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갈증과 진화
2022년 3월 16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군인을 훈련하는 훈련소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몇 안 되는 장소입니다. 이제는 꽤 오래전 일이지만, 저도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일 중 기억에 또렷이 남은 일로, 야외 훈련 도중 몇 가지 착오로 두어 시간 동안 식수가 끊긴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훈련소는 조교와 훈련병 사이에 강력한 서열 관계가 존재하는 곳이지만, 그날은 꽤 많은 훈련병이 강하게 반발했고, 조교들도 훈련병을 달래느라 쩔쩔맸지요.

제가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사실 그날도 저는 그렇게 심하게 갈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평소에도 물을 잘 마시지 않습니다. 심할 때는 온종일을 따져 보아도 식후에 마신 물 한두 잔이 전부인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 검진에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늘 찔리는 기분이었지요.

출처=Unsplash

지난 2015년 저희 뉴스페퍼민트가 소개한, 뉴욕타임스에도 실린 “하루 물 8잔씩 안 마셔도 됩니다” 기사는 그래서 제게 많은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거의 상식처럼 여겨지는  의학적 조언이 사실 그리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물을 많이 필요로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신진대사 과정은 대동소이하고, 저처럼 물을 적게 마신다고 실제로 수분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위에 소개한 기사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수분의 상당량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을 통해 충족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수분 섭취량은 마시는 물의 차이만큼 개인차가 크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왜 어떤 사람은 물을 더 마셔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난 7월, 미국의 대중과학언론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는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물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300만 년 전, 아프리카가 건조해지면서 물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생긴 것이 첫 단계였습니다. 이때 작고 땅딸막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더 크고 날씬한 호모 속에게 자리를 넘겨줍니다. 호모 속은 태양열을 덜 받았고 바람에도 더 노출돼 수분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 돌연변이가 생깁니다. 바로 외분비 땀샘을 더 많이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다른 동물에겐 없는 강력한 냉각 시스템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제는 잘 알려진 원시 인류의 전형적인 사냥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바로 사냥감을 계속 쫓아서 그 사냥감이 자신의 신체가 과열돼 더는 도망가지 못할 때 까지 쫓아가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땀샘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납니다. 바로 물의 소비가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낙타나 다른 동물처럼 물을 신체 내에 저장하는 기관이 없던 인간은 신체 내 수분량에 매우 민감해졌고, 그것이 우리의 매우 강력한 본능 중 하나로 갈증이 자리 잡게 된 이유입니다.

 

이 기사를 흥미롭게 본 이유는, 바로 제가 앞부분에 던진 저의 오랜 질문에 한 가지 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왜 어떤 사람은 물을 적게 필요로 하느냐는 질문 말이지요.

이 기사에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소개됩니다. 바로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임신한 암컷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지 못했을 때 그 자손은 물을 더 아껴서 사용하고, 따라서 수분 섭취를 적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상당히 그럴듯하지요. 곧,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물을 덜 필요로 하는 자손의 생존율이 올라갈 테니까요.

결국 저는 한 가지 답을 얻은 셈입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가 임신 기간에 물을 많이 안 드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어쩌면 저의 외할머니가 물을 많이 안 드셨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또 외할머니의 어머니로 계속 올라갈 수도 있겠네요. 음… 이 이론이 그렇게 유용한 지식은 아닌 느낌도 듭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으시는 분이 이제 태어날 아이가 물을 많이 안 마셔도 되는, 곧 갈증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신 임산부가 아니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