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교통사고에서 ‘실수’의 책임은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
tags : #개인, #과학, #교통사고, #시스템, #실수, #인과관계, #책임 2022년 4월 18일 | By: veritaholic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지난 11월 26일 애틀란틱에는 자동차 사고의 책임과 인과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방문학자이자 교통수단의 미래에 관한 글을 쓰는 데이비드 지퍼는 미국 사회에 지금 “교통사고 대부분은 그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는 오해가 퍼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미국 사회에서는 지난 10년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계속 증가했습니다. 특히 2021년 상반기에만 교통사고로 2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이는 미국보다 인구가 30% 더 많은 유럽연합(EU)의 지난 1년 간의 사망자 수 18,800명 보다도 많습니다. 지퍼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유럽연합 규제 당국의 역할을 꼽습니다. 유럽연합은 자동차 제조사가 따라야 할 안전 기준을 계속 강화해왔고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도로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사망자를 체계적으로 줄여왔다는 겁니다.
반대로 미국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지난 2015년 미국 교통안전국이 펴낸 2쪽 분량의 문서입니다. 문서에는 “자동차 사고의 94%에서 그 사고를 일어나게 한 결정적 요인, 곧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이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교통안전국은 이어 “결정적 요인이 사고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사고의 원인은 아니”라고 덧붙여놓았죠.
지퍼는 구체적인 예를 듭니다. 안개 낀 날, 한 SUV 운전자가 제한속도 60km/h의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제한속도 40km/h 표지판이 있습니다. 만약 차선이 줄어들었다면, 다른 일반적인 운전자의 경우처럼 SUV 운전자는 속도를 낮추었을 겁니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운전자는 표지판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지 신호가 없는 마을의 교차로에서 길을 건너던 보행자는 60km/h로 달려오는 차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역사학자 E.H. 카는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가능한 여러 요인 중에 우리가 이를 바꿨을 때 같은 실수를 피하게 해주는 요인에 더 주목하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런 접근법을 따르더라도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사람들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어 교통사고를 줄이는, 즉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일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시스템에 책임을 묻는 것은 이데올로기, 곧 세계관의 차이라고 할 정도의 커다란 관점의 차이입니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보다 시스템에 책임을 묻는 이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이들이며, 시스템에 책임을 묻는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을 불신하는 이들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사람의 실수 때문이라는 생각이 적어도 자율주행 자동차 회사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오해라는 점입니다. 곧, 자율주행이 상용화 되면 지금보다 교통사고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라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퍼는 카네기멜론대학교 필 쿱맨의 연구를 인용하며 자율주행 자동차도 도로에서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으며, 지금보다 사고율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