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번역] 리사 헤인즐링 칼럼 “미국 정치를 집어삼킨 대법원”
2022년 9월 30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이번 회기 미국 대법원이 내린 판결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판결이 바로 웨스트버지니아 대 환경보호청(EPA) 판결입니다. 그 내용에 관해 프리미엄 콘텐츠에도 글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 세 번째 시즌 두 번째로 함께 읽은 책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의 뒷부분에서 엄청난 반전을 선사한 주인공 리사 헤인즐링 교수가 이번 대법원판결의 함의에 관해 애틀란틱에 칼럼을 썼습니다. 보수 대법관들이 요구하는 엄격한 원전주의와 지나치게 상세한 내용의 법안을 요구하는 것 때문에 앞으로 미국 정부가 제 기능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 글입니다. 전문을 번역했습니다.

사진=Unsplash

다른 여러 정부 기관과 마찬가지로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은 중요한 규제를 세우고 집행할 때 매우 정교한 절차를 따른다. 오바마 행정부 환경보호청에서 나는 바로 그 절차를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그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중요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기까지는 보통 몇 년이 걸리곤 한다. 중대한 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수시로 발생하는 온갖 걸림돌을 하나씩 넘어야 한다.

원래도 쉽지 않았던 이 절차를 성공적으로 밟기가 이제는 더 힘들어졌다.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어진 건 대법원이 최근 내린 웨스트버지니아 대 환경보호청 판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은 의회가 환경보호청 같은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에 정치, 경제적으로 중대한 파급력이 있는 문제를 다룰 권한을 위임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표현을 빌리면 의회가 법안의 취지와 집행 주체, 규제의 범위 등을 상세히 적시하지 않는 한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에는 “중대한 질문”에 직접 답을 찾을 권한이 없다. 그동안 의회는 정부 기관이 집행할 규제에 관한 법안을 일부러 포괄적인 법률 용어로 썼다. 새로 등장하는 문제에 맞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정부 기관에 충분한 재량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판결로 이제는 의회가 관련법을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하게 썼다가는 헌법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는 대법원 판례를 어기게 된다.

이번 대법원판결로 당장 환경보호청은 청정대기법(CAA, Clean Air Act)에 따라 화석연료를 때는 발전소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권한과 자율성을 잃었다. 문제는 이번 판결의 영향이 청정대기법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중대한 파급력이 있는 문제를 다루는 정부 부처나 기관은 앞으로 예외 없이 법원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대법원이 정부 기관은 (의회가 이론의 여지 없이 그 권한을 법에 명시하지 않는 한) “중대한 질문”을 다뤄선 안 된다고 못박아뒀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중요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연방정부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대법원은 청정발전계획(CPP, Clean Power Plan)이라는 환경보호청의 규제를 염두에 두고 이번 판결을 내렸다. 청정발전계획은 말 그대로 발전소가 사용하는 연료 가운데 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이고 이를 풍력이나 태양 등 깨끗한 재생에너지나 가스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법안이다. 사실 환경보호청이 청정발전계획을 적용하자마자 대법원은 재빨리 이 계획에 족쇄를 채웠다. 이른바 그림자 회의(shadow docket, 구두변론을 건너뛰고, 판결문을 전부 다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비공개 판결)를 통해 청정발전계획이 실제로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게 막아뒀다.

그랬는데도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당국이 정한 기한 내에 목표로 한 양만큼 줄였다. 그렇게 했다가는 미국 경제에 재앙이 올 거라고 엄포를 놓던 규제 반대론자들은 최소한 머쓱해 해야 마땅한 일이다. 대법원은 규제가 발효되기도 전에 부랴부랴 무효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면 해당 규제는 전혀 극단적이지 않았고, 충분히 시행할 만한 정책이었다.

