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나라, 인도 이야기
2023년 4월 27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월 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다음 달 24일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됩니다. 전쟁 초기 많은 사람이 했던 수많은 예상은 대부분 빗나갔고, 전쟁은 여전히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2023년 벽두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취해야 하는 전략과 자세를 정리한 나이젤 굴드데이비스의 칼럼을 먼저 번역했습니다.

전문번역: 푸틴에게 레드라인은 없다

 

정상적인 사람 중에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을 싫어합니다. 전쟁통에는 세상을 온통 선과 악, 흑과 백으로 갈라 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건 허락되지 않습니다. 한쪽 편에 서서 적을 끝없이 비난하고 저주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은 전쟁이 일으키는 또 하나의 폭력일 겁니다.

벌써 1년 가까이 되어 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랬습니다. 전쟁 자체를 규탄하는 거로는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미국과 서방의 언론을 통해 대부분 전황과 분석을 접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편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스브스 프리미엄을 통해 번역해 소개하는 칼럼도 뉴욕타임스 칼럼이고, 관련 기사로 참고하는 언론들도 대부분 미국 언론입니다.)

미국(과 서방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전쟁을 바라보면,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조만간 백기를 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 푸틴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푸틴이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교착상태가 길어지자 이런 분석도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 언론이 연일 내놓는 푸틴의 프로파간다를 열심히 들여다보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딱히 더 균형이 잡힐까요? 아닐 겁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마지막 날 뉴욕타임스의 로저 코헨 파리 특파원이 쓴 장문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코헨이 사진기자 모리시오 리마와 함께 인도에 2주간 머물며 취재해 쓴 기사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이번 전쟁을 중립적으로 혹은 별 관심 없이 바라보는 견해가 줄곧 대세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또 한국인으로서는 그런 견해를 유지하기 쉽지 않기에 이 기사에 관심이 갔습니다.

이번 전쟁을 인도처럼 바라보고 접근하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처지가 다르기에 한국이 외교력을 동원한다 한들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겁니다. 대신에 기사를 다 읽고 나니, 이번 전쟁이 왜 쉽사리 끝나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진 건지 좀 더 분명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장문의 기사를 요약하는 것으로 오늘 칼럼의 해설을 대신합니다.

 

다극 체제

지금의 세계 질서가 아직도, 다분히, 너무나 서구 중심이라 그래요.

인도의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코헨 기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 관해 묻자 서구 중심 세계관에서 탈피할 때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각 나라가 자신의 선호와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눈치 안 보고 당당히 추진하는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겁니다.

지난해 2월 UN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한목소리로 규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가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인도는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자국산 원유를 팔 길이 막막해진 러시아에 구세주와도 같았습니다. 유럽에 수출하던 러시아산 원유를 인도가 상당 부분 사들였습니다. 연 7%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14억 명 인구 가운데 여전히 많은 빈곤층을 줄여나가야 하는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에너지는 중요한 원료인 만큼 더 살 기회가 있으면 이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잘못을 규탄해야 하는데 엇박자가 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도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국제사회의 질서가 잘 잡힌 상태를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질서라는 것이 만약 질서를 요구하는 쪽의 이익을 위해 질서를 요구받는 쪽은 일방적으로 희생해야만 하는 거라면 큰 문제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질서에 관한 논의에 담긴 바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겁니다.

유럽(과 서구) 중심적인 사고를 향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유럽에서 일어난 문제는 전 세계가 신경 써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전 세계가 오랫동안 앓아 온 문제에 유럽은 얼마나 신경을 써왔습니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 일대는 안보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전쟁으로 인한 안보 위기보다는 전쟁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져 생긴 부작용과 경제적 피해입니다. 원자재, 식품, 에너지, 비료 가격이 올라 당장 생계가 위태로워졌는데, 전쟁에서 우리 편 들어달라는 부탁이 귀에 들어올까요? 오히려 그저 전쟁 자체가 야속할 거라는 말입니다.

냉전 시기 미국은 인도보다 파키스탄을 지원했고, 인도는 미국보다 소련과 가까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를 향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인도를 보며 신냉전을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갇혀 판세를 잘못 읽는 겁니다. 인도는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뿐이며, 그것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도는 눈치를 볼 생각이 없습니다.

 

나렌드라 모디와 힌두 민족주의

내 갈 길을 가겠다며 인도가 뚝심을 꺾지 않을 수 있는 건 전쟁으로 기존 국제 질서에 균열이 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여당 인도국민당(BJP)이 주창한 힌두 민족주의가 인도 내에서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덧 집권한 지 8년이 된 모디 총리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인도 역사에 그늘을 드리운 인물입니다. 다원주의 원칙이 훼손됐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잇따랐습니다. 특히 종교에 따른 차별이 심해졌지만, 모디 정권은 이를 묵인했습니다. 정부는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법원과 언론의 독립성도 침해했습니다. 그 결과 인도국민당은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부진했습니다.

모디 총리와 인도국민당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무조건 옳고 더 나은 시스템이라고 외치던 미국과 서방의 위선을 지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도 내에서 모디 총리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토대로 실제로 빈곤율을 빠르게 줄이고 있는 점, 문화적으로 힌두 민족주의를 통해 국민들의 자부심을 높인 점이 가장 큰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도 국민 대부분이 갖게 된 개인 은행 계좌입니다.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인도에서도 한때는 중산층 이상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여전히 전 세계에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이 20억 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 사는 빈곤층이죠. 이제 인도는 다릅니다. 14억 명 가운데 13억 명이 은행 계좌가 있습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있었죠. 이때 인도의 행보를 보면, 인도가 꿈꾸는 다극 체제의 비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원흉’ 러시아를 한목소리로 규탄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신경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도가 택한 균형잡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도는 “지금 시대에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다.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교와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서방과 중국 사이에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인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발리 G20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인도는 몇 달째 계속되는 치열한 전쟁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한쪽에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전쟁 자체가 나쁘고, 그 나쁜 전쟁을 막지 못한 지금의 질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겁니다.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로저 코헨 기자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을 멈추는 일이 절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전쟁 당사국이 몇 가지 중요한 상황, 조건에 합의해야 할 뿐 아니라, 마음가짐에서도 접점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인도가 전쟁을 원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어차피 당사국의 결정에 달린 일에 괜히 개입할 생각도 없는 거죠. 인도가 보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명을 다한 기존의 서구 중심 질서의 실패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태일 뿐입니다.

전쟁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가 심각해지는 등 기존 질서에서 발생한 위기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해결될 거라고 인도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다극 체제에서 인도는 동서를 잇는 다리이자, 부유한 나라, 힘센 나라와 가난한 나라, 약한 나라를 잇는 고리가 되겠다는 비전을 드러낸 거죠.

인도의 비전이 성공을 거둘지 예측하는 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내다보는 것보다 더욱 무모한 일일 겁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때 인도가 지적한 비전에서 상황의 원인을 찾아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