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트럼프를 막을 자, 공화당 안에서 나올까?
2022년 5월 19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2022년은 미국 중간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선거가 11월이니 아직 반년 가까이 남았지만, 이미 주지사와 상, 하원의원 선거 당내 경선이 한창입니다. 앞서 1월 6일 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 공화당 정치인들이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분석을 소개해드렸죠.

공화당 정치인들이 대놓고 의사당 테러를 규탄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트럼프 임기 4년을 거치면서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공화당의 중심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은 대대적인 선거 부정으로 얼룩졌고 바이든과 민주당이 대통령직을 강탈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빼앗긴 백악관을 되찾아오고자 부패한 워싱턴 엘리트를 향해 들고 일어났던 ‘애국 시민의 정당한 항거’를 부정하거나 비난해서는 공화당 경선을 통과하기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당내 경선 과정에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는 발롯피디아(Ballotpedia)가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후보의 성적표를 데이터로 모으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도 재미있게 들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1월 31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임기 2년 차를 맞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속절없이 내려갈수록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어렵잖게 다시 백악관을 되찾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표심의 변화가 읽힙니다. 증거도 대지 못하는 선거 부정 이야기를 반복하고, 헌법 기관인 의회를 공격한 명백한 범죄 행위를 덮어놓고 옹호하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원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댄 볼즈(Dan Balz) 기자가 여론조사 결과를 모아 짧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2024년까지 공생을 이어갈지, 아니면 공화당 안에서 트럼프를 막아설 새 얼굴이 나올지 지켜보는 것도 올해 미국 중간선거를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지난해 말 워싱턴포스트와 메릴랜드 대학교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60%는 여전히 지난 2020년 대선에 선거 부정이 일어난 확실한 증거가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정당하게 당선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2024년 대선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답한 공화당원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공화당 주요 인사들의 행보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당내에서는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녔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공화당 내 역학도 서서히 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못마땅했던 이들은 당을 떠나거나 아웃사이더로 밀려났고, 공화당의 무게 중심을 트럼프 지지자들이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1월 6일 의사당 테러 현장. 사진=로이터/레아 밀스(Leah Mills)

NBC 뉴스는 공화당 지지자 혹은 공화당 성향의 무당파 유권자들에게 시차를 두고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트럼프와 공화당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지지하십니까?

공화당을 지지해서 트럼프를 찍는 건지, 트럼프가 좋아서 공화당에도 표를 주는 건지 물은 거죠. 2020년 선거 당일 응답자의 54%는 트럼프가 더 좋다고 답했습니다. 공화당이 더 좋다고 답한 사람은 38%였죠. 그런데 이 수치가 지난주에는 36% 대 56%로 뒤집혔습니다. 트럼프가 공화당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코노미스트와 유거브가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공화당원의 82%는 트럼프에게 호감을, 59%는 매우 호감을 보였습니다. 높은 수치임이 틀림없지만, 지난 2020년 12월에는 이 수치가 각각 91%, 74%였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지지가 다소 시들해진 데는 의사당 테러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의사당을 무단 점거해버린 사건을 옹호하는 건 선을 넘는 일이라고 여긴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과거의 후보’ 트럼프보다 새로운 ‘미래의 후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선을 넘었다고 여기는 공화당 지지자가 당내에서는 소수입니다.) 아직 다음 대선까지는 3년 가까운 시간이 남았습니다.

트럼프를 대체할 만한 유력한 후보군 가운데 가장 앞선 사람은 트럼프가 키워낸 젊은 정치인, 트럼프 미니미로도 불리던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입니다. 둘 사이의 미묘한 갈등에 관해선 뉴욕타임스도 이달 중순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트럼프는 마치 우리나라의 삼김 정치 시절의 보스 정치를 하는 총재 같습니다. 미국 현대 정당정치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인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이는 누구든 가차 없이 쳐냈습니다.

2017년, 인지도도 별로 없던 젊은 하원의원 드산티스를 콕 집어 전국적인 인물로 키워내고 플로리다 주지사 당내 경선에서 깜짝 승리를 일궈낼 기반을 닦아준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올해 43세의 드산티스 주지사는 조금씩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스크나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정책을 그대로, 어떤 의미에선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면서 백신 접종을 장려하고 나서면서 둘 사이에 간접적인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본인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트럼프는 공화당 안에서는 자신이 재선에 나서겠다는 의향만 보이면 곧바로 모두가 길을 터주기는 그림을 바랍니다. 그런데 자신이 키운, 자기 말만 듣고 따라 하던, 자기 덕분에 정치자금도 그만큼 모을 수 있던 ‘애송이’ 드산티스 주지사가 충성 서약을 하지 않는 겁니다. 심지어 재선 캠페인을 벌이면 러닝메이트로 드산티스를 지명할 수 있다는 말까지 흘렸는데도 드산티스는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지인에게 “왜 저 자는 나한테 맞서지 않겠다고 약조하지 않는 거냐”며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드산티스 주지사 외에도 니키 헤일리 주UN 미국 대사,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마이크 폼페오 전 국무장관 등이 공화당 내의 잠룡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지금 상황으로선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를 넘어서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시험대는 오는 중간선거가 되겠죠. 친트럼프 후보들이 대거 당선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중간선거 성적표가 좋지 않다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냉정하게 트럼프의 지난 두 번 선거 결과를 곱씹어볼 겁니다. 트럼프는 두 차례 대선에서 전체 득표에서는 모두 졌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만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습니다. 선거의 달인이라고 하기엔 확장성이 부족한 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