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지구를 위해 미국인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2023년 10월 2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4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스브스프리미엄 앱에서도 저희가 쓴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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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퍼져 모두를 집에 묶어뒀던 2020년 4월, 뉴욕시 지역 소식에 재미있는 기사가 한 편 실렸습니다. 팬데믹 때문에 도시가 멈춰버리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사라져 먹을 게 없어진 쥐들이 굶주림에 분노한 채 거리를 배회하고, 공격적으로 먹이를 찾다 보니 사람 사는 집에도 자주 출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21년, 시기는 이맘때쯤인 8월 말로 기억합니다. 늦여름, 초가을은 한국에 태풍이 오는 것처럼 미국에도 허리케인이 오곤 합니다. 다만 미국은 땅덩이가 워낙 넓어서 허리케인이 전 국토를 덮는 일은 없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주들만 영향을 받죠. 2021년 8월 말에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는 조금 달랐습니다. 루이지애나 등 남부 일대뿐 아니라 미국 동부 해안을 훑고 올라오며 곳곳에 폭우를 뿌렸습니다. 특히 뉴욕, 뉴저지 일대에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피해가 주로 무허가로, 또는 규제를 어기고 증축된 반지하 주택들이 모여 있는 저소득층 주거 지역에 집중되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도 취약 계층에 집중된다는 환경 인종주의 개념이 다시금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명 피해를 다룬 기사에 묻혀 주목을 덜 받았지만, 이때 물난리로 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고 몇 가지 이유로 놀랐습니다. 우선 하수구나 지하실 등 낮은 지대에 살지만, 홍수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높은 곳으로 대피할 수 있다고 알려진 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니, 말 그대로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많은 비가 내렸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또 하나 놀랐던 건 물에 둥둥 떠다니는, 강변과 해변에 떠밀려 온 쥐 사체 사진으로 소셜미디어가 도배되다시피 했는데, 정작 뉴욕시에 쥐들이 얼마나 사는지, 이번 폭우로 쥐 개체수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제대로 된 통계를 기반으로 한 기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통계가 없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뉴욕에 쥐가 얼마나 있는지 인간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 방면에서 세계 최고 도시로 꼽히는 뉴욕이지만, 그 뉴욕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쥐라는 말이 순전히 우스갯소리는 아니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뉴욕시에만 200만 마리가 산다는데…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는 없지만, 이런저런 자료를 취합해 추정한 뉴욕시의 쥐 개체수는 약 200만 마리라고 합니다. 뉴욕시 인구가 850만 명 정도니까 사람의 1/4이나 되는 거죠. 뉴욕의 지하 세계는 마피아가 아니라 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뉴욕 아파트에도 쥐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뉴욕에 이사 온 지 2년이 좀 더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하철역이나 식당 뒷골목 쓰레기통 근처에서는 물론 쥐를 자주 봤지만, 집에는 나타나지 않길래 9층까지 올라올 일은 없나보다 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저 제가 운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2년 넘게 쥐가 한 마리도 안 나오다니, 정말 뉴욕 산 거 맞느냐”, “나는 이사 오고 사흘 뒤에 쥐가 나와서 바로 기겁했다”, “나는 1년에 2~30마리는 기본으로 잡는다, 한 마리 본 것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라”는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빴죠. 저도 그날 이후로 어디 가면 쥐를 잡은 무용담을 늘어놓았지만, 집 안에서 쥐를 본 건 당연히 꿈에 또 나올까 두려운 경험이었습니다.

아파트 관리실에 이야기하자, 이튿날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한 분이 쥐약을 치고 덫을 놓으러 집에 왔습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걱정을 한 보따리 늘어놓던 제게 아저씨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쥐도 사람이랑 별로 다를 거 없어요. 어젯밤에 갑자기 기온 뚝 떨어졌죠? 엄청나게 추웠잖아요. 그럼 따뜻한 데 찾아 들어오는 거예요. 식성도 마침 사람하고 거의 겹치니, 들어올 틈만 보이면 당연히 들어오겠죠.

그러고 보니 11월 말, 갑자기 날이 추워져 밤 기온이 체감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날 쥐가 나타났습니다. 아저씨는 현관문 아래 있는 작은 틈, 붙박이장 옆과 아래 난 작은 틈에 제가 허겁지겁,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를 보더니 이렇게 귀띔해 줬습니다.

종이나 나무는 소용없어요. 테이프도 그닥… 쥐는 계속 이를 갈아야 하는데, 오히려 이 가는 데 딱 좋은 소재들이죠. 쥐가 가장 싫어하는 재질이 철 수세미에요. 공업용 철 수세미처럼 아주 거친 거, 그런 거로 구멍 막아놓으면 돼요. 냉장고 뒤로 숨어들었다고 했죠? 여기 보니까 코드 때문인지 뒤에 구멍이 뚫려 있네요. 여기가 통로 같군요. 여기에 약을 쳐둘게요.

