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곱씹어 보기
2022년 7월 14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트위터를 인수한 뒤 상장을 폐지하고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계획을 트위터 이사회가 받아들이기로 한 소식이 한창 언론을 장식하던 5월 2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쓴 글입니다. 지난 주말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계획을 철회하면서 트위터 인수 이야기는 두 달여 만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트위터를 사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제안에 포이즌필까지 발동하며 거래를 막겠다고 공언했던 트위터 이사회가 이내 의견을 바꿔 머스크와 협상에 돌입했고, 순식간에 협상이 타결됐다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머스크는 트위터의 주식을 주당 54.20달러에 전부 사들인 다음 공개기업인 트위터의 상장을 폐지해 비상장기업으로 만들고 직접 운영할 계획입니다.

440억 달러, 약 54조 원에 이르는 인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과 추측이 분분했지만, 머스크는 테슬라 주식을 판 금액과 다른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 등으로 실제로 돈을 마련했음을 입증한 것으로 보입니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예상대로 다른 뉴스를 압도했습니다. 주말 내내 기사와 칼럼, 팟캐스트마다 트위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번 인수가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고 전망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수많은 분석과 전망을 크게 두 갈래 흐름으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테슬라를 성공으로 이끈 머스크의 경험과 비전을 근거로 머스크가 트위터의 기업가치를 끌어낼 거라는 전망입니다. 트위터 이사회도 치열한 토론 끝에 머스크가 제안한 가격보다 트위터의 주가를 더 높게 올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의 주주 가운데도 이 점에 주목한 이들이 많아 보입니다.

반대로 일론 머스크가 소셜미디어를 인수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들은 머스크가 트위터의 주인이 되면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가 오히려 침해될 거라고 지적합니다. 오늘은 그중에 작가 아난드 기리다라다스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을 요약해 소개합니다. 기리다라다스는 2019년 “엘리트 독식 사회”라는 책을 통해 부자들의 자선사업에 담긴 위선을 꼬집었습니다.

기리다라다스는 트위터에 결함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합니다. 칼럼의 제목부터 “일론 머스크는 해결책으로 위장한 또 다른 문제일 뿐”입니다.

사진=Unsplash

가짜뉴스, 인종차별, 온라인 폭력과 괴롭힘 등 트위터를 통해 불거졌거나 트위터 자체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은 하나같이 심각하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에게 트위터 인수를 허락한다면 미국은 금권정치의 극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머스크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그저 또 다른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문제의 핵심이자 근원인 자본이 해법 또는 구세주를 자처하는 역설을 지켜봤다. 플랫폼 전체가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도록 방치한 페이스북은 2020년 미국 선거를 앞두고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는 데 3억 달러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오피오이드 위기를 불러온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을 만든 제약회사 퍼듀 제약(Purdue Pharma) 경영진은 앞으로 10년간 오피오이드 문제를 해결하는 데 10억 달러 정도 내놓는 것으로 치레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내부적으로 나눴다.

머스크는 트위터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그러면서 특정 세력이나 진영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고 검열한 것을 예로 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정지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머스크는 자신과 테슬라를 비판한 블로거의 테슬라 주문을 손수 취소해버린 적이 있다. 머스크를 비판했다가는 머스크의 트위터 팔로워 9천만 명을 포함해 수많은 지지자의 표적이 되기 일쑤다. 그동안 머스크가 보여준 행보가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머스크가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가 반쪽짜리라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negative freedom of speech)와 적극적인 자유(positive freedom of speech)로 나눌 수 있다. 권력에 의해 처벌받을 걱정 없이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소극적인 자유에 해당하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적극적인 자유에 해당한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에 가깝다. 여성과 유색인종을 비롯해 미국의 수많은 소수자, 약자들은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 감옥에 갈 걱정은 하지 않지만, 대신 말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거나 박탈당하곤 했다. 적극적인 자유는 온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이룩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언론의 자유에 관해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 큰 정부의 검열을 먼저 떠올린다. 이들은 소극적인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분명한 위협이자,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플랫폼 자체가 없던 시절에 비하면 소셜미디어의 등장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혐오와 차별의 언어로 가득한 오물통이 된다면 이 또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일 뿐이다. “뭐든 자유롭게 말해도 좋지만, 뒷감당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세상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 아니다.

트위터가 완벽한 플랫폼이었던 적은 없고, 앞으로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트위터가 적극적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노력했던 일들을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건 문제를 왜곡하는 일이다.

금권정치의 심화는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다. 이미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 자본 권력은 늘 정치적 영향력을 탐낸다. 자본 권력이 공론장을 장악하면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당장 일론 머스크는 언론의 자유를 교묘하게 왜곡하면서도 언론의 자유 수호자로 그려지고 있다.

문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건강한 공론장이지, 권력에 포섭된 반쪽짜리 소셜미디어가 아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이나 비영리 감시 기구를 만드는 방안 등 생각해볼 수 있는 해법은 얼마든지 있다. 구세주나 영웅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자유가 아니라 독재를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