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글로벌 반도체 생산을 장악한 배경과 미국의 향후 행보
2021년 4월 20일  |  By:   |  IT, 경영, 세계  |  No Comment

(CNBC, Arjun Khar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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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내용 >

  •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으며,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회복에 나설 것입니다.
  • 조 바이든 대통령은 소수의 해외 반도체 생산 업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을 되살리려 합니다.

 

반도체 생산을 이야기할 때 두 기업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입니다. 이 두 기업은 글로벌 반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때 선두였던 미국의 기업들은 사업 모델을 전환하면서 반도체 생산 분야의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소수 국가에 의존하는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생산을 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미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편성했으며, 다른 나라와 협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자동차에서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제품에 꼭 필요한 핵심 부품입니다. 또한,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인 산업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대중국 정책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반도체 공급 부족과 미중 간 기술전쟁으로 반도체 생산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미국 정부의 범국가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아시아가 글로벌 반도체 생산 시장을 장악한 배경

어떤 나라가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지, 미국이 왜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 하는지 궁금하다면 반도체의 공급망과 비즈니스 모델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체 반도체를 설계하고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설비까지 보유한 기업을 종합 반도체 기업(IDM)이라고 부릅니다. 인텔(Intel)이 대표적입니다.

팹리스(fabless) 업체는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생산은 다른 기업에 아웃소싱합니다. 이때 생산을 담당하는 업체가 파운드리(foundry) 기업입니다. 이들은 팹리스 업체의 생산 주문을 받아 직접 반도체를 제조합니다.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가장 큰 파운드리 업체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미국 기업들은 종합 반도체 기업에서 설계만 맡는 팹리스 업체로 전환해 왔습니다. 제조를 맡은 TSMC와 삼성전자는 첨단 반도체 생산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제조 역량을 높여왔습니다. 이 결과, 이제는 애플이 아이폰에 필요한 최신 반도체를 구하려면 TSMC에 생산을 맡겨야만 합니다.

* 번역자 주 : 생산 설비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종합 반도체 기업보다 설계만 담당하는 팹리스 업체의 수익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미국 업체들이 팹리스 형태로 사업 모델을 전환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55%, 삼성전자가 18%를 점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두 기업을 포함한 대만과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81%에 달합니다. 이들에 대한 글로벌 반도체 생산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12월 보고서에서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2001년 30개에 달했던 반도체 생산 업체 중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3개 업체만 살아남았다. 반도체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비용과 제조 기술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이 경쟁에서 낙오했기 때문이다.

이 세 기업 중에서도 인텔이 가장 뒤처져 있습니다. TSMC와 삼성전자의 제조 기술이 훨씬 우위에 있죠. 미라보 증권(Mirabaud Securities)의 닐 캠플링 기술, 미디어, 통산 분야 수석 연구원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대만과 한국의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한 웨이퍼 분야에서 선두에 올랐습니다. 20년에 걸친 정부의 정책 지원과 숙련된 노동력이 상당 부분 기여했습니다.”

 

복잡한 반도체 공급망

TSMC와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이 두 기업도 미국, 유럽, 일본의 장비와 기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업체인 파운드리에 생산 설비를 공급하는 기업을 반도체 장비업체(Semiconductor capital equipment vendors), 줄여서 세미캡(semicap)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Gatner)의 자료에 따르면 상위 5개 세미캡 업체가 시장의 70%를 차지합니다. 5개 기업 중 3개는 미국, 1개는 유럽, 나머지 1개는 일본 기업입니다.

특히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인 ASML은 TSMC와 삼성전자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입니다.

 

미국의 향후 행보와 그 배경

따라서 미국이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뒤처진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몇몇 회사들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미국이 부족한 분야는 바로 반도체의 제조 공정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제조업의 주도권을 되찾고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합니다.

지난 2월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의 리스크를 점검하고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조 달러(2,20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 중 500억 달러(56조 원)를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에 할당했습니다.

한편, 미국의 인텔은 지난 3월 새로움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200억 달러(22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이 이뤄지면 반도체 생산을 TSMC와 삼성전자 등 해외 공장에 의존하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밀 조사 명령은 자동차 산업을 강타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촉발됐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노트북, 게임기 등 반도체가 필요한 개인용 전자제품의 수요가 늘어났고, 산업재, 자동차 생산이 감소했습니다. 최근 해당 분야의 생산이 반등하고 많은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더 증가하면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TSMC와 삼성전자에 지나치게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이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미라보 증권의 캠플링 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자국 산업과 경제가 외부 요인에 크게 흔들린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요인도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싱크탱크인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의 폴 트리올로 지정학기술 연구 부문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업체와 해외 업체를 막론하고 미국 내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대만처럼 지정학적 긴장 관계가 얽힌 지역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의 고임금 일자리도 늘릴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정책의 일환으로 우호국과 동맹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4월 초 일본 닛케이 경제신문은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손을 잡을 것이라 보도했습니다. 양국은 대만 등 특정 지역에 지나치게 편중된 반도체 생산의 집중도를 낮추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것입니다.

캐나다 미래혁신센터(Center for Innovating the Future)의 지정학 전문가인 아비슈르 프라카시(Abishur Prakash)는 CNBC에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반도체 산업의 틀을 다시 설계하려 합니다. 단순히 반도체 생산의 자급도를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AI부터 반도체까지 미래 산업, 경제의 핵심적인 구조를 재편하고 중국을 배제하려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여러 나라와 협력할 것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 제재에 맞서 반도체 자립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공급 경쟁력은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한참 뒤처진 수준입니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TSMC와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이지만, 제조 기술을 비교하면 두 기업보다 몇 년 뒤처져 있습니다.

SMIC가 기술 격차를 따라잡으려 해도 미국의 제재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2020년 미국 정부는 SMIC를 거래 제한 명단인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국 기업들이 기술과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길이 막혔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SMIC는 반도체 생산에 사용하는 장비 중 8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로이터(Reuters) 통신은 지난해 미국이 네덜란드 정부에 반도체 장비 대중국 수출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네덜란드 기업인 ASML의 반도체 생산 장비를 SMIC에 수출하지 말라는 것이었죠.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입니다. ASML은 SMIC와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수출 허가를 받지 못해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12월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에서 생산한 장비가 없으면 중국의 차세대 반도체 생산은 불가능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4월 초에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을 밝혔습니다. “미국의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의미 있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 뒤처져 있으며, 미국의 제재로 인해 다른 나라의 지적 재산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중국이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는 시기가 5년가량 늦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