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러시아 내 반전 여론과 푸틴의 입지
2022년 6월 7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쓴 전쟁 관련 두 번째 글입니다. 2월 28일에 올렸던 글입니다.

지난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당연히도 모든 러시아인이 전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차가 무색하리만큼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하며 반대 세력을 노골적으로 탄압해온 푸틴 정부하에서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방 언론들의 취재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이 인터뷰한 30세 교사는 “부끄럽다,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은 언제나 무서운 것,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반전 시위에 나선 러시아 국민들. 사진= 가디언 취재 영상 갈무리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이들도 두려움 때문에 성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려면 이렇게 모이는 수밖에 없다”,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번 일로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며 명분과 실리 어느 쪽을 고려해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의료인 6천여 명, 건축가와 엔지니어 3천여 명, 교사 500명은 아예 이름을 걸고 반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죠. 언론인과 시의회 의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연서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공격을 중단하라는 온라인 청원도 단 사흘 만에 78만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모스크바의 한 유명 현대미술관은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고 있는 비극이 종료될 때까지” 전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고,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래퍼 가운데 한 명인 옥시마이런(Oxxxymiron)도 매진된 콘서트 6회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20년 넘게 러시아를 철권 통치해 왔습니다. 그의 정당인 통합러시아당은 2003년 이후 꾸준히 의석을 늘려 현재 하원 450석 중 무려 324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지난 2018년, 평생을 푸틴 치하에서 살아온 푸틴 세대의 역설을 담은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기사는 러시아 청년들이 정부의 언론 통제 등 권위주의적 면모를 잘 알고 있음에도 “미국에 맞서는 강한 러시아”를 만들어가는 푸틴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알렉세이 나발니로 대표되는 야당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고 청년 세대가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고도 분석했죠. 또한, 경험하지 못한 폭력과 가난, 혼돈의 90년대에 대한 두려움도 젊은 세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열쇳말입니다. 더 나쁜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라는 겁니다.

다만, 푸틴의 지지자나 측근들 사이에서도 이번 전쟁 선포는 당혹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독선이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팬데믹 동안 푸틴이 다른 국가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고립된 환경에서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면모를 키우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의 전략적인 의미보다는 “역사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소수의 TV 진행자나 정치인을 제외하면, 전쟁을 지지한다고 밝힌 유명인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일로 푸틴의 정치적 입지가 러시아 국내에서 당장 흔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계속되는 팬데믹 속에 경제가 계속 흔들리자 반푸틴 세력이 근래 보기 드물었던 반푸틴 시위를 열었다는 사실도 상기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