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일까? 철학자 필립 고프의 “범심론(Panpsychism)”
2020년 1월 31일  |  By:   |  과학  |  No Comment

과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의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필립 고프는 “갈릴레오의 오류: 의식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기초(Galileo’s Error: Foundations for a New Science of Consciousness)에서 다소 극단적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곧 의식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범심론(panpsychism)”이라 불리는 이론으로 고프는 이 이론의 역사와 일반적인 반론(“말도 안돼!”와 같은)에 대한 답, 그리고 왜 그가 범신론이 가장 그럴듯한 답이라 생각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가레쓰 쿡과의 일문일답입니다.

Q: 범심론을 좀 쉬운 말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도로 진화한 생명체의 뇌만이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곧, 의식은 우주의 극히 일부에만 존재하며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극히 최근에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심론은 의식이 우주 전체에 존재하며 우주의 근본적 특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말그대로 모든 것이 똑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자나 쿼크와 같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극히 단순한 형태의 경험을 가질겁니다. 반대로 인간이나 동물의 뇌는 매우 복잡한 경험을 가지지만, 그 경험은 뇌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겪는 경험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말하는 “의식”이 어떤 뜻인지를 명확히 해야겠지요. 사실 이 용어는 매우 모호한 용어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용어가 자각 능력이나 자신의 존재를 반추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다른 동물이나 물질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꺼려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나는 의식이란 그저 즐거움, 고통, 시각적 청각적 경험 등의 경험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매우 다양한고 복잡한 경험을 합니다. 말은 그보다는 덜하지요. 쥐는 말보다도 덜할겁니다. 더 단순한 생명체일수록 더 단순한 경험을 가집니다. 아마 어떤 수준에 이르면, 그저 불이 꺼지는 것 만으로 의식은 사라질겁니다. 이런 의식 축소의 연속성이 생명체를 넘어 물질 수준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곧 근본 입자들 까지도 자신의 극히 단순한 본질을 반영하는 극도로 단순한 경험을 가질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적어도 어떤 일관성있는 주장일 가질겁니다. 범심론자들은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 당신은 의식이 연구된 방식에 있어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범심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A: 뇌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크게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잡한 전기화학적 신호가 어떻게 색깔, 소리, 냄새, 맛 등 자신만이 아는 주관적 세상을 만들어내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말하는 외면의 물질과 내면에서 바라보는 자신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도 전적으로 미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은 우리가 뇌를 연구하던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의식의 문제는 우리가 과학 혁명을 시작하던 당시 과학을 설계했던 바로 그 방식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과학 혁명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갈릴레오가 새로운 과학의 도구로 수학을 택했던 것입니다. 곧, 새로운 과학은 순수하게 양(quantity)적인 언어로 기술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의식을 이런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식은 전적으로 질(quality)과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붉은 색에 대한 경험이나 꽃의 향기, 민트의 맛 등을 생각해봅시다. 이런 질적 느낌은 물리학이 사용하는 양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즉, 갈릴레오는 의식을 과학의 외부에 두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결정 이후,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은 수학으로 기술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의식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도, 기존의 과학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물론 물리학이 그 방법으로 우리 우주를 설명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언젠가는 이 방법으로 우리의 의식 조차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이 과학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리학은 믿을 수 없을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공은 처음부터 의식의 문제를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갈렐레오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로 와서 물리학을 이용해 의식을 설명하려는 이들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겁니다. “음, 그건 안될거에요. 나는 질이 아닌 양을 다루도록 과학을 시작했습니다.”

Q: 그럼 범심론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나요?

A: 범심론은 물리학이 물질이란 무엇인가에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아마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겁니다. 물리학 교과서에는 공간과 시간, 물질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이 쓰여있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철학자들은 물리학의 그 풍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이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한 것일뿐, 물질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은 물질이 질량과 전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두 성질은 인력, 척력, 관성력 등 물질의 행동을 완벽하게 정의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물질의 고유한 본질이라 부르는, 곧 물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물리학은 답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과학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겁니다. 범심론자들은 이 구멍에 의식이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이고요. 범심론자에게 의식은 물질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직 물질만이 존재할 뿐,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영적인 현상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묘사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은 “외부에서의 관찰”을 통해 물질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며, “내부에서의 관찰”은 의식의 형태를 띄는, 자연의 고유한 특성이 됩니다.

이런 관점을 통해 우리는 아름다울정도로 단순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의식을 과학의 세계관에 포함시킬 수 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사실과, 과힉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외부에서의 관찰 결과를 결합시킬 수 있습니다.

Q: 이 주장에 대한 가장 흔한 반론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당신의 답은요?

A: 물론 가장 흔한 반응은 “미쳤군요!” 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과학이론이 당시의 상식에는 미친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매우 빨리 움직일 경우 시간이 느려진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나 우리 조상이 유인원이라는 찰스 다윈의 이론이 그랬습니다. 이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당대의 문화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그 이론이 가진 설명력의 크기입니다. 범심론은 의식의 신비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며, 기존의 방법들이 처한 고난도의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Q: 범심론을 검증할 수 있는 어떤 시나리오가 있을까요?

A: 의식의 과학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바로 의식은 관찰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자 하나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전자의 내부를 본다고해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머리 속을 본다고 해서 그들의 감정이나 경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유는 관찰이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의 의식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묻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경험을 직접 느낄 수는 없지만 당신이 지금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만약 뇌과학자라면, 당신의 머리속을 영상장치로 보면서 당신이 어떤 느낌이나 경험을 말할 때 어느 신경이 활성화되는지를 보겠지요. 이런 방식으로, 과학자들은 특정한 뇌 영역의 활동을 특정한 경험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뇌의 각 부위와 배고픔, 시각적 경험, 즐거움, 고통, 불안 등의 연관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하지만 이 자체는 의식의 이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식의 과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왜 그러한 연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왜 시상하부는 배고픔과 관련이 있을까? 왜 그래야하나?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우리는 검증불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의식이 관찰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곧, 철학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예는, 우리가 의식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과 철학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과학은 뇌의 활동과 경험 사이의 관계를 알려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철학적 이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유일한 이론이 범심론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Q: 어떻게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A: 내가 철학을 공부하던 당시, 우리는 의식에 대해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바로 의식은 기존의 과학적 용어로 설명가능하거나, 아니면 과학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마법적인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두가지 접근이 모두 별 가망이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과학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야만 했지요. 이 과정에서 범심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Gareth Cook)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