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2022 중간선거 앞둔 공화당 의원들의 걱정: 선거자금
2022년 5월 9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는 시시각각 바뀝니다. 이 글을 쓴 1월 12일에는 1년 전 의사당을 점거한 폭도들과 그를 비호하는 정치인들이 분명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모두 알다시피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대법원이 50년 만에 파기하려는 문제가 모든 이슈의 중심이 됐습니다. 로 대 웨이드를 둘러싼 이야기는 오늘과 내일 프리미엄 콘텐츠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월 6일은 폭도들이 미국 의사당을 점거한 테러가 일어난 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최종 인준해 선거 결과를 확정하는 날 수도 워싱턴 D.C. 의사당을 무단 점거했습니다. 의사당을 지키던 경찰은 폭도들의 손에 폭행당해 순직했습니다. 폭도들은 의사당 기물을 파괴했으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납치해 살해하려 했습니다. 이날은 200년 넘는 미국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날이었습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1월 6일 테러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셨을 겁니다. 그보다 여전히 지난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채 공화당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이 올해 겪게 될 난관을 예상한 글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올 11월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의원들이 겪을 선거자금 문제입니다.

미국 선거는 아주 비쌉니다. 돈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죠. 국고나 중앙당에서 선거자금을 보조받을 수 없으므로 후보들은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선거자금 가운데 적잖은 돈이 기업에서 옵니다. 기업은 개별적으로, 혹은 업계 내에서 조직을 꾸린 뒤 정치행동위원회(PAC, 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냅니다.

지난해 테러 직후 미국 기업들은 미국 민주주의를 짓밟은 폭도들을 일제히 규탄했습니다. 기업이 정치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항의나 처벌은 돈줄을 끊는 거죠. 거의 모든 기업이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을 비난했으며,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인준하지 말아야 한다고 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147명에게 앞으로 정치자금을 후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 의회에선 의원들의 모든 표결이 공개됩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과 로비스트를 취재한 기사들을 보면 폭동 직후 약속은 사실상 흐지부지된 것처럼 보입니다. “기업들은 다시 정치권에 예전처럼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내고 있다”거나 “선거인단 투표 인준을 거부했던 의원에게 후원금을 내도 걱정만큼 반발을 사진 않는 분위기”라는 내용기사들도 나왔습니다. 한 로비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워싱턴 정계는 이 사건을 생각보다 금방 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퓰러 인포메이션(Popular Information)이 실제로 의원 한 명 한 명의 후원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는 조금 다릅니다. 변호사 겸 언론인 주드 레굼(Judd Legum)이 서브스택에서 4년째 운영 중인 정치전문매체 포퓰러 인포메이션은 “1월 6일 대선 결과 비준에 반대했던 의원들의 정치자금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corporate contributions to Republican objectors since January 6)”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선 결과에 불복한 공화당 의원들은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소개한 기사들은 기자가 의회 관련 취재원 몇 명의 이야기만 듣고 쓴 기사일 뿐 실제 데이터를 보면 대다수 기업이 공화당 의원을 후원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업마다 정치행동위원회를 꾸릴 수 있는데, 수천 개에 이르는 기업 정치행동위원회의 약 80%가 공화당 의원들을 후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공화당 의원들의 모금 성적표를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선 결과 비준에 반대했던 공화당 의원들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은 70% 가까이 급감했다. – 포풀러 인포메이션

결과적으로 대다수 공화당 의원의 후원금이 반토막 났다는 분석인데, 오늘은 포퓰러 인포메이션이 데이터를 어떻게 분류하고 해석했는지 그 과정을 같이 따라가 보겠습니다. (포퓰러 인포메이션이 실제 데이터를 정리한 내역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 탄탄해지기도 하고, 아전인수격 억지 주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포퓰러 인포메이션은 먼저 기업 정치행동위원회가 낸 후원금 내역 가운데 2019년과 2021년을 비교했습니다. 짝수 해인 2020년은 선거가 있던 해라서 선거자금을 훨씬 더 많이 모으는 해입니다. 2020년과 비교해 2021년 선거자금 모금액이 줄어들었다고 이를 1월 6일 의사당 점거 테러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겠죠. 그래서 마찬가지로 선거가 없는 홀수 해의 후원금 내역을 비교한 겁니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의원 147명 가운데 정확한 비교를 위해 요건에 맞는 의원들을 추렸습니다. 즉 2019년과 2021년에 모두 현역 의원으로 하원 선거를 치른 의원만 비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현역 의원일 때와 도전자일 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역량에는 적잖은 차이가 납니다. 또 2년 임기인 이번 회기까지만 마치고 정계를 은퇴하거나 하원의원 말고 다른 일을 할 계획인 정치인들은 지난해 선거자금을 거의 모으지 않았겠죠.

