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캐나다까지 번진 코로나 백신 반대 시위
2022년 6월 1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코로나19 백신에 관한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팬데믹만큼이나 큰 문제를 일으킨 인포데믹(infodemic)이었습니다. 오늘은 미국 극우 세력이 주창한 음모론에서 비롯된 백신 거부 운동이 이웃 캐나다까지 번진 이야기에 관한 글입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2월 21일에 올린 글입니다.


방역 선진국으로 꼽혀온 캐나다에서 이달 초부터 트럭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가 수도 오타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안티백신 운동이 꾸준히 두드러졌던 이웃 미국과 비교해 대체로 과학의 이름 아래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시끌벅적한 일로는 좀처럼 국제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나라라 더욱 이목을 끌고 있죠.

짧은 국내 공중파 뉴스의 확장판과도 같은 8일 자 가디언 기사는 이번 시위가 안티백신 운동과 캐나다 반정부 단체들의 합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캐나다 유니티(Canada Unity)”의 수장 제임스 보더가 큐아논(QAnon)이나 코로나19 자체를 조작으로 내몬 음모론을 추종하는 인물이라면서, 안티백신보다는 “자유”라는 큰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앞세워 캐나다 서부 분리 독립, 이슬람계 이민 반대, 빌 게이츠 마이크로칩 삽입설 등을 주장하는 주변부의 여러 반정부 세력들을 결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가디언은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하고, 폭스 뉴스가 성실하게 보도하는 시위 현장에 네오나치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깃발, 큐아논 로고 등 극단주의 세력의 상징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앱,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단 수천 명의 결집으로도 효과적으로 공권력을 압도하고 주요 도시를 점령할 수 있게 된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의무화 방침에 고속도로를 막아선 캐나다 트럭 시위대. 사진=제프 매킨토시 / AP

한편, 뉴욕타임스는 토론토 지국장을 오타와에 파견해 현장 분위기를 취재한 기사를 썼고, 데일리 팟캐스트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기자는 현장에 대안우파와 극단주의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정치 성향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백신에 대한 반대나 트럭 운전사들의 일자리 이슈뿐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과 엄격한 방역 지침에 지친 캐나다인들의 좌절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만 뉴욕타임스도 지난 2015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 쓴 선거자금의 1/4에 달하는 1천만 달러 가까운 돈을 미국 극우 세력이 단 몇 주 만에 이번 시위에 쏟아부은 점을 지적하면서 캐나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크머니의 존재를 우려하는 트뤼도 총리 측근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애틀랜틱에 따르면 이번 시위에 대체로 동조한다는 캐나다인의 비율은 약 32%로, 시위가 아주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의 지난해 연방 선거 득표율이 32.6%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수치입니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14일 사상 최초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정부 주도의 시위 대응에 나섰습니다. 총리는 군을 동원할 계획은 없지만, 이번 시위를 더는 평화시위라고 부를 수 없다면서 단호한 대응을 약속했습니다. 관련 대응에는 시위 지원금의 형태로 모여드는 자금에 대한 규제도 포함됐습니다.

캐나다의 정치 지형은 중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 및 집권 자유당의 단기적인 입지와 별개로, 이번 시위를 계기로 지금까지 주변부에 불과했던 극우 세력이 캐나다에서도 주요 정치 세력으로 자리하게 될지, 아니면 팬데믹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잦아들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집권당이 아닌 야당이나 대안 세력이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지지율이 오르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정치 현상입니다. 시민들이 딱히 집권당에 분노했다기보다 그저 지치고 좌절한 것일 뿐이더라도, 막연한 불만을 구체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정치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온건하고 친절하다는 선입견을 받는 캐나다 시민들이 합리적이고 뚜렷한 대안의 제시와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의 감정적 호소를 구분할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