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외에 ‘우연(Noise)’이 존재합니다(1/2)
2020년 5월 29일  |  By:   |  과학  |  No Comment

퀀타 / Jordana Cepelewi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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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복제 동물 군단이 독일을 침공했습니다.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스웨덴, 프랑스, 일본, 마다가스카르까지 퍼져 강과 호수, 논과 늪, 따듯한 물과 차가운 물, 산성와 염기성 물을 가리지 않고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15센치미터 길이의, 랍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대리석무늬 가재(marbled crayfish)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들을 1995년 즈음 수컷 없이 암컷이 홀로 자신을 복제할 수 있게된 한 애완용 가재의 돌연변이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혹은 고의로 이들은 야생으로 퍼져나갔고 곧 수백만 마리로 불어나면서 기존의 생태계를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에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모든 대리석무늬 가재는 한 개체의 후손입니다.”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생물학자인 귄터 보트의 말입니다.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이지요.” 일반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부재는 환경의 변화에 매우 취약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대리석무늬 가재는 지금 지구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사실 유전자만 같을 뿐 다른 개체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보트와 다른 이들이 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 가재들은 색깔, 크기, 행동, 수명 등에 있어 매우 다양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는 이들의 다양성을 만들어낸 것이 유전자가 아닌 다른 요소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 즉 유전자 – 혹은 본성 – 가 원인이 아니라면, 환경 – 혹은 양육 – 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환경이 유전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이들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 가재와 다른 동물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간과되어온, 생명이 가진 다양성의 세 번째 원인, 곧 우리 각자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원인이 배아의 발생 첫 날 부터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연(intrinsic noise)입니다.

본성대 양육대 우연

과학자들은 세포와 생명체의 표현형(이들의 형태, 생리적 특징, 행동 등을 통해 드러나는 특질)을 유전자와 환경, 곧 “본성”과 “양육”의 복합적 작용의 결과라 흔히 생각합니다. 때문에, 본성이 미치는 영향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어떻게 신체의 형태나 질병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지와 같은 연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패러다임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시스템 생물학자인 아준 라즈의 말입니다. “이 패러다임을 통해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요. 또 실험 결과를 아주 쉽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유전자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성장 중에 경험하는 영양소와 스트레스, 사회적 상호작용 등의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원인이라 생각했습니다. “생명체 외부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는 설명이 학계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뇌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케빈 미첼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전자가 동일하면서 같은 집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도 외모가 조금씩 다르며 행동 또한 다릅니다. 돌연변이에 의한 질병이 두 사람 중 한 명에게만 나타나기도 합니다. 쌍둥이는 지문 또한 다릅니다.

박테리아, 복제 물고기, 근친교배를 시킨 초파리와 쥐에게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됩니다. 어떤 병원균이나 암세포들은 같은 유전자임에도 세포마다 다른 약물 저항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실험실에서 자란 대리석무늬 가재 또한 같은 환경임에도 서로 다른 색깔, 모양, 행동을 했으며 그 차이는 그들 안에서 사회적 계급이 만들어질 정도로 분명했습니다.

한 인간에 대해서도 얼굴과 몸, 뇌의 좌우는 대칭이 아닙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 모든 차이들을 명확하지 않은 환경의 영향으로 돌려버릴 수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모든 생물학적 과정에서 등장하는 무작위의 잡음이 바로 세 번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취리히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안드레아스 바그너의 말입니다. “생명의 필연적 부산물이죠.”

미첼은 유전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생명체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우연이 관여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뇌 신경을 연결하는 일을 지시하는 유전자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청사진이 아닙니다. 유전자는 어떤 구체적인 결과물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생화학적 규칙 몇 가지와 배아가 스스로 발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몇 가지 세포 구성 알고리듬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미첼의 말입니다. 세포 내에서 분자들은 무작위로 서로 결합하고 끌어당기며 퍼져나갑니다. 이러한 “생명체 내의 분자 수준의 우연”이 단백질의 생성과 유전자의 활성화 여부를 결정하며, 단백질의 양과 접힘의 정도, 세포 내에서의 기능 수행 정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곧,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나는 과정이 “어느 정도 혼란스러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미첼은 말합니다.

하지만 발달단계에 간섭하는 우연은 종종 생물학적 시스템의 바람직한 작동을 방해하는 요소 정도로만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생물학적인 창의성의 원천으로 대접받지도 못했고, 행동이나 성격만큼 중요한 특질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으로도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우연의 효과를 연구하려한 과학자들도 막다른 벽에 곧 부딪히곤 했습니다. 이는 그 정의 그대로, 우연한 사건은 예측 불가능할 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우연의 효과를 따로 분리하기가 극히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우연의 효과는 제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파리 뇌연구소의 신경과학자 바셈 하싼의 말입니다. “유전자와 환경은 조절이 가능합니다. 생리학도 제어가 가능하며, 특정한 세포만을 활성화 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변이를 제어하고, 특질이 달라지는 원인이 우연 때문임을 보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미첼도 동의합니다. “그 본성 상, 우연은 연구 대상으로 삼기 매우 어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유전자 표현형, 단백질 생성, 발달 단계의 중요한 선택을 포함한 개별 세포의 특징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들이 등장함으로써 과학자들은 변이의 보다 미묘한 원인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발달단계에서 우연의 효과는 절대로 간과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저 생명체가 피할 수 없는 것 정도가 아니라, 생명체가 이를 이용하도록 진화했으며, 그 결과 개체의 적절한 발달을 위한 필수 요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더 다양한 생물이 진화하도록 만드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습니다.

임의성의 무지개

첫 시작은 2002년 발표된, 박테리아에서 무지개를 발견한 한 연구였습니다.

칼텍의 생물학 및 생물공학 교수였던 마이클 엘로위츠와 그의 동료들은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한 E. 콜리의 변이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박테리아에 두 가지 유전자를 집어 넣었습니다. 하나는 청록색(cyan) 형광 단백질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란색 형광 단백질이었습니다. 이 박테리아들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이들이 모두 같은 양의 형광 단백질을 만들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각 박테리아에서 청록색과 노랑색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도 매우 컸습니다. 어떤 박테리아는 노란색으로 더 빛났고, 어떤 박테리아는 청록색으로 더 빛났습니다. 박테리아마다 그 비율은 모두 달랐기에, 이들은 거의 무작위의 색을 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엘로위츠와 그의 연구팀은 이 무지개가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우연한 작용의 명백한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분자 수준의 우연”을 볼 수 있게된 것입니다.

이 연구 이후, 과학자들은 고유의 우연성이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일한 세포가 남다른 후손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같은 세포들이 특정한 신호에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 또 조직을 형성할 때 어떻게 다른 패턴이 만들어지는지 등을 연구했습니다. 세포들은 분명 다양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연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별 세포 수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다세포 생물에서는 어쩌면 그 효과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연이 실제로 고등동물에게도 영향을 주는지, 곧 발달 단계의 우연이 성체가 된 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다수의 개체를 준비하고 이들을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 성장시켜야 하는 매우 정밀한 실험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 이런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초파리들이 공간지각 실험에서 전혀 다른 선호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복제된 물고기들 또한 환경이 거의 동일했음에도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물고기들처럼 다양한 특징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실험은 발달단계의 임의성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음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이들 사이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차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우리가 미처 통제하지 못한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첼의 말입니다.

하지만 지난 12월 biorxiv.org 에 올라온 새로운 연구는 포유류의 유전자 발현에서 우연의 효과를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이들은 아홉띠 아르마딜로를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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