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법칙”은 새로운 “무어의 법칙”이 될까? 엔비디아가 ARM을 원하는 이유
2020년 10월 14일  |  By:   |  IT, 경영  |  No Comment

(월스트리트저널, Christopher M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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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칩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대신에 AI 분야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Nvidia) CEO의 이름을 딴 새로운 법칙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대 컴퓨터의 첫 번째 시대는 “무어의 법칙”이 지배했습니다.

사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어떤 물리적 법칙을 도출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숫자가 대략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예측을 제시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반도체의 성능은 물론, 그 반도체를 사용한 컴퓨터의 성능이 2년마다 2배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의 근본적인 틀이 됐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 수조 달러 규모의 기술 흐름을 제시한 것이죠.

반도체 제조회사들이 원자 크기의 회로 규모와 전자 물리학에 따른 한계에 도달하면서 무어의 법칙은 점점 지연됐고, 몇몇 전문가들은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50년 동안 무어의 법칙 못지않게 컴퓨터와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법칙이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법칙은 엔비디아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젠슨 황(Jensen Huang)의 이름을 딴 “황의 법칙”입니다.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반도체의 성능이 2년마다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주장이죠. 이에 따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성능이 높아집니다. 자율주행 자동차, 트럭, 선박부터 개인용 전자기기의 얼굴, 음성, 사물 인식 기능까지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엔비디아의 수석 연구원이자 연구 부문 부사장인 빌 달리(Bill Dally)는 2012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엔비디아 반도체의 성능이 317배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평균적으로 매년 2배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무어의 법칙이 무색해지는 발전 속도입니다.

엔비디아는 수많은 독립 연산을 동시에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그래픽처리장치인 GPU(Graphic Processing Unit) 분야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단일한 일련의 연산을 빠른 속도로 수행하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 분야에서는 인텔이 독보적이었죠. GPU가 모든 컴퓨터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 응용 분야에서는 CPU와 동일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몇 배 더 빠르게 프로세스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대표하는 기업이었지만, 인텔만이 유일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은 전 세계 수백 개 기업에 걸쳐 수만 명의 엔지니어와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엔비디아도 혼자서 황의 법칙을 달성할 수 없으며, 몇몇 프로그램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처리 방식을 효율적으로 대신할 다른 후보를 찾고 있습니다. 이것이 엔비디아가 400억 달러(45조 7천억 원)를 들여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을 인수하려는 주요한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황의 법칙, 다시 말해 AI에 특화된 하드웨어 속도 향상이 다가올 미래에 유토피아를 열지, 디스토피아를 열지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없는 안전한 세상이 될 수도 있고, 매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암울한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먼 미래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우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응용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인 결제 시스템은 소비자들의 쇼핑 방식을 바꾸고, 수백만 개의 소매업 일자리를 대체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테크 기업인 스탠다드(Standard)는 최근 편의점 프랜차이즈인 서클K(Circle K)와 맺은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서클K의 일부 매장에 아마존의 무인 상점 아마존고와 같은 “자동 결제 시스템(grab and go)”을 적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년차 스타트업인 스탠다드는 편의점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영상을 촬영하고, 이 영상들을 모두 연산 시스템으로 전송합니다. 엔비디아의 반도체를 장착한 시스템은 매초 수십조 번의 계산을 수행합니다. 고객들이 진열대에서 상품을 꺼내면 연산 시스템이 고객의 구매 금액을 순식간에 계산하고, 매장을 나설 때 고객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대금을 청구, 계산합니다.

적어도 인공지능 연산 작업만으로 볼 때, 이 시스템의 속도는 201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슈퍼컴퓨터보다 빠릅니다. 스탠다드의 설립자이자 CEO인 조단 피셔(Jordan Fish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앞으로는 엔비디아가 매년 우리 시스템의 가격을 낮춰주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황의 법칙은 자율주행차의 성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샌디에이고의 자율주행 트럭 스타트업인 투심플(TuSimple)은 전기 트럭의 전력 용량과 차체 공간 제한에 맞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규격에 맞추려면 자율주행 시스템 전체를 트럭 침대칸의 냉방 캐비닛 안에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 사용량을 5KW/h 이내로 줄여야 했습니다.

