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질병을 앓는 이에게 공감하는 법에 관하여
2022년 9월 16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큰 병을 앓게 된 사람들이 병으로 인한 육체적인 괴로움 외에 공통적으로 꼽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과 더불어,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인데요, 가족과 친구의 존재는 어려운 상황에서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쁜 의도가 없는) 배려 없는 말과 행동이 환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지난달 초, 워싱턴포스트는 암 환자와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에 관한 칼럼을 실었습니다. 암 생존자인 필자는 칼럼 서두에 각종 “나쁜 예”를 소개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암이 재발해 큰 고통을 받았던 자기 사촌 이야기를 꺼내면서, “당신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내가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던 일화나, “이겨내려면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들은 일, “신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이라든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식의 종교적인 해석을 들은 일 등이죠.

사실 큰 병을 앓고 있는 환자 앞에서 피해야 할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배려와 상식을 동원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적절할지 판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사진=Unsplash

필자는 우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합니다. 자신의 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순간도 있으니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귀와 마음을 열어두라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포옹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때로는 쓸데없는 말보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암에 걸렸다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닌데, 갑자기 환자 대하듯 태도를 바꾸는 것도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흔히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줘”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먹을거리를 챙겨준다거나, 개를 대신 산책시켜 준다거나, 쓰레기를 버려준다거나, 차를 태워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다는 의미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병이나 몸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이는 당연히 제 3자에게 마음대로 알려서는 안 되는 개인정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기를 원치 않지만, 나에게만 털어놓은 정보일 수 있으니까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대안 치료법이나 임상 실험 같은 치료 관련 조언을 내놓는 것도 자제해야 합니다. “다 잘 될 거야”, “괜찮아질 거야” 같은 공허한 희망은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편이 낫습니다.

암 환자의 정신적, 심리적 고통에 관한 보살핌은 치료 기술의 발전과 나란히 가야 합니다. 환자들은 투병과 함께 정체성의 변화를 겪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기도 하고, 가족이나 커뮤니티 내에서 역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커리어 등 인생의 계획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뉴노멀”을 받아들이고,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때로 병의 치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 최근 들어 투병 경험을 회복탄력성과 적응력 향상 등 성장의 계기로 삼은 이들의 경험에 집중하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학생 칼럼 대회(Student Editorial Contest) 수상자 11명의 칼럼을 홈페이지에 실었는데, 그중에는 15세 암 생존자가 쓴 에세이도 있었습니다. 필자인 에머슨 라이터는 암 환자 가운데서도 성장, 발달 시기에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는 청소년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암 치료 부문에서 정신적, 심리적 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며 관심을 촉구하고 있죠. 투병 경험과 마음 상태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겁니다. 그러다 보면 통념과 다른 이야기도 종종 들려옵니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이 좋은 예입니다. 필자는 암 환자라고 해서 삶이 나의 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고 주변 사람들과 병에 대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며, 핵심은 “함께 불평하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한 투병 기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게 통념이지만, 자신의 일상성 회복과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 것은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괴로운지 시시콜콜 털어놓고 친구의 직장 상사에 대한 불평을 들으며 함께 괴로워하는 대화라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상대에게 더 이상 상호적인 우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밖에 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크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