대법원은 (자기들이 직접 효력을 갖지 못하게 막은 덕분에) 발효된 적도 없는 법을 문제 삼아 이번 판결을 내린 것으로도 모자라 한발 더 나아갔다. 청정발전계획이 “의회가 합리적으로 위임했다고 볼 만한 수준보다 훨씬 더 중대한 권한을 행사한 셈”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조금 전에 설명했듯 청정발전계획은 단 한 순간도 발효된 적이 없고, 미국은 규제 없이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 해당 규제가 전혀 급진적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대법원은 그 대신 청정발전계획이 정치, 경제적으로 파급력이 매우 큰 “중대한 질문”을 건드리고 있어서 잘못됐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꿰맞춰 별 설득력 없는 근거를 예닐곱 개나 나열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환경보호청의 규제 법령이 “중대한 질문”을 다루고 있다고 봤다. 의회가 통과시킨 법조문에 아주 분명한 근거 조항이 명시돼 있을 때만 정부 기관이 “중대한 질문”을 다룰 수 있는데 청정대기법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앞서 대법원은 환경보호청이 청정대기법을 토대로 온실가스 규제를 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었다. (아메리카노에서 다룬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도 그 판결 중 하나다.) 그러나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보기에는 법조문이 너무 두루뭉술했다. 이들은 정말 단 하나의 이견도 나오지 않을 만큼의 분명함을 원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분명한 언어로 써야 지금의 대법원이 만족할 만한 법조문이 될까? 이번 회기 대법원의 다른 판결 두 건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두 건 다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내건 정책에 관한 사건이었다.

하나는 미국 연방정부의 공중보건 책임 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and Control)가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은 분야, 지역에 경제 활동을 일제히 중단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가에 관한 사건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직원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거나 (백신을 안 맞을 경우) 정기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보고하게 한 방침에 관한 사건이었다.

두 경우 모두 팬데믹의 위협에 맞서 공중 보건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를 관련법이 잘 설명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두 건 모두 의회가 정부 기관에 줘서는 안 되는 너무 큰 재량을 줬다고 판결했다. 여기서도 대법원은 정부 기관이 집행하려는 규제가 “중대한 질문”을 건드리는지만 살폈다. 법안이 적절하게 규제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법원이 “중대한 질문”인지 아닌지만 감독하며 정부 기관의 권한과 재량을 억누르는 데만 집중한다면, 미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얼핏 보면 정부 기관이 법에 명시하지 않은 부분에서 재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면 입법부인 의회의 힘이 강해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의회는 지금껏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이 등장할 때 이를 직접 파악하고 이해한 다음 법을 쓰기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정부 기관이 먼저 사안을 파악해 자율적으로 규제를 시행하도록 해왔다.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한 문제에 너무 늦지 않게 해법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청정대기법도, 코로나19 관련 방역 대책의 근거 법령도 그런 원칙 아래 규제를 먼저 집행하고 난 뒤 경험을 보완해 다듬어진 법이다.

이제 미국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전혀 다른 원칙을 들고나왔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정부 기관의 규제 권한을 판단하겠다고 나섰다. 기존에 의회가 여러 규제 법안을 작성할 때 적용했던 원칙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법원은 의회에 더 많은 권한을 쥐여준 게 아니라, 의회에 아주 무거운 짐을 떠넘긴 셈이다.

게다가 대법원은 청정대기법이 제정된 지 꽤 시간이 흘렀다고 강조했지만, 이번에 법원이 내세운 원칙은 갓 제정된 법에도 얼마든지 적용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실제로 의회가 일명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ACA, Affordable Care Act)을 통과시켰을 때 대법원은 곧바로 국세청(IRS)이 새 법안에 따라 보험료를 징수하는 게 옳은지를 “중대한 질문” 원칙에 따라 판단했다. 앞으로 의회는 정부 기관이나 부처의 규제에 관한 법을 제정할 때마다 법원의 “중대한 질문” 원칙에 어긋나지는 않을지 미리 검토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보수적인 대법관들의 까다로운 기준에 부합할 만큼 아주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정부 기관의 권한을 명시해야 하는 것도 의회의 몫이다.

