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성차를 부정하는 이들 – 지나 리폰의 “The Gendered Brain”에 대해 (1/2)
2019년 5월 1일  |  By:   |  과학  |  No Comment

어느날 네이처 지의 표지에 이런 말이 써 있었다고 해봅시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그릇된 믿음”. 지난 15-20년 동안의 뇌 기능에 대한 성차의 영향에 관한 연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최근 네이처에 실린 한 기사의 제목을 보고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로 “뇌성차별주의: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그릇된 믿음”이라는 제목과 “뇌의 남녀 차이를 찾는 것은 나쁜 연구의 전형이다”라는 부제였습니다.

이 기사는 알고보니 뇌의 성차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파헤친다고 주장하는 책에 대해 맞장구를 치는 내용의 서평이었습니다. 물론 네이처 편집자의 승인 하에 올라온 글이지요. 아이러니한 점은 이틀도 지나지 않나 네이처는 이 책의 내용에 반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실린 “남자와 여자의 뇌 차이를 밝히는 연구”와 란셋 뉴럴러지에 실린 “신경 장애에 있어서의 성차”라는 제목의 연구를 실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과학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지난 수십 년 간 뇌과학 분야는 다른 대부분의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크지 않다는 가정하에 남자의 뇌를 주로 연구했습니다. 나 또한 처음 뇌 연구를 시작할 때 같은 경로를 밟았습니다.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근본적이지 않을 것이라, 곧 뇌의 구조나 기능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차는 보통 여성의 특징으로 여겨진 성호르몬의 변화와 “문화”라 불리는 경험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 간주되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뇌의 비밀을 밝히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다소 이상한 가정이었지만, 어쨌든 그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뇌과학자들은 그 가정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특히 뇌질환에 대한 이해하에 있어 여성에게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는 처음으로 뇌의 성차를 주제로 삼았던 논문지인 뇌과학연구(Journal of Neuroscience Research)의 2017년 1/2월호에 잘 나와있습니다. 이때 실린 70편의 논문은 누구나 접속해 읽어볼 수 있습니다.

통계적 용어로 ‘효과 크기(effect size)’는 특정한 변수의 영향력을 알려주는 값입니다. 어떤 이들은 뇌의 성차가 매우 적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별의 차이가 알려주는 평균적인 효과 크기는 다른 뇌과학의 주요 변수가 가진 효과 크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누구나 정직하게 데이터를 살펴본다면, 생물학적 성은 포유류의 뇌 기능에 있어 세포/유전자 수준을 포함한 모든 수준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 또한 여기에 포함됩니다.

포유류의 뇌는 성별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 기관입니다. 뇌의 기능과 기능장애에 성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뇌과학의 거의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성이 크건 작건 다양한 방식으로 남자와 여자의 뇌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적어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은 이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뇌과학 외에도 생물학에 있어 성차를 연구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의무로 여겨지고 있으며, 2016년 1월 25일 미국립보건원(NIH)은 모든 연구에 있어 여성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라는 “양성균형 규정(SABV)”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과학 발전에 있어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성은 건강과 질병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NIH는 연구자들이 모든 연구단계에서 성을 생물학적 변수로 다룰 것을 요구한다” – @NIH January 8, 2019

그러나 뇌 기능의 성차를 보여주는 연구가 증가할수록 뇌에 성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에 의한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습니다.

1950년대 초반, 시몬느 드 보바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뒤, 존스 홉킨스의 존 머니는 언어학의 용어였던 “젠더”를 생물학적 의미를 가진 “성(sex)”대신 사용하기 시작했고, 여자와 남자의 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믿음이 미국의 주류적 생각이 되었습니다. 다른 의견을 말했다가는 큰 곤욕을 치를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성차에 대한 연구를 “반미국적인 미친 생각”이라 불렀습니다. 2000년대 초반, 아직 테뉴어를 받지 못했던 나에게 선배들은 성차를 연구주제로 삼을 경우 경력을 망치기 쉽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나 리폰의 이번 책은 성차 연구를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 큰 이들이 이런 문화적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 분야에 지식이 있는 이라면 이런 종류의 책에 진지한 서평을 쓰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 책은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편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차 반대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전략은 인간에서 뉴런 하나에 이르는 수많은 연구들을 우스꽝스럽게 편향되고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른 전략들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연구에 대해 문제점을 만들어내거나 확대해석하는 것, 자신들이 선호하는 연구의 치명적인 문제를 무시하는 것, 동물 연구가 말해주는 포유류의 뇌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불편한 사실들은 각주에 숨기는 것, 뇌의 생물학적 성차를 부정하는 가능한 모든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척 하는 것, 의학적 측면에서 성차를 이해하는 것이 이롭다고 말하는 척 하면서도 이 문제가 의학에서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는 하나도 들지 않는 것, “뇌가소성”을 성차를 부정할 수 있는 마법의 부적으로 사용하는 것, “스테레오타입” 연구들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제시하는 것, 오늘날의 뇌과학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19세기의 논쟁을 다시 불러오는 것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편견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감히 잠재적인 성차를 연구하려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성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비방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뇌과학을 전혀 모르거나, 아주 조금 아는 이들에게는 잘 먹혀듭니다. 다음은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들입니다.

리폰은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은 아주 끔찍한 연구를 매우 칭찬합니다. (반면, 그녀는 성차에 관한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문제삼습니다.) 바로 2015년 PNAS 에 실린 다프나 조엘의 연구로 여자와 남자의 구조적 뇌를 분석한 것으로, 평균적으로 성에 따라 많은 수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연구입니다. 그러나 조엘의 연구팀은 새로운 분석기법을 이용해 개인으로써의 남성과 여성은 거의 랜덤한 정도로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의 “모자이크”라는 사실은 이미 70년대 뇌과학 계에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남성적, 여성적 특성의 모자이크에 의해 평균적으로 두 성을 구분할 수 없으며, 곧 두 성이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해하는 성차가 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볼때 이같은 결론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주장을 할 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논문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방법(method)’섹션에서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내적 일관성”이라 이름붙인 가장 중요한 측정 변수를 그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도록 정의했습니다. 그 논문은 그들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실상 결과가 조작된 것과 마찬가지였고, 이후 PNAS 에는 이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세 건의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뉴멕시코 대학의 마르코 델 귀디체는 조엘의 연구팀이 사용한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하고도 제대로된 방법을 이용할 경우 정반대의 결과, 곧 개인으로써의 남성과 여성을 69-77% 구분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뇌의 구조와 기능, 성격을 고려한 다른 연구팀은 더 높은 확률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했습니다.

2부로

(퀼레, Larry Ca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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