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쟤도 안 하는데 왜 내가 해야 해?”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2023년 6월 1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1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이번주 미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한 뉴스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한국 언론에서도 자세히 다룬 우크라이나 전황 등이 담긴 기밀문서 유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부자 친구로부터 20년 넘게 초호화 여행 접대를 받아왔다는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특종 기사였습니다.

대법관 9명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토머스 대법관을 오랫동안 접대해 온 ‘절친’은 텍사스 댈러스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재벌 할란 크로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로퍼블리카 기사는 토머스 대법관 부부가 할란 크로우 부부와 함께 다닌 주요 여행지를 짚었는데, 그 가운데 2019년 여름에 다녀왔다는 인도네시아 여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려 50m가 넘는 대궐 같은 초호화 유람선을 타고 9일 동안 섬 곳곳을 유람했는데, 여행 경비가 1인당 50만 달러, 우리돈 6억 5천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대법관 연봉은 28만 5천 달러, 우리돈 3억 5천만 원입니다.)

축구장 절반 길이나 되는 큰 배를 많은 사람이 같이 타는 크루즈가 아니라, 전세 내서 친구 가족을 포함한 몇 명만 타고 이국의 바다를 유람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아마 배에 탄 승무원이나 요리사 등 서비스하는 직원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번역했던 뉴욕타임스 기사 “부자들만 즐기는 ‘딴 세상’이 늘어나고 있다”에선 같은 크루즈 안에도 등급에 따라 공간이 철저히 분리돼 있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토머스 대법관은 세상 사람 대부분이 존재 자체도 모르는 진귀한 여행을 매년 다닌 셈입니다. 아무튼 프로퍼블리카 기사로 미국이 시끌시끌하던 때 올라온 칼럼 제목의 ‘슈퍼요트’란 단어만 보고는 토머스 대법관과 관련된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번역: 초호화 요트 타는 억만장자가 이 시대의 도둑인 이유

 

그러나 읽어보셨다시피 칼럼에 초호화 요트가 등장하긴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예상한 주제와 달랐지만,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재밌는 칼럼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호화 요트나 전세기가 기후변화에 안 좋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어쩌면 다소 뻔한 주장이 인상적이었던 건 주장의 근거로 든 이유가 간단하면서도 일리 있는 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저택 또는 고급 리조트나 다름없는 호화 요트는 당연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염물질을 내뱉습니다.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도 많이 배출합니다. 이는 전세기도 마찬가지죠. 많은 사람을 싣는 일반 여객기와 비교하면, 전세기를 이용하는 부자 한 명이 찍는 탄소발자국은 훨씬 더 크고 깊습니다.

그런데 조 파슬러가 칼럼에서 지적하는 건 경제적 불평등의 부당함이 아닙니다. 부자들이 이런 값비싼 생활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건 기후변화 대책을 통째로 좌초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호화 요트나 전세기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고 해도 전체 배출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왜 이런 말을 한 걸까요?

 

“쟤도 안 하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파슬러는 심리학과 경제학 연구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넛지(Nudge)로 잘 알려진 행동경제학과도 맥이 닿는 이야기입니다. 즉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또는 못 하게) 유도하는 넛지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부자들이 지금처럼 아무런 제재도 안 받고 탄소를 마구 배출하게 내버려 두면서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행동하자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겁니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는 거죠. “쟤도 안 하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라고 항의하는 사람이 수긍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주변에 비슷한 사례가 뭐가 있을지 생각하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떠올랐습니다. 미국에는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동네가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제가 사는 뉴욕시는 생활 쓰레기를 내놓을 때도 분리수거를 하게 해뒀고, 길거리의 쓰레기통도 재활용 쓰레기통이 따로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분리수거가 제대로 된 걸 지금껏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자연히 저도 분리수거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하게 됩니다. 아주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는 한국의 기준을 적용해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 저도 한국에 가면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데, 제가 고국에 가면 지구를 생각하는 환경주의자가 돼서 그런 건 물론 아닙니다. 그냥 남들이 다 잘하기 때문입니다. 괜히 나만 잘못 했다가는 바로 티가 날 테니까요. 반면 맨해튼 거리에서는 분리수거는커녕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기만 해도 대단한 시민의식을 발휘한 것처럼 뿌듯할 때도 있습니다.

부자들이 타는 호화 요트나 전세기의 탄소발자국이 그 자체로 아주 크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와의 싸움에는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호화 요트, 전세기 사용을 사회가 규제하고 필요하면 규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파슬러는 말합니다. 사실 사회적으로 압력을 가하거나 필요하면 망신을 줘서라도 호화 요트, 전세기를 덜 쓰거나 못 쓰게 해야 한다는 칼럼의 주장이 과연 미국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다소 회의가 듭니다.

다만 칼럼 서두에 언급한 2023 세계 슈퍼요트 시상식이 특히 불편했던 건 행사가 열리는 곳이 이스탄불 앞바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스탄불은 지진이 난 도시와 많이 떨어져 있고, 호화 요트 끌고 오는 부자들이 지진을 일으킨 건 물론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보기 불편하고 괴로운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토머스 대법관의 호화 요트

원래 해설을 쓰려고 염두에 뒀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과 호화 요트 이야기도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대법원은 미국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 조직입니다. 미국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권한을 독점한 기관인데, 입법부, 행정부와 달리 대법관은 임기가 따로 없습니다.

정치권력에 종속되거나 영향받지 않아야 헌법을 올바로 해석하고 지키는 보루 역할을 잘 해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법관들은 심지어 대법원 이하 연방 판사라면 누구나 적용받는 연방 판사 윤리 강령도 적용받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사실상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알아서 지키는 조직입니다.

그런 대법원이 의회나 대통령보다 미국인들의 신뢰를 더 받을 수 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대형 스캔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대법관은 프로퍼블리카 기사가 나간 뒤 대법원 공보실을 통해 이례적으로 짧은 성명을 내고, 자신과 할란 크로우는 부부끼리도 서로 잘 아는 오랜 친구로, (기사가 문제 삼은) 여행은 친구가 베푼 개인적인 호의였기 때문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호의’가 무엇이냐를 둘러싼 해석을 두고 법학자들과 윤리기준법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토머스 대법관의 해명이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지적하고 싶은 건 이번 스캔들로 대법원을 향한 미국인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자들의 호화 요트를 그냥 내버려 두면, 일반인들에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동참해달라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즉, 부자 친구—오랜 친구라고 하지만, 사실 둘은 토머스가 대법관이 된 뒤에 친구가 됐습니다. 크로우가 막대한 돈으로 대법관이라는 권세 있는 친구를 샀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로부터 호사스러운 향응과 접대를 수십 년째 받아오고도 이를 문제가 아니라고 잡아떼는 대법관이 내린 판결의 권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번 회기에 대법원이 판결할 사건 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한 행정명령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 6명은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이를 무효로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법리적으로 대통령이 권한 밖의 일을 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설사 보수 대법관들의 논리가 더 타당하다고 해도, 부자 친구에게 수십, 수백만 달러어치 선물과 접대를 수십 년째 받아온 대법관이 학자금 빚에 허덕이는 삶을 과연 조금이라도 이해할지 사람들은 계속 의심할 것이고,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겁니다.

그 곱지 않은 시선은 어쩌면 불편한 종이 빨대를 쓰는 자신의 처지와 몇 분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연예인을 비교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보다 미국 민주주의에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반감을 키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