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2/2)
2018년 6월 1일  |  By:   |  과학  |  No Comment

다른 연구들도 있습니다. 유전학자 다니엘 포스투마는 7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지능 검사 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20개 이상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습니다.

지능 검사와 학습 기간이 그 사람의 양육에 영향을 받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검사 결과나 시간이 또한 그 사람의 행동이나 인지능력의 어떤 측면과 관계된 무언가를 측정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죠. 그리고 모든 유전자 변이의 정도는 집단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즉, 서로 다른 집단이 동일한 유전자 변이를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행동과 인지능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효과 또한 집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인류가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너무 최근이라 자연선택이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 시간이 없었고, 따라서 집단 간의 생물학적 차이는 매우 작다는 이야기를 듣게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동아시아인, 유럽인, 서아프리카인, 호주인은 최근 다시 교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거의 4만 년 이상을 분리되어 있었고 이는 진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실제로 오거스틴 콩의 아이슬란드 연구는 지난 100년 사이에 학습 기간을 예측하게 만드는 유전자 변이에 대한 유의미한 자연선택이 있었음을 보였습니다.

유전학자와 인류학자가 인간 집단의 차이에 대한 낡은 합의만을 반복하는 것이 왜 위험한 일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그 빈 공간을 어떤 종류의 주장들이 채우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에서 과학 기자로 오래 일했던 니콜라스 웨이드는 2014년 출간한 “불편한 유산: 유전자, 인종, 인간의 역사(A Troublesome Inheritance: Genes, Races and Human History)”에서 최근의 연구결과들이 인간 집단 간의 차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고 정확히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 연구들이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을 유전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근거가 불확실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웨이드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은 지난 수천 년 간 유라시아 인들이 겪었던 고된 노동에 의한 자연선택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인류학자 헨리 하펜딩의 주장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나를 포함한 139명의 유전학자들은 웨이드의 책에 나타난 인종주의적 스테레오타입에 어떠한 유전학적 근거도 없음을 지적하는 항의 서한을 뉴욕타임스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잘 알려진 예는 1953년 DNA를 공동 발견한 제임스 왓슨입니다. 그는 2007년, 아프리카인이 유럽인에 비해 낮은 지능을 가지게 만드는 유전적 요인이 있음을 암시하는 연구들이 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주장을 인터뷰에서 이야기함으로써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직에서 강제로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뒤, 왓슨은 나와 내 동료 유전학자 베스 샤피로에게 “당신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영리한지를 언제쯤 밝힐 셈이오?” 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학자로 길러지는 자연선택을 겪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전적 장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동아시아 학생들은 고대 중국 사회에서 권력에 복종하는 자연선택을 겪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그와 만났을때, 왓슨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했으며, 지금 그런 입장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샤피로는 자신도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왓슨과 웨이드의 주장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학계가 인구 집단 간의 평균적인 유전적 차이를 비정상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그들의 판단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진실에서 출발해 실제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그저 인종주의적 스테레오타입에 맞는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그들은 학계가 혐오 발언이나 낡은 인종주의적 헛소리에 혹시라도 근거를 제공하게 될까봐 조심하고 있는 그 틈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올바른 상식을 가진 과학자들이 이 분야에서 발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집단간의 유전적 차이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중의 신뢰를 잃을 것이며 오늘날 만연해 있는 전문가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게될 것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 논의를 과학자들이 회피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다루어질 어떤 내용보다도 더 사악한 내용의 유사과학이 이 분야를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에 대한 사실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16년 우리 실험실은 인간 조상의 유전자를 분석해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백인”이 아주 먼 과거부터 존재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였습니다. “백인”은 10,000년 전 거주하던 네 인구 집단이 섞인 것이며, 이들은 오늘날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의 차이만큼 차이가 나는 다른 집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유전학이 인간의 수많은 특징이 유전적 변이에 영향을 받으며, 그 특징은 또한 평균적으로 인구 집단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밝힐 때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적어도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바보같은 일이며 말도 안되는 대응일 것입니다.

나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처럼 대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1억년 이상의 시간 동안 진화와 적응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인구 집단 간의 차이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큽니다. 남성과 여성은 염색체 하나를 아예 다른 것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유전적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해부학적 차이 외에도, 남자는 평균적으로 더 덩치가 크고 힘이 셉니다. (사회적 기대나 양육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는 이견이 있지만, 성격과 행동에도 유전자에 의한 평균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런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고 있나요? 그 대답은 명백합니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에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사실에 무관하게 두 성이 같은 자유와 기회를 가진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상에 현실이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명백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목표는 분명합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경우에 비해 우리가 각 인구 집단 사이에서 발견하게 될 차이는 그보다 훨씬 덜 뚜렷할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모든 인간에 대해, 그들이 어떤 유전자를 받았건 간에 그들을 동일하게 대해야 하며 또한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개인 간에 나타나는 수많은 차이에 비해 집단 간에 나타나는 평균적인 차이는 훨씬 더 적으며 따라서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과학이 어떤 사실을 밝혀내든, 그 결과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우리가 이를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저 인구 집단 간에는 어떠한 유전적 차이도 없다는 주장만을 반복하는 것은 인종주의자가 유전학의 주인이 되는,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1부로

(뉴욕타임스, David 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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