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마침내 통과된 기후변화 대응법, 성공인가 실패인가?
2022년 10월 18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8월, 마침내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이 미국 하원의 표결을 통과했습니다. 730쪽에 달하는 법안의 골자를 이루는 건 법안의 이름인 인플레이션과는 무관해 보이는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험 지원 확대 방안입니다. 물론 법안 통과를 환영한다고 밝힌 백악관의 설명에 따르면, 에너지 요금과 의료비를 낮출 수 있다면 치솟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주에 법안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는데, 법이 발효되더라도 곧바로 물가가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화당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원안의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수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항목도, 반대로 비용 부담을 늘려 폐기를 유도하는 분야도 상당히 많아졌고, 셈법도 복잡해졌습니다. 결국, 이 법안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진정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앞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재건계획(BBB, Build Back Better) 가운데 기후변화 법안의 운명을 좌우한 조 맨신 의원 이야기, 기후변화에 대한 대법원판결을 비판한 글 모음과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 소개했던 리사 헤인즐링 교수의 칼럼까지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꼽히는 기후변화 대응에 관해 지난 10년간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의 태도, 의견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런 변화가 법안이 통과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길게 보면 환경 문제를 처음 언급한 지미 카터 대통령 이후 40여 년에 걸친 이야기지만, 최근 10년만 집중적으로 살펴보더라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한 정당, 정치인의 생각과 태도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 맨신(Joe Manchin III) 의원의 태도 변화부터 살펴볼까요? 맨신 의원은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50명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본인이 대표하는 웨스트버지니아주 경제에서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 에너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든 법안에 난색을 보여 왔죠.

맨신 의원이 12년 전인 2010년 선거를 앞두고 내보낸 TV 유세 광고를 보시죠. 맨신 의원이 속한 정당은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며, 이 광고가 나갈 때 대통령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였다는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맨신 의원은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한 총기 소유의 권리를 지켜낼 적임자를 자처하며, 자신은 전미총기협회(NRA)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라고 강조합니다. NRA 로고도 광고에 자랑스럽게 박혀 있죠. 그리고 엽총을 들고나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워싱턴에 가면 연방정부가 우리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을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우리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손을 떼도록 할 겁니다.

저는 비대한 연방정부 지출을 줄일 겁니다. 오바마케어 가운데 나쁜 부분을 폐지하는 데도 앞장설 겁니다.

저는 환경보호청(EPA)을 고소할 것이고, 악법 중의 악법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반드시 끝장내겠습니다.

이후 과녁에 대고 총을 쏘는데, 과녁은 탄소배출권 제도(cap-and-trade program)가 선명하게 인쇄된 종이였습니다.

탄소배출권 제도는 같은 해인 2010년, 민주당 안에서도 기후변화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의원 두 명이 발의한 기후변화 대응법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지금은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 된 에드 마키(Edward J. Markey) 의원과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던 헨리 왁스맨(Henry Waxman)이 법안을 썼죠.

그랬던 조 맨신 의원이 척 슈머(Charles E. Schumer, 민주, 뉴욕) 상원 원내대표와 함께 이번 기후변화 법안을 주도해서 썼습니다. 10년 전에 총으로 쏴버린 법안을 앞장서서 쓴 거죠.

물론 내용과 수위는 매우 다를 겁니다. 이번 법안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진보 진영 안에서 기대와 우려가 갈라지는 지점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기후변화 대응 자체를 덮어놓고 반대하던 조 맨신 의원이 쓴 법안이다 보니 알맹이가 다 빠졌다는 비판과 그래도 어쨌든 기후변화 대책을 큰 틀에서 담은 법을 통과시킨 게 어디냐는 안도의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사진=Unsplash

12년 전 기후변화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법안을 쓴 마키 의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의회와 미국 정치권의 답답한 모습에 화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법이 상원의 규정 때문에 통과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기 어려웠습니다. 끝내 그 법안은 죽었죠. 정치적으로는 기후변화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능했다는 걸 실감했어요.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에는 재앙을 불러올 거란 점이었어요.

마키 의원은 이후 환경 단체와 민주당 내 환경보호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의 뼈대를 세우는 데도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그린 뉴딜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이 일자 “그린 뉴딜은 나의 공약이 아니”라며, 거리를 두기도 했죠.

