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버블을 넘어서 (6/7)
2018년 4월 15일  |  By:   |  IT, 경제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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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지금 나오는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 정말로 현실에서 이뤄지고, 앞으로 우리 삶은 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블록체인이 미래 디지털 인프라의 바탕을 이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미래에서 분산원장, 암호 토큰 경제가 어떤 식으로 지금의 테크 대기업들의 아성을 무너뜨릴까요? 유니온스퀘어벤처스의 파트너 가운데 한 명인 브래드 번햄은 지난해 여러 차례 규제를 어겨 구설에 오르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테크 기업 우버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우버는 기본적으로 운전해서 태워주는 사람과 타고 가는 사람을 서로 조건에 맞춰 연결해주는 플랫폼 이상도 이하도 아녜요. 물론 대단히 혁명적이었죠. 처음에는 과연 운전자가 내가 있는 곳까지 올 것인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고, 지도와 GPS의 정확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죠. 어쨌든 우버의 큰 성공에 지도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은 꼭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버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막 이름을 알리고 성장하기 시작할 때 시장 전체로 보면 기회를 선점한 기업, 혹은 1등 기업으로 소비자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버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질수록 운전자도 더 많이 우버에 등록하게 되고, 다시 차량이 충분히 많아 대기시간이 짧아지니 승객이 더 많이 몰리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겁니다. 일단 우버 앱을 깔고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해두고 나면 우버를 이용하는 건 무척 편리한 반면 다른 이동수단을 택하는 건 상대적으로 훨씬 불편해집니다. 게다가 검색해보면 주변에 늘 대기 차량이 많이 있는 서비스는 우버밖에 없을 때가 많죠. 이른바 전환비용이 엄청나게 커진 겁니다.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CEO가 인간적으로 되먹지 못한 사람이라는 게 밝혀져도, 또 이론적으로는 사람들이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상황을 선호할 것만 같아도 실제로는 우버 홀로 승승장구하게 되는 겁니다. 번햄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혁신적인 매칭 서비스는 점점 혁신의 요소를 잃어 갑니다.”

블록체인이 제안하는 해법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프로토콜 랩스 같은 단체가 기존의 서비스를 활용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추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GPS가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짚어주고, 그 위치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해준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토콜은 아주 간단한 요청을 수행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데 저기까지 가고 싶다는 요청이죠. 먼저 이 프로토콜은 분산원장에 기록된 과거 이동 경로, 신용카드 사용 내역, 자주 찾는 장소 등 나에 관한 모든 메타데이터를 다 들여다볼 겁니다. 바로 우버나 아마존이 열심히 들여다보고 분석해 갖은 맞춤형 제안, 최적화 서비스를 하는 데 바탕이 되는 데이터이기도 하죠. 이 프로토콜을 논의의 편의를 위해 교통용 프로토콜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교통용 프로토콜에서는 인터넷에 어디에서 어디까지 누가 가고 싶다는 요청을 올릴 때 이 요청이 완전히 공개됩니다. 그 요청에 답하는 서비스와 앱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공짜로 그렇게 할 수 있죠. 시 정부는 대중교통 앱을 만든 뒤 택시 기사들에게 이 앱을 통해 승객을 찾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자동차에 국한할 필요가 없죠. 자전거 공유 서비스도 이 요청을 처리할 수도 있고, 인력거 서비스라고 시장에 뛰어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제 개발자들은 교통용 프로토콜을 이용해 종합 서비스 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고 싶다는 요청을 올리면 가능한 모든 선택지가 나오죠. 교통용 프로토콜은 단일 사업자가 구축한 배타적인 네트워크 안에서만 차량과 승객을 매칭해주는 프로토콜이 아닙니다. 우버 앱을 열고 우버 운전자만 볼 수 있는 요청을 올리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셈입니다. 교통용 프로토콜에 매디슨, 67번가에서 유니온 스퀘어까지 가고 싶다는 요청을 올리면 바로 우버 차량을 부르는 것과 달리 수많은 방안이 나올 겁니다. 뉴욕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 막히는 길을 차 타고 가느니) 6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훨씬 싸고 빠르며 편리하다”는 메시지를 보낼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우버와 리프트가 차량공유 서비스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 교통용 프로토콜은 무엇을 장점으로 내세워 경쟁해야 할까요? 바로 여기서 (암호) 토큰이 등장합니다. 교통용 프로토콜 기반 종합 서비스를 일찌감치 이용하는 사람들은 (암호화폐인) 교통 토큰을 받습니다. 토큰은 서비스를 사는 데 쓸 수도 있고, 현실 화폐와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 교통 서비스가 인기가 커질수록 토큰을 쉽게 나눠주지 않아 토큰이 귀해질 겁니다. 초기에는 스마트폰용 교통 서비스 앱을 만든 개발자들만 해도 꽤 많은 토큰을 받겠죠. 우버 운전자도 (우버 앱 외에) 블록체인 교통용 프로토콜 서비스를 보조로 이용해 승객을 태우고 영업을 하면 서비스를 이용한 보상으로 토큰을 받습니다. 즉 이미 잘 돌아가는 우버나 리프트보다 운전자를 찾기도 어렵고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이를 감수하고 서비스를 써보는 초기 이용자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토큰을 받는 겁니다.

교통용 프로토콜은 끝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성장을 거듭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투기 세력이 꼬입니다. 이들은 토큰을 정해진 가치보다 웃돈을 주고라도 사들여 프로토콜의 수요를 높입니다. 가치가 부풀려지면 더 많은 개발자, 운전자, 승객들이 서비스로 모여들죠. 서비스가 전체적으로 기대했던 대로 운영된다면 다양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겠지만, 동시에 훨씬 공정한 시장이 형성되는 셈입니다. 한 분야의 경제적 가치를 대기업 한두 군데가 사실상 독점하는 대신, 교통용 프로토콜을 활용한 초기 개발자, 고객이 사용하기 편리한 앱과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 그리고 일찌감치 서비스를 받아들여 확산하는 데 기여한 운전자와 승객, 심지어 발 빠르게 투자에 나서 이득을 본 이들까지 실로 다양한 이들이 경제적 가치를 나눠 가지게 됩니다.

토큰 경제에는 기존의 경제적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던, 주주가 중심이 되는 모델이 아니라 원장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거나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이 여기에 해당) 프로토콜에 맞춰 앱을 만들거나, 아니면 그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프로토콜을 개선하는 행위로 간주돼 가치를 창출하게 됩니다. 블록체인 토큰 경제에서는 그래서 창업주, 투자자, 고객 등의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모든 것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모델에서 탈피해 다양한 주체가 상생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승자독식이 아닌 이상 투자에 대한 보상이 명확하지 않아 초기에 자본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해준 이들이 바로 초기에 토큰 가격이 급등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투자 혹은 투기에 나서 돈을 몰아준 이들입니다. 이들이 없으면 서비스를 개발할 수도 없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딕슨은 말합니다.

“1990년대 인터넷 버블이 참 엄청났죠. 그때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수많은 인터넷 인프라가 만들어진 것도 그때의 일이니까요. 지금 정확히 같은 효과가 각각의 애플리케이션 단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뉴욕타임스, Steven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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