전력 용량의 제한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와트당 성능입니다. 투심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 기술책임자인 샤오디 호우(Xiaodi Hou)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투심플은 엔비디아 칩 기반 시스템 덕분에 성능이 매년 두 배 이상 향상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인공지능 프로세서의 발전에 따라 스마트폰의 성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애플은 인공지능 기능을 담당하는 뉴럴 엔진이 장착된 아이폰8을 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애플은 다양한 인공지능의 핵심인 머신러닝 작업에 특화된 칩을 설계했습니다. 반도체 제작은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에 맡겼습니다.

아이폰의 모든 앱에서 AI 반도체를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안드로이드 폰에도 유사한 칩과 소프트웨어가 도입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이 열렸습니다. AI 기반의 차량 대시보드 카메라를 만드는 넥사(Nexar)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넥사는 운전자의 스마트폰으로 대시보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운전자에게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휴대폰은 물론, 식기세척기, 문 잠금장치, 전구 등 다양한 스마트기기에 이르기까지 모바일 인공지능의 활용 폭이 크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수백만 개의 센서가 도시, 공장, 산업시설에 깔리고 있습니다.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은 이 혁명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 칩은 물론이거니와 크고 작은 수많은 테크 기업이 ARM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ARM의 머신러닝 부문의 데니스 로딕(Dennis Laudick) 마케팅 부사장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지난 3년에서 5년 사이에 머신러닝 네트워크의 효율성이 대폭 향상됐습니다. 이제는 칩의 크기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ARM이 내놓은 가장 작은 반도체는 손목시계 배터리 크기입니다. 이 칩의 성능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물건을 식별하게 하는 수준입니다.

넥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에런 셔(Eran Shir)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 배경으로 인공지능 처리가 클라우드 네트워크에서 엣지, 즉 기기 자체로 이동하는 흐름을 꼽았습니다. 엔비디아는 클라우드 네트워크의 인공지능 처리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습니다. 넥사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클라우드에서 데이터 처리 작업의 40%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ARM 기반의 칩을 장착한 모바일 기기에서 더 많은 작업을 더 빠르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기기에서 직접 처리할 경우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단계가 없기 때문에 효율적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 클라우드에서 이뤄지는 인공지능 프로세싱은 15%로 줄었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 칩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영상 기반 주차 보조 시스템과 같은 일부 기능도 지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황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한 발전 속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비영리 단체인 오픈 AI(Open AI)는 고전적인 인공지능 이미지 인식 테스트를 바탕으로 성능이 매년 약 2배씩 향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공지능의 “성능”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기부터 쉽지 않습니다. 현재 구글, 바이두, 하버드대학, 스탠퍼드대학을 비롯한 주요 테크 기업이 참여하는 연구 컨소시엄이 인공지능의 성능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황의 법칙에 대해 추가로 유의해야 할 점은 인공지능 칩의 처리 능력 향상이 모든 응용 프로그램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투심플의 기술책임자인 호우 박사는 “자율주행과 같은 전형적인 AI 중심 소프트웨어에서도 많은 작업에서 CPU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엔비디아의 달리 부사장도 이 지점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인공지능 칩의 성능 향상으로 일부 연산이 매우 빨라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부분의 속도가 같이 증가하지 않으면 병목 현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무어의 법칙처럼 황의 법칙도 한계에 도달할지도 모릅니다. ARM 머신러닝 부문의 스티브 로디(Steve Roddy) 마케팅 부사장은 이러한 일이 10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황의 법칙은 자율주행 자동차부터 스마트 공장, 스마트 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단기간에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황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히기 전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