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아프간 난민과 국내 정치
2022년 2월 16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한국 정착은 우려한 대로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최근 이들이 정착한 울산 동구 일대 학부모들이 “특별기여자 어린이들이 특정 학교에 집중적으로 입학하는 걸 반대한다”는 주장을 담아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난 8월 30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하면서 급작스레 늘어난 아프간 난민 문제를 살펴본 글을 소개합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뒤 발생할 난민 문제가 세계 각국에서 국내 정치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현지에서 함께 일한 조력자와 그 가족 300여 명을 군용기에 태워 입국시켰지만,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이들의 법적 지위가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치권도 조력자들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큰 틀에는 이견이 없지만, 앞으로 난민을 더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모습입니다.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극우파를 중심으로 반이민 정서가 다시금 요동치는 와중에, 난민 수용에 미국이 얼마나 개입할 것인지가 정계의 큰 전선으로 떠 오르고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포용은 2020 대선뿐 아니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커리어 전반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였지만, 중간 선거와 차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아프간 난민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는 등 대대적인 반이민 정책을 추진했던 전 정부와 지지자들의 맹공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간 사태가 아니더라도, 이민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 언제나 민감한 이슈입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4월, 난민 수용 상한선을 둘러싸고 백악관이 입장을 번복한 과정을 보도하면서 바이든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랐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정한 난민 수용 상한선(15,000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민주당 의원들과 이민자, 난민 단체들의 항의를 받고 5월 안에 상한선을 올리겠다고 계획을 바꿨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과 최측근인 블링컨 국무장관 사이에서도 드문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됐죠.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약속대로 5월 3일, 연간 난민 수용 인원을 62,500명으로 상향조정하고, 차후 이를 125,000명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난민과 이민자를 환영하는 것이 미국적인 가치관의 정수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세등등한 트럼프와 그 지지자, 보수 언론에 난민 문제는 효과 만점의 공격 거리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우선시(put America first)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갖다 붙이기도 좋고, 외국인 혐오나 공포와 같은 폭발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미국에서 난민 수용 문제가 반드시 당파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복스(Vox)는 난민이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말로 충분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난민이 수용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면서, 난민 수용이 가져올 경제적인 효과를 설명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해당 기사는 난민 유입이 미국의 주택난을 악화시킨다거나,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거라는 주장에 모두 근거가 없다면서, 오히려 침체되고 쇠락 중인 소도시의 인구 감소세를 되돌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며, 지역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여럿 제시했습니다. 또한, 이민자 때문에 기존 국민들의 임금이 낮아진다거나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있는 주장임을 밝혀낸 여러 연구도 소개했습니다.

UC 샌디에고 정치학과의 클레어 아디다 교수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지역 사회나 국가도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진=아디다 교수 트위터 갈무리

실제로 이번 사태 이후에도 난민 수용 의사를 분명히 밝힌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있습니다. 버몬트, 오클라호마, 아칸소, 아이오와, 유타, 사우스캐롤라이나,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의 메시지에는 자신의 주에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미국을 도운 영웅들을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라는 (보수층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표현들이 들어있습니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계산이 진행 중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