주로 식감 때문에) 싫어하는 식재료 가운데 하나였는데, 1980년대 들어 양상이 바뀝니다. 우선 오징어를 튀기는 조리법을 개발해 식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맛없는 해산물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오징어(squid) 대신 친척뻘인 한치(calamari)로 둔갑해 유통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썰어서 튀긴 다음 요리하면, 원래 이게 오징어인지 한치인지 구분하기 어렵죠.
미국 같은 큰 나라에서 특정한 식재료나 음식이 갑자기 큰 인기를 끌게 되면 급증한 수요를 맞추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해안선이 길고, 배타적 경제수역이 넓어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오징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때 중국이 등장합니다. 먼바다와 대양에서 조업하는 선박 규모나 어획량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를 압도합니다. 중국 원양어선들은 먼바다에서 오징어를 잡아 전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이를 가공, 포장한 다음 수출했습니다. 미국 식당들은 중국 원양어선 기반 어업에 오징어 공급을 상당 부분 의존하게 됐죠.
문제는 중국 원양어선이나 가공공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의 보고서와 근거 자료들을 보면, 바다에서는 폭력과 감금을 토대로 한 현대판 노예 노동이 빈번히, 버젓이 일어나고, 조업 금지 구역을 지키지 않는 등 이런저런 경계선을 침범하는 일도 잦으며, 환경 관련 규제는 거의 묵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식탁에 오르는 오징어의 주요 공급원인 중국 원양어선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얼비나는 지적합니다.
공급망 전반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원양어선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나 환경 파괴 문제뿐 아니라, 잡은 오징어를 가공하는 공장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서로 많이 의존하는 무역 파트너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경쟁 혹은 대립하는 국가인 만큼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중국산 혹은 공급망에 중국이 걸쳐 있는 해산물은 미국에 수입해선 안 되는 제품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요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눈을 감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는 엄청난 용기와 노력을 들여 다양한 해양 범죄의 실태를 취재하고 밝혀내면서 이 충격적인 사실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 전체를 생각하면 여전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식품은 공급망이 워낙 거대하고 복잡한데, 그 가운데 “거대한 무법지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바다가 낀 해산물의 경우는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규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먹을거리와 윤리적인 소비
사실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매일 하는 행위이자,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문화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 누군지 드러낸다”는 뜻의 “You are what you eat”이란 문구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재룟값의 몇십 배를 주고 고급 요리를 사 먹는 사람들을 향해 허영심 가득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있지만, 재료를 조리하는 행위 이상의 무언가에 가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음식에 엄연히 문화적인 요소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교리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또 채식주의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실로 다양합니다.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에 따르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는 일조차 쉽지 않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두운 경로를 밟은 식재료를 걸러내고 이를 개선하는 일도 결국 최종 소비자인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거대한 공급망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꾸는 길 가운데 소비자가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수요의 흐름을 바꾸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을 지배하는 가격 메커니즘을 넘어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소비자의 수요는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도 1980년대 미국에서 오징어를 구미가 당기지 않던 음식의 대명사에서 누구나 일단 시키고 보는 맛있는 요리로 바꿔낸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어떤 음식을 소비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품격이 드러난다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일이 될 겁니다.
You are what you eat eats.
제가 살던 동네 커피숍 게시판에서 언젠가 봤던 문구입니다. 앞서 썼던 “You are what you eat”을 변형한 글이겠죠. 우리말로 옮기면, “당신이 먹는 것의 먹이가 당신의 품격을 드러낸다” 정도가 될 겁니다. 아마도 지나치게 가공하지 않은 곡물이나 육류 대신 되도록 채식을 추구하는 식습관 등을 권장하기 위해 만든 문구일 테죠. 이 말을 다시 변형해서 우리말로 옮겨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의 품격은 당신이 먹는 음식의 공급망이 얼마나 정의로운지에 달렸다.
인간다운 방식으로 생산된 식재료가 대우받는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 모두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