2년 임기인 하원과 달리 6년 임기로 세 번에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 상원의원도 분석 대상에서 뺐습니다. 예를 들어 로저 마샬(캔자스) 의원은 2020년에 선거를 치렀습니다. 2019년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서 기업 정치행동위원회에서 65만 6천 달러를 모았지만, 다음 선거가 아직 5년이나 남은 지난해엔 느긋했습니다. 기업에서 모은 선거자금이 2만 2천 달러에 불과했죠. 이 차이를 대선 결과 불복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의원 147명 가운데 94명이 남습니다. 이제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있게 됐죠. 의원 94명이 지난해 11월 30일까지 기업 정치행동위원회를 통해 모금한 선거자금은 총 1,105만 2,925달러입니다. (12월 데이터는 아직 집계 전.) 같은 의원들이 2019년 같은 기간 모은 선거자금은 총 2,720만 5,290달러입니다. 지난해 공화당 의원들은 선거자금을 60%나 덜 모은 겁니다.

도표=포퓰러 인포메이션

기업들이 1월 6일 테러 이후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끊겠다고 발표했을 때 블레인 루케마이어(미주리) 의원은 호기롭게 해당 기업들을 오히려 블랙리스트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루케마이어 의원의 협박에 별로 동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9년에 기업 정치행동위원회에서 72만 6500달러를 모은 루케마이어 의원은 2021년에는 28만 1천 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습니다. 기업을 대신해 루케마이어 의원과 뜻을 같이한 단체나 시민들이 선거자금을 모아줬다면 타격이 덜했을 텐데, 40만 달러 넘는 돈을 채워주기엔 부족했습니다. 연방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치자금 신고 내역을 보면, 루케마이어 의원은 2019년에 총 84만 달러를 모았지만, 2021년엔 55만 6천 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습니다.

기업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의원들을 규탄하며 실제로 후원을 끊었고, 지지자들은 그런 의원들을 오히려 애국자라며 추켜세우면서도 선거를 치르는 데 상당히 중요한 돈은 채워주지 못한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몇몇 공화당 의원은 재빨리 살길을 찾은 모습입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화당을 자신의 팬클럽처럼 바꾸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줄을 잘 댄 의원들은 기업들이 철회한 후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모금했습니다. 비교 대상으로 삼은 하원의원 94명 가운데 32명이 2021년에 총액 기준 정치자금을 더 모았습니다.

공화당 정치인 중에는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트럼프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란 듯이 올려놓은 이들이 많습니다. 맷 게이츠(플로리다) 의원도 그중 한 명인데, 게이츠 의원은 대표적인 열성 트럼프 지지자로 여전히 지난 대선이 조작됐고 트럼프가 좌파 민주당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찬탈당했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와는 별개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이츠 의원에게 돈을 몰아줬습니다. 원래 많지도 않던 기업 후원금은 2019년 3만 7,300달러에서 2021년 8천 달러로 줄었지만, 후원금 총모금액은 2019년 65만 6천 달러에서 2021년 426만 2,515달러로 7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재검표 요구나 부정선거 조사 요구를 무시한 법무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선 트럼프의 또 다른 심복 짐 조단(오하이오) 의원도 지난해 선거자금을 두 배 이상 모았습니다. 심지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 의원도 기업 후원금은 1/3로 줄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개인 별장인 마라라고를 쉼 없이 드나든 보답을 돈으로 받았습니다. 2019년엔 200만 달러를 모았는데, 지난해엔 무려 820만 달러를 모은 겁니다.

이렇게 트럼프의 그늘에서 한몫을 차지한 정치인도 있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그림자 때문에 적어도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공화당 의원들이 훨씬 많은 게 사실입니다.

1월 6일 하원에서 열린 의사당 테러 추모 묵념 장면. 공화당에선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리즈 체니 의원 부녀만 참석했다. 사진=abc뉴스 영상 갈무리

글 초반에 미국 선거엔 돈이 많이 든다고 썼는데, 짝수 해인 올해가 선거의 해입니다. 미디어 광고도 비싸고, 선거운동 기간이 따로 없는 미국의 특성상 유권자를 만나려면 적잖은 규모의 선거 캠프를 늘 꾸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모인 돈의 차이도 공화당 의원들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기업들이 올해도 계속해서 특히 대선 결과를 부정하며 트럼프 편을 드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내지 않는다면 선거를 치르는 데 분명 차질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트럼프와 등을 돌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공화당을 장악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죠. 앞서 의회에서 열린 1월 6일 추모 묵념 행사에 공화당 정치인 가운데 단 두 명만 참석한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 체니 의원은 공화당 하원 내 서열 3위였던 의원총회 의장이었는데, 1월 6일 테러 이후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했다가 의장직을 박탈당하고 사실상 내쳐졌습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하려면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선 안 되기 때문에 공화당 의원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진퇴양난일 수 있습니다. 선거자금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다가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경선에 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포퓰러 인포메이션은 주요 기업들의 2022년 정치자금 후원 계획을 일일이 물은 뒤 그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름 있는 대기업 7곳이 대선 부정선거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해당 기업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어비앤비(Airbnb), 바스프(BASF), 에버소스 에너지(Eversource Energy), 리프트(Lyft),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다우(Dow),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