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고기로 태어나서
2022년 5월 12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미국에서 생산된 식품의 1/3은 소비되지 않고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부족해 배고픔을 느끼는 가정이 미국 전체 가정의 1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둘 사이의 틈을 줄이면 수백만 명이 더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겁니다. 미국 환경보호국이 최근 낸 보고서를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고기로 먹으려고 길러서 도축하는 가축이 너무 많은데, 이를 줄일 수 있다면 자원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하는 윤리적인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고기를 안 먹고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덜 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그보다 훨씬 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복스의 퓨처퍼펙트 뉴스레터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내뿜는 온실가스는 미국이 배출하는 모든 온실가스의 약 4%로, 비행기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조금 더 많습니다. 특히 육류를 비롯한 동물성 식품은 식물성 식품보다 탄소나 메탄을 더 많이 내뿜고, 정화하는 데 훨씬 많은 땅과 물, 에너지가 듭니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면 고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2011년 미국 농무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인은 생산한 육류 식품의 26.2%를 먹지도 않고 버립니다. 가축의 두수로 환산하면 닭 10억 마리, 칠면조나 돼지, 소 1억 마리 이상, 물고기 250억 마리, 새우 등 갑각류나 조개류 150억 마리에 해당합니다. 소매 단계에서 버려지는 고기만 이 정도입니다. 식품 생산, 가공, 배송 과정에서 버려지는 고기를 포함하면 숫자는 더 커질 겁니다.

사진=Unsplash

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적잖은 품과 에너지가 듭니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공정을 잇달아 거쳐야 우리 밥상에 오르는 고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생산과 물류 공정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된 고기가 그대로 버려지는 일을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 몇 가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하기 전에 먹기

아직 먹어도 되는 상태의 음식을 상했다며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절감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 리페드(ReFED)의 대나 건더스는 “미국의 고기 포장에 적힌 유통기한은 고기를 가장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표시해둔 것일 뿐 그 날짜가 지났다고 고기가 상하거나 못 먹게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겉보기에 문제없고, 상한 냄새도 나지 않으며, 맛도 괜찮으면 그냥 먹어도 된다”는 원칙을 세워보라고 권합니다. 원칙을 세울 때 참고할 만한 웹사이트도 있습니다.

  • 냉동실에 얼리기

건더스는 냉장고 냉동실을 “마법의 멈춤 버튼”이라고 부릅니다. 고기나 생선은 사두고 바로 먹지 않으면 냉동실에 얼려두는 사람이 이미 많습니다. 그런데 육류 외에 우유나 계란도 얼려서 보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냉장실에 넣어두고 늦기 전에 먹으면 가장 좋지만, 한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으니까요. 우유는 얼었다가 다시 녹았을 때 식감이 조금 다를 수 있는데 그게 싫지만 않다면 냉동실에 보관해도 됩니다. 계란은 깨서 풀어놓은 상태로 통에 담아 얼리면, 나중에 녹여서 요리해 먹을 수 있습니다.

  • 계획하기

언제 무얼 먹을지 미리 계획하고 그에 맞춰 먹을 만큼만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처음부터 음식물 쓰레기가 생겨날 틈을 아예 안 주는 거죠.

 

가족의 식단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보다 고객들의 수요를 예측하는 일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그러나 마트나 식당, 식품 공장, 농장에서 이를 잘 해낼 수만 있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훨씬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먼저 농장에서는 가축의 사망률을 낮추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닭 90억 마리 가운데 5%는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가는 길에 죽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비좁은 닭장에 가둬 기르거나 비육을 늘리려고 항생제를 먹여 면역이 약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의 제목으로 노동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를 떠올린 것도 한승태 작가가 양계장에서 본 것을 묘사한 장면이 떠올라서였습니다.

2050년이면 지구의 인구는 90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이 먹는 고기의 양도 2010년보다 50%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생산량은 수요에 맞춰 늘리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는 더 줄일 수 있다면 기후변화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만 문제가 아닙니다. 가축을 기르고 도축하는 행위는 작물을 길러 수확하는 행위보다 숲을 더 많이 파괴하고 종다양성을 줄이며, 환경에 부담을 주는 행위입니다. 사람이 먹으려고 생산한 고기를 안 먹거나 덜 먹을 수 없다면, 먹을 만큼만 먹고 버려지는 고기가 가능한 한 없도록 모두가 신경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