전문가의 손길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아저씨는 임무를 완수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이 건물만 해도 신축에 속할 만큼 뉴욕에 낡은 건물 많잖아요? 그런 건물 안 배관 근처 공간들이 죄다 쥐들이 살기 좋은 데죠. 어쩔 수 없어요. 아무튼 미끼 놓고 약 쳐 놓았으니, 그거 먹으면 이 집엔 당분간 안 나타날 거예요.

저희 아파트는 1957년에 지은 건물로, 한국 기준에서 보면 아주 낡았지만, 뉴욕에선 전쟁 이전에 지은 건물(pre-war building, 여기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미는 전쟁 후에 지은 건물(post-war building)입니다. 더 낡은 건물이 많다 뿐이지, 1950년대에 지은 건물이 낡지 않았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게다가 근처에 식당도 많다 보니, 쥐들이 살기 안성맞춤인 공간이 저희 아파트 건물 안팎에 많았죠.

아저씨가 약을 잘 친 덕분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건지 그 뒤로 쥐는 다시 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집에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 쥐는 점점 더 뉴욕의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지난 4월 아주 특이한 직함의 공무원을 임명합니다. 설치류 완화국장, 이른바 뉴욕에서 쥐를 몰아낼 쥐 황제(rat czar), 좀 더 실질적인 의미를 고려해 번역하면 쥐 박멸 총사령관입니다. 당시에도 수많은 관련 기사와 팟캐스트에서 이 소식을 다뤘습니다. 이후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쥐는 뉴욕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요?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제이슨 먼시 사우스 박사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한 편 썼습니다.

전문 번역: 12년 간 쥐를 연구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쥐가 아니라 사람”

 

칼럼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문제는 쥐보다도 쥐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뉴욕시 당국은 장기적인 계획도, 데이터와 체계도 없이 대증요법에 가까운 처방만 남발해 왔는데, 그 결과 모두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데도 쥐가 얼마나 많이 사는지 개체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째 쥐와의 전쟁을 벌인다고 하면서 단 한 번도 승기를 잡은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사우스 박사는 특히 쥐약을 아무리 많이 살포하고, 쥐덫을 아무리 촘촘히 설치해도 쥐의 번식력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뉴욕시는 이래저래 쥐에게는 번식하기 좋은 천혜의 환경입니다. 지저분한 거리의 쓰레기통, 식당 뒷골목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널려 있고, 인프라와 건물이 낡아서 하수도나 건물 안 곳곳이 쥐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죠.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시 당국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실천이 바로 쓰레기 분리수거입니다. 특히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은 채 버려지다 보니 모든 쓰레기통, 쓰레기 집하장, 매립지에 쥐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 과연 될까?

미국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살아본 곳들은 다 그랬습니다. 물론 뉴욕만 해도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퇴비화하는 업체들이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뒀다가 동네에 장이 설 때 가지고 가서 버리고 올 수 있죠. 저희 아파트 지하에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통이 있긴 합니다. 다만 이게 의무가 아니다 보니, 참여하는 사람만 하게 됩니다. 신경 쓰면 할 수는 있는데, 안 해도 그만이다 보니 몇 번 하다가 귀찮으면 잊어버리기 일쑤죠.

배달 음식이 따로 냉장고에 넣어두기 애매하게 남았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음식물 포장지나 랩, 일회용 수저, 포크도 그냥 커다란 쓰레기 봉지에 한데 다 넣습니다.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하는 것 자체가 권장 사항일 뿐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처럼 쓰레기봉투를 규격화하고 돈을 주고 사게 하면 어떨까요? 제대로 시행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은 정책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 또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습니다. 유권자들이 이를 반길 리 없다 보니, 그 어떤 정치인도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정부든 누구든 내 삶에 간섭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미국 사람들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걸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이렇게 버리면 안 된다, 저기에 담아서 목요일까지 기다렸다가 버려라고 했다가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혀 마찰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정책을 대놓고 무시해 버릴 겁니다.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넣지 않았다고 미국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린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제 예상이 빗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려면 정책을 강제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기발한 방법이 나와야 할 겁니다. 어떤 게 묘안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폭염 특보가 발효됐을 때 전기를 아껴 정전을 예방하는 방법에 관해 소개했던 글에서처럼 스마트 온도조절기에 해당하는 스마트 쓰레기 배출기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고, 경제적인 보상뿐 아니라 분리수거하는 게 “쿨해 보이게” 캠페인을 벌이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무슨 수를 쓰든 미국 사람들이 분리수거하게 만든다면, 이는 전 지구의 환경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경제 규모나 인구, 에너지 소비량을 봤을 때 미국은 개선할 여지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