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시간의 불평등’에 가려진 근본적 요인을 봐야 할 때
2023년 10월 1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8월 2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세상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눈에 보이는 요인과 잘 보이지 않는 요인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차이가 크지 않아 좀 더 눈에 잘 띄는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이 섞여 있을 때도 있고, 겉에서 볼 때와 속을 들여다봤을 때 혹은 뒤집어서 이면을 봤을 때 결론이 사뭇 달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어느덧 15년 전에 펴낸 책 “보보스는 파라다이스에 산다”에는 지금 읽어도 놀라운 통찰이 여러 가지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바로 요즘 부자는 어떻게 부자 티를 내느냐는 저자의 관찰이었습니다. 예전 부자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을 사서 부를 과시했습니다. 으리으리한 집에 커다란 TV를 포함해 비싼 가전제품을 채워 넣고, 차도 고급 승용차를 탔죠. 서민들은 쉽게 구경하기 힘든 산해진미를 대수롭지 않게 사 먹는 것도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좀 다른 경향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유형의 부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에 돈을 씁니다. 우선 먹는 것만 해도 얼핏 보면 서민들의 식단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채소나 과일이라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또는 믿을 수 있는 생산자가 기른 생산품에 기꺼이 몇 배 더 많은 돈을 냅니다. 옷도 명품 로고가 떡하니 박힌 비싼 옷 대신 평범해 보이지만 기능이 좋거나, 아니면 알 만한 사람만 아는 브랜드 옷을 사 입는 식입니다. 여전히 큰 집과 차를 사는 부자도 물론 있지만, 새로운 부자들은 그런 것보다는 여행이나 경험에 돈을 씁니다. 내공을 쌓고 내실을 채우는 데 돈을 쓴다는 거죠.

브룩스의 주장에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닙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책이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토론과 반향을 낳은 관찰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부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해 어디에 돈을 쓰느냐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정확히 예측하거나 분석하지 못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그런데 만약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요인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혹은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질 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숨은 요인까지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이써 맥컬리가 불평등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지만,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요인인 시간에 관해 쓴 칼럼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 번역: ‘시간의 빈곤’, 값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불평등의 민낯

 

우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을 겁니다. 불평등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드리운 가장 어두운 그늘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너무 심한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동력을 떨어뜨리기도 하므로,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불평등을 문제로 생각합니다. 이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갈수록 극심해지는 불평등은 세상 사람들이 다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면

지금껏 우리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수많은 정책과 대책은 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기준이자 지표가 소득이나 재산, 부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맥컬리는 칼럼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인을 지목합니다. 바로 시간이죠.

시간의 불평등,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구조적으로 공평하지 않게 배분돼 있다는 점이 바로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더욱 고착하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맥컬리는 지적합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을 나온 고등교육 프리미엄이 여전히 크고, 공교육의 편차도 한국보다 훨씬 큰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일리 있는 통찰입니다. 시간의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모든 불평등이 기적처럼 사라지는 일은 물론 없겠지만, 반대로 시간의 불평등, 또는 시간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오늘날 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한 많은 나라에서 이른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일은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최소한으로 해야 할 책무로 여깁니다. 서로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는 아무리 경쟁을 강조해봤자, 더 효율이 높아지기는커녕 분열과 반목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기회의 평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을까요? 당장 많은 나라가 교육받을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기초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해놓고 있습니다. 교육은 학교를 열심히 짓고 훌륭한 선생님을 육성해서 교육 현장에 투입한다고 저절로 시행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로 부모의 돌봄에 필요한 ‘시간’이 또 등장합니다. 부모가 자녀와 많이 놀아주고 숙제도 도와줄 수 있는 아이가 학교생활도, 공부도 더 잘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부모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나뉘는 사회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사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간의 불평등이 결과적으로 교육받을 기회의 불평등, 나아가 교육 수준에 따른 소득 불평등을 낳기 때문입니다.

 

역지사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곧잘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을 요구하곤 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이른바 “시럽 급여” 논란도 그랬죠. 정책 결정자나 기득권층이 실업 수당을 받는 이들의 표정, 옷차림을 함부로 문제 삼는 건 엄연한 인권 침해고, 한참 양보해도 결례입니다.

맥컬리는 미국에도 비슷한 편견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이 여가를 즐기고 시간을 여유 있게 쓰면 이를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의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부자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이든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쓸 권리가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특히 자녀가 있을 경우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장해 주는 건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구조적인 원인을 살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각자 처지가 다른 만큼 남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지사지는 쉽게 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죠. 그렇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역지사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처지를 바꾸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역지사지라면, ‘지금 저 상황에 처한 저 사람은 무엇이 필요할까?’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정책 결정자들은 꼭 생각해 봐야 할 덕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