의회가 신경 써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또 있다. “중대한 질문” 원칙의 바탕에는 이른바 “권력의 분립에 관한 원칙(separation of powers principles)”이라는 더 근본적인 원칙이 있다. 이번 판결문에 동조한 다수의 보수 대법관들은 대부분 이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닐 고서치 대법관이 쓴 보충의견에는 이 원칙이 분명히 언급돼 있다. 즉 법원이 “중대한 질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이유는 바로 헌법이 인정한 권력은 함부로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위임 불가(nondelegation)의 원칙 때문이다. 헌법이 의회에 입법 권한을 준 건 의회에 법을 제정하라고 한 것이지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그 권한을 위임해도 좋다고 한 적은 없다.

문제는 헌법 어디에도 법을 제정하는 권한인 입법권(legislative power)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반대로 행정권(executive power)이나 사법권(judicial power)에 관한 규정은 헌법 조문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위임 불가 원칙을 적용하려면 입법권을 정부가 행사하는 다른 권력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수 성향 판사들은 정책이나 사안의 중대성에 집중했다. 즉, 법원이 정책의 중요성을 토대로 입법권을 좀 더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최근 들어 판결문의 보충 의견이나 반대 의견에 꾸준히 써온 것이다.

그렇다. “중대한 질문” 원칙에 깔린 원전주의를 무려 헌법에까지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법원의 이런 논리를 좀 더 급진적으로 해석해 적용하면, 법원은 이제 법을 해석하고 다듬는 정도가 아니라, 법원이 중요한 의제라고 보는 사안에 관해 의회가 분명한 언어로 법을 제정하지 않을 경우 딱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법 자체를 무력화해버릴 수 있게 된다.

 

웨스트버지니아 판결은 환경보호청을 비롯한 행정부 기관뿐 아니라 의회의 권한도 상당히 축소하는 판결이다. 이미 결정돼 시행 중인 규제는 모두 “중대한 질문” 원칙에 따라 재검토될 위기에 처했고, 새로 시행하려는 규제는 여러모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연방 법원에서 인용됐다. 텍사스주 켄 팩스톤 법무장관이 국토안보부의 불법체류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과 핵폐기물 규제위원회(NRC,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가 텍사스주에 핵폐기물 처리 시설을 짓기로 한 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웨스트버지니아 판결을 인용했다.

전문가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가 기후변화와 관련해 시행하려던 규제들은 입법 절차를 밟기도 전에 이미 폐기된 거나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 기관이 어떤 규제를 세울 때 해당 사안이 보수 대법관들의 눈에 얼마나 중대한 사안으로 비칠지에 관한 막연한 추측에 의존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다.

그동안 법원은 정부 부처나 기관이 의회로부터 법을 해석할 권한을 위임받은 뒤 규제를 집행하는 관행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그런데 최근 보수화된 법원이 이에 대한 해석을 원칙적으로 바꾸는 바람에 효과적으로 집행되던 규제를 이어가기 무척 힘들어졌다. 이른바 “셰브론 존중(Chevron deference)”으로 불리던 이 원칙은 정부 기관이 법을 해석해선 안 된다는 명백한 조항이 없는 한 정부 기관의 합리적인 관련법 해석을 법원이 인정하는 토대였다.

“중대한 질문” 원칙은 이와 정반대로 법원이 정부 기관의 법 해석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종용한다. 사실 셰브론 존중의 원칙은 웨스트버지니아 판결 이전에도 오랫동안 숱한 도전을 받아왔다. 대법원은 지난 6년 넘는 시간 동안 정부 기관이 법을 해석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한 번도 판결하지 않았고, 셰브론 존중 원칙은 대법원 판결문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대표적인 잘못된 원칙으로 맹렬한 비판을 가할 때만 셰브론 존중을 예로 들었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도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얼마나 여기에 과민 반응을 보일지 잘 아는 만큼 웬만하면 이 원칙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부 기관들은 중요한 규제와 관련해 법을 만들어 집행할 때마다 점점 더 큰 법률적 불확실성을 안고 일을 처리해야 했다.

 

한 나라가 직면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입법부든 행정부든 다른 누군가의 눈치만 봐야 한다면 그 정부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이 전면에 내세운 “중대한 질문” 원칙 때문에 앞으로 미국 의회와 정부는 사안마다 사법부, 특히 보수 성향 대법관들의 눈치를 보게 생겼다. 그런 정부가 제 기능을 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