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가설 논문이 겪은 일(2/2)
10월 13일, 생명줄이 나타났습니다. 저명한 온라인 저널인 뉴욕 저널 오브 매스매틱스(New York Journal of Mathematics)의 편집자 이고르 리빈이 내게 연락해 온 것입니다. 그는 내 다른 공저자에게 이 논문의 이야기를 들었고, 아카이브의 논문을 읽은 뒤 그 논문을 발표에 맞게 수정해 제출할 생각이 있는지 내게 물었습니다. 리빈은 NYJM의 편집장인 마크 스타인버거 역시 이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있으며 이 논문이 빠른 시간안에 동료들의 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단독 저자로 논문을 수정해 제출했고, 심사위원들의 긍정적인 심사를 받으며 몇 번의 수정을 거친 후 마침내 2017년 11월 6일, 스타인버거의 출판 승인을 받았습니다. 긴 역정 끝에 나는 마침내 논문의 링크를 여기에 관심을 보인 동료들에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일 뒤, 그 논문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다시 며칠 뒤, 전혀 다른 논문이 같은 권, 같은 페이지 (NYJM 23권, 1641 페이지) 내 논문이 있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 일은 NYJM의 편집위원인 벤슨 파브가 바로 아미 윌킨슨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NYJM이 내 논문을 실은 것을 발견한 벤슨 파브가 스타인버거에게 이 논문을 당장 내리라는 분노의 이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그는 이메일에서 “리빈은 선동적인 주장으로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의 사람으로 잘 알려져”있으며, “나의 장인은 유명한 통계학자이며, 이 말도 안되는 논문의 수많은 헛점을 이미 지적한 바”있다고 썼고, 이 논문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며”, “의사과학”일 뿐 아니라, “쓰레기”같은 논문이라 말하며, NYJM이 이 논문을 실음으로써 리빈은 “정치적으로 순수해야할 과학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썼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른채로, 11월 14일 스타인버거에게 내 논문이 어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나는 이 논문 삭제가 영구적인 것인지 물었고, 이 삭제가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논문을 저널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은 다른 어느 저널에도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약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약속을 할 수 없어졌고, 이제 어느 저널에도 이 논문을 제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스타인버거는 그날 늦게 답을 보냈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위원회의 절반이 그에게 이 논문을 철회하지 않으면 모두 사퇴할 것이며, 그가 25년전 만든 이“저널을 공격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과학적 유산이 담긴 이 저널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항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망한 저널에 실린 논문은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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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은 내 동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어떤 과학 분야에서도 출판된 논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출판을 거절당하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논문을 철회하는 일도, 적절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충분한 설명과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논문이 사라진 일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규칙을 따라 심사를 통과하고 발표된 논문이 저자와의 어떤 상의도 없이, 저널의 어떤 입장 발표도 없이 갑자기 다른 논문으로 대체된다면, 온라인 저널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그동안 윌킨슨 교수는 자신의 SNS를 이용해 인텔리전서와 NYJM의 편집자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4월,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리빈과의 SNS 관계를 끊지 않으면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2월 초, 나의 한 동료는 내게 파브와 윌킨슨이 마침 시카고 대학의 교수이니 이들의 행동에 대한 문제를 시카고 대학의 총장인 로버트 짐머에게 제기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지난 해 10월, 뉴욕타임스의 보수적인 컬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는 짐머를 “미국 최고의 대학 총장”이라 치켜세운 바 있습니다. 내가 짐머에게 메일을 쓴 일주일 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시카고를 자유로운 질의와 표현 원칙에 대한 대학 총장의 약속을 바탕으로 “표연의 자유 대학”이라 불렀습니다. 게다가 짐머 교수는 수학자로, 내 변이 가설 연구를 성공적으로 억누르고 학문의 자유 원칙을 마음껏 짓밟은 부부 교수인 파브와 윌킨슨과 세부 전공까지도 같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나는 짐머 교수에게 수학자대 수학자로서 그의 두 동료가 저지른 다섯 가지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4월 말이 되어서야 받은 공식 답변은 부학장에게서 온 것으로, 그들은 “학문적 부정”의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고, 따라서 “당신의 문제제기를 기각한다”는 짧은 내용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학문적 부정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전문가적이지 못한, 동료답지 못한,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이 내 전문가로서의 명성과 시카고 대학의 명성에 해를 입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내가 총장에게 다시 항의서한을 보내자, 나는 부학장에게 두 번째 공식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는 파브와 윌킨슨은 “그 논문의 출판을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의 학문적 자유를 실천”했을 뿐이며, 그들의 행위는 “비윤리적이거나 비전문가적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곧, 내가 그들의 학문적 자유를 침범한 것이지, 그들이 나의 학문적 자유를 침범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학장은 나의 문제는 그 논문을 삭제한 저널 편집장과의 문제일 뿐, 시카고 대학과는 무관하다고 말을 맺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대학이란 그저 허울 좋은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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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수학계를 비롯한 이공계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나는 많은 수학과 학부 여학생들을 지도했고 대학원생들에게 박사학위를 주었으며, 학장으로 재직할 시 여성 후보자들을 특별하게 대했습니다. 나는 워싱턴의 미국립과학재단 성 및 인종 다양성 위원회에 두 번이나 초청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성평등을 위한 활동의 중요성과 학계의 진보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공정함과 평등을 위해 합리적인 연구를 금지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논리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그 주장이 가져올 여파가 아무리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그 주장 자체를 가지고 판단해야하며, 그 주장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 또는 정치적으로 얼마나 유용한지를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처음에는 하버드였고, 다음은 구글이었으며, 이제 두 과학 저널의 편집장이, 그리고 국립과학재단이, 또 출판사 스프링거가 모두 논쟁적인 주장을 억누르려는 학계 극좌파의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이 다음은 누가 어떤 죄목으로 지목될까요? 시카고 대학이 한 것처럼 따돌림과 검열을 ‘옹호’와 ‘학문적 자유’로 포장한다면, 이제 논리적 사고와 실증주의 마저도 학문적 선택으로 격하될 것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직접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적 호기심을 키우고, 가장 의심이 많은 이들 조차도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신선한 사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검열을 막아야 하며, 성차나 특히 변이 가설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마음껏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5년 시카고 대학 표현의 자유 위원회는 이러한 원칙을 바로 로버트 짐머 교수의 승인 하에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대학은 어떤 아이디어가 대학 공동체의 일부 또는 심지어 대부분의 이들에게 공격적이거나, 현명하지 못하거나, 부도덕하거나,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이를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약속합니다.
(퀼레, Ted 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