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주말, 소설가 스티븐 킹의 워싱턴포스트 기고 칼럼
2020년 11월 2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하게 반(反)트럼프 및 민주당 지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소설가 스티븐 킹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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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애니라고 부르겠습니다.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그걸로 괜찮겠죠. 2016년 9월, 애니는 메인주 서부에 있는 우리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거기서 주유를 하곤 하는데, 요즘은 애니의 모습을 통 볼 수 없습니다. 여름 내내 애니는 피서객에게 여섯 병 들이 맥주와 바비큐용 가스 연료통, 과자와 딥, 로또를 파느라 바빴죠. 노동절이 지나고 피서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애니는 작업복을 걸친 채 건물 외벽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저는 애니를 60세 정도로, 아니면 고된 삶을 살아온 50대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 흡연자 특유의 거친 목소리, 집에서 염색한 금발에서부터 빨간 운동화 바닥까지, 애니는 메인주의 전형적인 양키 그 자체였죠.

초가을의 어느 날, 저는 애니가 담배를 피우는 곳에서 행운의 10센트 동전으로 5달러짜리 복권을 긁으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 거냐고 물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답변이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여성이니까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넘겨짚기도 했지만, 메인주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가 대패할 거라는 여론조사를 연일 들은 탓도 있을 겁니다.

“트럼프 찍을 거예요.” 애니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농담이시죠?”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애니는 너 놀랐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왜요?” 나는 이렇게 묻고는 4년 후 TV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이 트럼프를 지칭해 사용한 단어를 입에 올렸습니다. “그 사람은 광대잖아요.”

“나는 트럼프가 마음에 들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잖아요. 마음에 있는 얘기를 그대로 하는 사람이고.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뒈지시던가.” 애니는 너한테 하는 말이야 작가 선생,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트럼프가 경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애니는 바로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마음에 든다고요. 그 사람은 사업가잖아요. 판을 흔들어 놓을 거 아니요. 사과 수레를 엎어버릴 사람인 거지.”라고 말했죠.

4년이 지난 후 우리는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국 사회는 남북전쟁 이래 최고로 분열되었고, 그 원인은 트럼프입니다. 판을 조금 흔드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허리케인을 발생시키는 저기압과 따뜻한 물과 같이 위험한 조합 그 자체입니다. 여론 조사는 트럼프의 패배를 예측하지만,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죠. 꽤 많은 주류 공화당원들이 트럼프에게서 등을 돌렸고,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투표하지 않거나 조용히 바이든에게 표를 던질 예정입니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고해졌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MAGA 군단은 공화당이라는 눈덩이 안에 박혀있는 비정치적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통상적인 정치 행위, 대통령의 행위에 반하는 트럼프의 저항을 다 적으면 그 리스트는 끝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아주 두꺼운 책들도 여러 권 출판되었죠.) 그리고 그 리스트는 핵심 지지층에 무한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 같지 않으니까요. 엿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니까요.

물론 그는 미국을 위하는 인물입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 있는 사진, 황홀한 미소(제 눈에는 가식적으로 보이지만)를 띠고 성조기를 끌어안은 사진 등 이를 증명할 사진들이 많이 있죠.

트럼프는 미국인의 “이드(id)”와 직통으로 접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큐아논이나 딥스테이트처럼 예전에는 수증기처럼 흩어져있던 음모론을 결정화시켰고, 우리의 논리적 사고가 해롭거나 중독적이라고 경고하는 편견에 목소리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코로나19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확진자 수 상승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을 이해하지만, 이런 것들은 재미가 없습니다. 백신이 뇌 손상을 가져온다거나 지구 온난화는 사기극이라거나 민주당원이 아이들을 성추행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의 온라인 루머가 훨씬 더 재미있죠. 이드는 미움과 공포로 가득 찬 존재입니다.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비를 불러오는 것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레인메이커 트럼프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 유세 모두를 어두운 음모에 근거해 치러내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투표장으로 향하는 미국인들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쪽은 트럼프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드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온갖 어두운 믿음에 힘을 실어주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바이든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바이든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 ‘초자아(superego)’에게 표를 주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이든도 흠결이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이성적이고 내키지는 않더라도 자기 행동과 사회적 문제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우리 안의 ‘자아(ego)’에게 던지는 한 표가 될 것입니다.

비록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2016년의 애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소리를 지르는 빨간 모자의 지지자들이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죠. 과일 수레를 발로 차서 엎어버린 후, 그냥 자리를 떠버리고 싶은 욕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럽고 쫓기는 것 같더라도 이성적인 방식으로 앞길을 개척할 필요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수레를 발로 걷어 차버렸고,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줬습니다. 바이든은 이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길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주워 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