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NYT 칼럼니스트들의 고백 “내가 틀렸습니다”
2022년 9월 23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뉴욕타임스 칼럼란에 흥미로운 인터랙티브 기획이 실렸습니다. 8인의 칼럼니스트가 과거에 기고한 글 가운데 잘못된 예측을 담았거나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달라진 글을 들고나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을 쓴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당파성과 양극화가 극대화된 시대, 소셜미디어상의 반향실이 원래 의견을 고수하는 쪽에 인센티브를 주는 시대”에 자신이 틀렸다는 점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여전히 선의의 지적인 토론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돌아보고 필요하면 고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기획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연 화제가 된 글은 가장 첫 번째로 소개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글 “인플레이션 예측, 내가 틀렸다(I was wrong about inflation)”입니다.

 

물가 인상은 지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인 만큼, 국내 언론에서도 이 글을 두고 관련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2021년 초 물가 인상률이 지금처럼 크지 않으리라고 예측했지만, 팬데믹 사태로 인한 소비 성향의 변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도시 봉쇄 등의 변수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2008년 경제 위기 직후에는 자신이 적용한 표준 모델이 잘 작동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세상에 대한 고려 없이 2021년에도 그 모델을 안일하게 적용했다는 고백입니다.

사진=Unspalsh

1995년부터 칼럼을 써온 저명한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의 개방 가능성과 언론의 자유, 정보의 흐름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이 틀렸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중국을 방문하며 경험한 중국의 언론 자유도가 생각보다 높았다고 회고하며,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 없이 중국의 차세대 혁신가와 엔지니어들이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할 것이므로, 경제지가 주도하는 언론 자유가 언론 전반에 확산할 것으로 믿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1999년에 출판한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중국의 지도자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중국은 언론의 자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고, 2009년 뉴욕타임스 칼럼에는 중국이 인터넷 개방과 언론의 자유 없이는 미국 경제의 역동성을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 언론은 시진핑 주석 집권 하에 30년 전보다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10년 전보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현재 진단입니다.

같은 기간 자신의 예측과는 달리 중국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고, 서구의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이 거짓말로 넘쳐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이 얻은 것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분석도 덧붙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팬데믹 대응이 유연하고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의견, 그리고 여전히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의 협력 없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의견은 고수하면서 칼럼 세계의 법정에 “집행유예”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반성문도 두 편 실렸습니다.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일 없는 계급에 속한 필자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지나치게 강한 언어로 비판하고 조롱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 칼럼입니다. 언론인 출신의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자신이 그들의 처지나 그들의 분노, 트럼프 지지층 내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한데 싸잡아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했으며, 자신의 칼럼이 그들의 “엘리트”에 대한 의견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 국회의사당 습격을 자행한 트럼프 지지자들과 이를 부추긴 트럼프에 대해서는 여전히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상대를 설득하여 의견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트럼프라는 “끝판왕”을 경험하고 나서, 오바마의 대선 경쟁 상대였던 미트 롬니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보도했음을 인정한 필자도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갤리 콜린스는 2012년 대선 보도 당시 재미있는 정치 기사를 쓴다는 명목하에 롬니 후보가 반려견을 차 지붕에 싣고 캐나다까지 운전해 간 에피소드를 너무 여러 번 써먹었지만, 트럼프를 겪고 나서는 “지루한 후보”보다 훨씬 나쁜 것이 세상에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미트 롬니가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고 마스크 의무 착용 철폐에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공화당원임을 언급하기도 했죠.

그 밖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고백한 데이비드 브룩스의 글, 시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 자신의 간절한 소망 때문에 시위와 집회의 효과를 과대평가했음을 인정한 글, 모두가 페이스북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2009년의 칼럼을 철회하고 싶다는 글,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정치인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칼럼을 쓴 것이 오히려 미투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깨달은 글 등이 이번 기획에 실렸습니다.

대상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해석이 바뀌는 “내로남불”식의 말 바꾸기는 우리 주변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반성과 치열한 고민, 열린 마음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바꾸고 그 점을 공개적으로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도 여러 지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