본인이 하원에서 상원으로 자리를 옮겨 보니 달리 보인 걸까요? 아니면 법을 만드는 데 여러 차례 좌절한 경험이 기준을 낮춘 걸까요? 마키 의원은 누구보다 이번 법안의 통과를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그는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하는 환경 단체를 향해 “이번 입법은 분명한 승리”라며, “입안한 법을 토대로 앞으로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는 순간, 환호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달리 오른편 의석은 텅 비어 있습니다.

과거에도 환경 보호나 기후변화 대책에 관한 입법을 주도한 건 대개 민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라고 기후변화 자체를 근거 없는 음모론 취급하거나 덮어놓고 반대하는 이들만 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공화당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은 상원과 하원을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기후변화 외에 다른 이슈도 얽혀 있고, 인기 없는 바이든 대통령과 분명히 선을 그어야 3개월 뒤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공화당 의원들의 처지를 고려하더라도 당적에 따라 투표 행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은 의회 안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졌음을 보여줍니다.

조시 W.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출신으로 석유 업계를 비롯한 에너지 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받는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환경 보호라는 의제를 앞세웠던 앨 고어 부통령과 접전 끝에 간신히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임기 초반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했습니다. UN 기후변화 협약에도 서명했고, 관련 연구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뜻도 내비쳤죠. 그러나 행정부 내에서 딕 체니 부통령을 앞세운 세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 부시 행정부는 이후 9.11 테러를 겪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느라 실질적인 기후변화 대책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오랫동안 지지해온 인물입니다. 자신의 정치 경력 가운데서 내세우고 싶은 걸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기후변화 문제를 언급했죠. 그래서 2008년 대선 후보인 오바마와 매케인의 공약 가운데 기후변화 대책은 대동소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기후 재해가 빈발하는 2022년에도 기후변화 문제에 눈을 가리고 입을 닫고 있는 공화당의 행보는 정당 차원에서 보면 현명한 전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수많은 여론조사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결과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보수/진보, 민주/공화를 떠나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일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극심한 기후변화는 상당 부분 인간의 활동이 초래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쉼 없이 쌓이고 있음을 민주당 지지자는 물론이고, (젊은) 공화당 지지자들도 알고 있다는 거죠.

마키 의원은 이번에 제정된 법안을 토대로 기업이나 소비자 개인이 반응할 수 있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고안해낸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합니다.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 시설이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설치되고 보급되고 있습니다. 올해 지금까지 새로 설치된 발전 시설 가운데 발전 용량을 기준으로 보면 태양광 발전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또한, 11월 중간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 내줄 가능성이 큰 현실을 고려할 때 어떻게든 법안을 통과시킨 건 민주당의 중요한 승리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대로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너무 많이 양보해 ‘누더기 법안’이 됐다는 비판도 상당 부분 일리가 있습니다. 석유 회사를 비롯한 에너지 기업들은 이번 법안에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는 조 맨신 의원과 민주당이 에너지 기업에 일종의 회유책으로 내건 청정에너지 지원 계획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탄소세(carbon tax) 등 오염원을 배출하는 주체에 경제적인 부담을 지워야 한다는 원칙 대신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기후변화 대책은 에너지 기업에 먼저 보조금 혹은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물론 보조금을 받는 요건으로 친환경 재생 에너지 개발이 걸려 있다고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명시적인 의무 규정이 빠져 있다는 지적에 민주당 지도부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설치되는 발전 에너지원 중에는 태양이 절반이나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전체 발전 에너지원의 60%는 화석연료입니다.

새로 설치되는 발전 에너지원 중에는 태양이 절반이나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전체 발전 에너지원의 60%는 화석연료입니다.

미국은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나라일지 모릅니다. 그에 반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기후변화에 맞서 싸운 지난 30년간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는) 찬물을 끼얹으면 끼얹었지, 힘이 된 적이 거의 없죠. 그런 미국의 이력을 고려하면 마침내 통과된 기후변화 대응법이 반갑기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관련 연구 기금을 지원하는 문제나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하는 문제에 관해선 법안에 사실상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또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최대한 반영하려다 보니, 법안이 큰 틀에서 지향하는 바가 불분명해진 것도 문제입니다. 법안의 성패는 결국, 법을 어디까지 지키고 얼마나 잘 적용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의 운명도 어쩌면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