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 좌파 몰락의 신호탄? 마침표?
지난주 영국 총선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과 브렉시트(Brexit) 찬성파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정통 좌파’ 지도자 제레미 코빈 당대표가 이끄는 노동당 지도부는 변명의 여지 없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나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이번 총선은 존슨 총리의 무리수처럼 보였으며, 노동당으로서는 9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올 좋은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국민의 투표가 아니라 당내에서 테레사 메이 총리의 자리를 이어받아 총리가 된 존슨 총리는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올해 10월 31일까지 유럽연합을 떠나겠다고 장담하며 총리가 됐지만,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브렉시트 이행안부터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이들도 존슨 총리의 정치력에 실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하겠다며 의회를 해산한 존슨 총리에게 노동당은 참패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노동당의 표밭으로 여겨진 영국 북부의 노동자 계층이 보수당에 표를 줬고, 노동당은 1935년 이후 가장 적은 의석을 얻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20세기 초부터 노동당에 60% 넘는, 때로는 70%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던 지역구들이 “형편없는 정당(nasty party)” 취급하던 보수당에 의석을 준 겁니다.
노동당의 참패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과거에 노동당 집권을 가능하게 해준 이른바 ‘중도-좌파 연합’이 구조적으로 와해했습니다. 유권자 지형과 선거 구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했음에도 코빈 당대표는 전략적으로 최악의 악수를 잇달아 뒀습니다.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절 선거 전략의 기본 중의 기본은 폭넓은 계급의 연대였습니다. 당명이 말해주듯 노동당의 지지 기반을 이루는 건 폭넓은 서민,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여기에 중산층에서도 노동당은 대체로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대학생, 교사,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노동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죠. 전통적인 기준으로 분류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두 계급은 문화적으로 보면 분명 선호와 지향이 달랐지만, 경제적으로는 (노동당을 지지할 만한) 비슷한 유인 동기가 있었습니다. 높은 임금을 받고 강력한 노조를 유지하는 것이 이들에게 중요했죠. 자녀에게 필요한 의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또 자신이 노후 걱정 없이 은퇴하려면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경제 문제가 주요 쟁점인 선거를 치르는 한 노동당에는 늘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필승 매뉴얼’이 있던 셈입니다. 복지국가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 노동자-서민-중산층을 아우르는 지지 세력의 표를 안정적으로 얻어 의석을 유지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난 10년 사이 유권자 지형과 선거 구도가 변했습니다. 갑자기 새로운 영국 사람이 나타난 건 아닙니다. 대신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가 바뀌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슈보다 이른바 ‘문화 전쟁’으로 불리는 삶의 방식과 정체성에 관한 이슈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민자, 외국인에 대한 정책이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더니, 아예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자며 브렉시트를 놓고 국민투표를 치렀습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노동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은 뚜렷하게 둘로 갈렸습니다.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의 진보 성향 중산층들은 이민자를 포용하는 정책을 선호했으며, 유럽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주로 영국 북부의 노동자 계층은 특히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컸고, 유럽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에 표를 준 노동자 계급은 대체로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고, 그전에는 오랫동안 노동당을 지지해온 이들입니다.
핵심적인 지지 기반이 반으로 쪼개진 상황에서 노동당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당 지도부가 명백한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진보 성향이 뚜렷한 유권자들은 녹색당과 같은 대안 정당으로 이탈했습니다. 반대로 노동자-서민 유권자들은 당 지도부가 진보 엘리트주의에 빠진 나머지 노동당의 근간인 자신들의 가치관, 삶의 방식을 무시한다고 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10년 전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보수당이나 브렉시트당 같은 신생 극우 정당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방식, 가치관, 태도를 아우르는 의미에서 ‘문화’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면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건 사민주의 계열 정당들입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을 막론하고 영국 노동당처럼 그동안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손을 잡은 중도좌파 연합의 지지에 기대던 정당들이 일제히 몰락했거나 몰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레미 코빈은 난관을 타개하겠다며 전통적인 좌파의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경제 부문에서 좌파 관점이 짙은 정책을 강화하면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코빈 당대표는 근래 들어 찾기 어려운 급진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몇몇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노동당의 인기도 어느 정도 다시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가 분명히 보여주듯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사회주의(사민주의) 정책으로 치유하자”는 코빈의 호소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영국 유권자들은 노동당의 집권을 꺼리는 두 번째 이유로 노동당이 “정부 지출을 대책 없이 늘려 국가 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까 봐 우려된다”고 답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뭐였을까요? “제레미 코빈이 총리가 되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급진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반감도 없지 않겠지만, 더 큰 반감은 앞서 언급한 문화적인 부분입니다. 제레미 코빈은 오랫동안 영국이란 나라와 영국 사회의 문제점, 국제 정세 등에 관해 대단히 일관적인 견해를 유지해온 정치인입니다. 영국 사회는 근본적인 불평등과 차별이 뿌리 깊이 밴 곳이자,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사회로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깊이 박힌 정치인이며, 북아일랜드에서 무장 투쟁을 벌이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나 이란 정권에 연대를 표시해왔습니다. 우고 차베스와 같은 독재자들과는 잊을 만하면 공고한 연대를 과시했지만, 노동당내에서 선을 넘은 반이스라엘, 반유대인 구호가 난무할 때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를 강력히 진압하겠다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최근 런던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코빈은 테러의 원인을 영국의 잘못된 외교정책에서 찾았습니다.
런던 시장이자 무슬림인 사디크 칸 시장은 총선 직후 노동당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말 몰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코빈 대표의 노동당은 영국인들에게 너무 인기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으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 선거 패배의 책임과 원인은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닙니다. 반유대주의 구호를 제때 철저히 봉쇄하지 못한 것도, 정책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고 국민들에게 집권 능력을 호소하는 데 실패한 것도 결국 우리 당의 잘못입니다. 예전에는 노동당을 ‘나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여기던 많은 지지자가 이탈하고 지지층 전체가 등을 돌렸습니다. 지금 노동당은 누구도 대표하지 못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진보 진영에서도 코빈을 향해 찬사를 보내는 전문가들이 꽤 많았습니다. 코빈이 내세운 정책, 좌파의 부활을 미국에 이식하고 싶은 바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 총선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무책임한 찬사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보리스 존슨은 포퓰리스트입니다. 코빈의 노동당이 철 지난 급진적인 좌파의 이상을 노래하는 사이 존슨의 보수당은 브렉시트를 통한 문화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데 그치지 않고, 학교와 경찰 등 공권력에 예산을 더 쓰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기민한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인 존슨은 선거에서 대승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던 셈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이번 영국 총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리스 존슨 총리보다 정치적인 ‘단수’가 높은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도 명백한 포퓰리스트인 만큼, 노동당의 실패한 전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겁니다. 진보적인 의제를 던져 지지층을 결집하는 건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다수 미국인이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는 의제와 주장을 던지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이상에 함몰돼 미국인의 가치관, 미국적인 삶의 방식을 대놓고 거스르거나 업신여기는 듯한 주장을 폈다가는 지금 제레미 코빈의 노동당이 처한 현실이 내년 미국 민주당의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애틀란틱, Yascha Mo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