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2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꽃 피울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업적을 남기고도 제대로 된 인정과 평가를 받지 못한 여성들의 명단은 성차별과 남성 중심주의의 역사만큼이나 깁니다. 자신도 뛰어난 조각가였지만, ‘로댕의 연인’으로만 알려졌던 카미유 클로델, 남편의 이름으로 책을 내야 했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등 예술 분야만 해도 그 전통이 유구하고, 우주 개발, 핵무기, 컴퓨터의 탄생 등 과학사의 굵직한 성과 뒤에도 여성들의 숨은 활약이 있었음이 한참 후에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법률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법관까지 지낸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도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1960년대에는 여성 변호사를 받아주는 로펌이 없어 취직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학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게 된 것이 이제 100년 남짓한 이야기니, 박사나 교수 자리는 말할 것도 없죠. 대학생 성비가 1:1에 달하고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오히려 더 높아진 오늘날에도 한국 국립대 전임교원 중 여성 비율은 2022년 기준 20%가 채 되지 않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는 1948년에 최초로 정년을 보장받은 여성 정교수가 탄생했지만, 여전히 여성 정교수의 비율은 전체 정교수의 30%에 미치지 못합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하버드대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가 수상하면서, 경제학계의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도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의 제니퍼 번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남성 동료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 경제학자들을 소개했습니다.
전문 번역: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뒤에는 늘 여성이 있었다
칼럼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요 연구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연구를 함께한 애나 슈워츠와 로즈 프리드먼, 도로시 브레이디, 마거릿 리드와 같은 여성 경제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남성 중심적인 학계 분위기 탓에 비주류, 주변인에 머물러야 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색다른 시각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합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골딘 교수 본인의 여정도 녹아 있는 연구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가 성과를 인정받은 주제인 노동 시장의 성별 격차 문제는 본인의 삶과도 긴밀하게 연관된 문제였을 겁니다. 골딘 교수는 경제학계에서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에도 남편 로렌스 캐츠와 함께 등장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골딘 교수는 이미 전미경제학회장을 지낸 명망 높은 경제학자였지만,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가 부부의 공동 저술 논문을 언급하며 저자명을 알파벳 순서가 아닌 “캣츠(Katz)와 골딘(Goldin)”으로 소개했다가 사과하고 기사를 정정했습니다. 당시 기사는 그 외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부부가 모두 존경받는 경제학자일 때도 남편의 이름을 먼저 언급하거나 아내를 부수적인 위치의 제2 저자처럼 취급하는 서술이 언론에서 자주 보인다며, 여전히 만연한 무의식적 편견을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경제학과는 하버드대에서도 여성 교원의 비율이 유난히 낮은 편입니다. 2017년 기준 15%로 환경공학부, 생명공학부에 이어 여성 교수의 비율이 세 번째로 낮은 학과였죠. 현재 학과 홈페이지에 소개된 교수진 47명 가운데 여성은 여전히 7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클라우디아 골딘 박사가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가 되었던 1990년에 비하면 나름의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늦게까지 여성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던 노벨 경제학상 부문도 이제는 여성 단독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똑똑한 여성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겁니다. 변화의 속도는 더디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뉴스페퍼민트가 팟캐스트 아메리카노 시즌3에서 네 편에 나누어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