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18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황우석 사태’와 그 이후
2023년 8월 20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6월 2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아직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나라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 결과를 연일 내놓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언론을 다루는 방법도 능숙하며 정치력 또한 뛰어난 그는 곧 국가 최고과학자의 칭호를 받으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자신의 연구는 전 세계의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라 주장했고, 정치인들과 함께 향후 이 나라의 먹거리가 될 산업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며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어느 날, 그 과학자의 연구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국민 중 극히 일부만이 이 주장에 동조할 뿐 대다수는 이들이 사소한 문제로 이 나라의 영웅을 괴롭힌다고 말하며 국익을 위해, 혹은 인류의 더 큰 이익을 생각해 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포탈의 조사 결과 그 비율은 2% 대 98%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윤리 문제를 넘어 그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부정행위가 있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현실은 소설보다 이상하며, 이는 소설은 가능성에 구속되지만, 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 말했지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 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대부분 이들은 기억할 겁니다. 사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와 함께 말이지요. 바로 황우석 박사입니다. 위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황우석 박사의 행적은 간간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연구 부정은 과학계에서 가장 큰 잘못이며, 이는 그것이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 고의로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 다른 과학자들을 헛수고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인류에 큰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연구부정을 저지른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지위를 잃고 학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는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민간 기관에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동물 복제 기술은 시장의 수요가 있었고, 이제 그는 낙타 복제의 수요가 있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최첨단 복제 연구소를 이끌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결말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기 잘못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21일, 황우석의 윤리 위반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 중의 한 명인 네이처의 데이비드 시라노스키는 황우석의 근황이 더욱 중요한 문제를 일깨워 준다는 내용의 글을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란에 올렸습니다.

전문 번역: ‘과학 사기꾼’은 어떻게 재기에 성공했나

 

그것은 바로 과학계의 자정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과학계의 부정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도 이어집니다. 과학에 자정 능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 모든 첨단 기술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이야기가 다르게 진행되었을 수 있다는 시라노스키의 말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곧, 만약 그 연구팀이 실험 결과 이미지를 조금 더 신경 써서 조작했다면 연구논문의 부정행위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난자 획득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그저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투정쯤으로 치부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그의 연구는 그저 너무나 어려운 기술이기에 다른 연구팀은 따라 할 수 없는 훌륭한 연구로 긴 시간을 버티며 시라노스키가 말한 것처럼 재현 불가능한 유명한 줄기세포 연구의 반열에 올랐을 겁니다. 사실 여기에 과학계의 자정능력이 한계를 가지는 한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곧, 모든 연구는 아직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며, 따라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그만큼 검증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과학 자체의 한계이기 때문에 정말로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는 그래도 언젠가는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다행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소한 결과들은 이를 검증할 동기가 없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검증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설사 문제를 인지했다 하더라도 이를 확인하는 책임이 이 일이 밝혀졌을 때 정작 피해를 보게 될 해당 기관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에는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연구 부정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어쩌면 문제의 원인은 연구 결과에 연구자의 인생을 걸게 만드는, 경쟁을 자극하는 연구 문화와 이 사회의 분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는 것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의 저출산이나 교육열의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과도한 경쟁 문화를 꼽는 것만큼이나 멀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시라노스키는 황우석 사태가 기자들에 의해 겨우 밝혀질 수 있었다고 말하며 과학계의 감시 시스템의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기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준 연구원들이 있으며, 이들이 진정한 과학계의 감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업적을 부풀리고 세상의 명예를 좇을지 몰라도, 여전히 많은 과학자에게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것입니다. 과학은 매 순간 진실과의 싸움이며, 세상 모두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