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품과 문학을 번역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2/2)
2018년 1월 23일  |  By:   |  문화, 한국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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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지방 도시였던 광주의 인구는 약 60만 명.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씨도 유명한 소설가로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강은 지난 10년간 아버지가 받았던 많은 상을 대를 이어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죠. 또한, 한강의 오빠와 남동생도 모두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며 학교 교사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한강의 가족은 수도 없이 사는 곳을 옮겨 다녔습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고, 그러면서 책에 더욱 탐닉하는 어린이가 됐습니다.

한강의 가족은 1980년 1월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한강이 열 살 때의 일로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장군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군부는 광주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평화 시위를 총칼로 짓밟고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습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여 조직한 시민군이 경찰서에서 확보한 무기로 무장하자 계엄군은 일시적으로 광주 밖으로 물러납니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에 비견되곤 하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가장 극적으로 전개된 시간은 아흐레. 5월 18일부터 계엄군이 도청을 공격해 시민군을 사살하는 작전을 벌인 27일까지 사망자만 최소한 200명으로 집계됩니다. 당시 군부의 공식 집계가 워낙 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했던 탓에 사상자 통계는 워낙 들쭉날쭉해 2천 명도 더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쿠데타 이후 스스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에게는 학살자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일로 작가 한강이 가족을 잃지는 않았지만, 이후 그녀의 고향 광주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한강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Human Acts”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판된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소설을 번역한 것도 데보라 스미스입니다. 소설은 15살 소년 동호가 폭풍우와 함께 돌아오지 않는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계엄군은 동호가 나고 자란 광주를 찢어놓았고,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희생자 가운데는 동호의 가장 친한 친구 정대도 있었습니다. 동호는 친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합동분향소이자 임시 시신 안치소가 되어버린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분류하고 수습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주검들의 혼을 위로하는 일도 함께하던 동호는 죽음이 시신을 어떻게 엄습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봅니다. 상처 난 부위의 살들이 먼저 썩고 발가락은 마치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습니다.

이따금 애국가가 들려 옵니다. 밖에서 숨진 시민들의 장례를 약식으로 치러주고 있는 겁니다. 동호는 슬픔에 잠겨 결국 시민들을 살해한 것이 나라인데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은숙 누나는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동호는 자신이 궁금했던 것,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훨씬 더 크고 추상적이며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질문 다발임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그 내용은 사라지지 않는 잔혹함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것일 겁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인혜가 얻은 깨달음도 동호가 느꼈던 것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가 살아오고 버텨온 인생이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존엄성을 갉아먹으며 연명해왔을 뿐이라는 쓰라린 깨달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소설의 4장에서 동호는 다시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의 총에 사살됩니다. 두 손을 들고 항복의 표시를 하고도 죽었습니다. 소설의 각 장은 짧은 삶이지만 동호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은 인물 개인이 겪은 아픔과 상처를 그려냈습니다. 8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가 뒤에 출판사에 취직해 학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을 맡게 된 이, 대학생이었다가 정치범으로 붙잡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미싱사로 일하다가 노동운동에 몸을 바치는 이,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일생을 아파하는 동호의 어머니까지. 소설은 시종일관 소년을 너라고 부르는 2인칭 화법을 유지하며 독자를 1980년 5월의 넋이 된 소년과 이어주고, 그렇게 우리를 광주의 아픔과 상처 속에 붙들어 놓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아마도 동호의 친구 정대의 혼이 동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2장 “검은 숨”(영문판 제목은 The Boy’s Friend, 1980)일 겁니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를 보러 광장에 갔다가 군인이 쏜 총에 맞습니다. 피 흘리며 쓰러진 정대를 향해 달려오던 다른 시민도 총에 맞아 쓰러지고, 겁에 질린 동호는 건물 담벼락에 숨죽인 채 쭈그리고 앉아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는 친구 정대의 발을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군인들이 주검이 된 정대의 시신을 쓰레기 치우듯 싣고 가버렸습니다. 동호에게 이 모든 장면을 넋두리하듯 털어놓는 정대의 혼은 산더미처럼 쌓이는 시신들 사이로 흘러내린 피를 타고 몸에서 빠져나왔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 빠진 풍선처럼 구천을 떠돌며 동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대는 혼이 되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한 과정을 담담히 설명하고, 동호는 그 이야기를 다시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서로 닿듯 혼들은 온 힘을 기울여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정작 혼끼리 말을 걸고 이야기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이 부분을 데보라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습니다.

… sad flames licking up against a smooth wall of glass only to wordlessly slide away, outdone by whatever barrier was there. (*옮긴이: 이 부분을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 “혼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투명한 유리벽 같은 것이 있어서 슬픈 영혼들은 그 유리벽을 한없이 더듬고 핥지만 서로 끝내 닿지 못하고 스러지고 말아.” 정도가 됩니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잊어버리고 지우려 노력하는 동호와 달리 정대는 오히려 흉하게 짓이겨진 자신의 주검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았을 때를 기억해내고 복구해내려 애를 씁니다. 한강의 작품에서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고 거기서 멀어지려는 인물은 대개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끔찍한 삶을 삽니다. 반대로 자신을 향한 존재적 위협을 성찰하고 끌어안는 이는 최소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습니다. 무서운 기억, 끔찍한 과거를 돌아보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상처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고 나면 일말의 안도감이 찾아오기 마련이죠.

데보라 스미스는 온라인 매거진 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번역한 과정에 관해 글을 기고했습니다. 스미스 씨는 한강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텍스트에 직접 언급되지 않은 어떤 이미지들이 행간 곳곳에서 아주 강렬하게 떠올라 온몸을 사로잡는 느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드물게 의미를 부연했던 표현을 몇 가지 인용했는데, 그 가운데 앞서 <소년이 온다>에서 함께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혼들을 묘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차스 윤 교수는 <채식주의자>의 번역에 관한 글에서 자신은 스미스의 번역을 아주 좋아하지만, <The Vegetarian>은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수준을 한참 넘어 사실상 새로 창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스미스는 자신이 아무런 표현이나 억지로 보탠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맞섰습니다. 즉, 한국어로 쓴 원작을 읽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원문 어딘가에 그런 표현이 있어 잔상이 남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기에 영어로 옮길 때 그 표현을 덧붙여도 어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실 이는 원작자와 번역가가 으레 겪는 과정과 좀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원저자와 번역가의 관계를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강 작가는 실제로 자신은 스미스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다며 번역 과정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인 로버트 로웰이 번안시 “모방(Immitations)”을 통해 언급한 번역에 관한 주장이 떠오릅니다. 윤 교수는 앞서 LA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에즈라 파운드의 시 “Cathay”와 번역에 얽힌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데보라 스미스가 언급한 효과는 사실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가 느꼈으면 하는 바람일 겁니다. 활자로 된 작품에서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아야 그 이미지를 오롯이 자신의 경험으로 투영해낼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작품에 온전히 빠져 이를 소화해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또한, 이런 방식은 작가로서 한강이 지향하는 바와도 근본적으로 맥이 닿아있습니다. 지난 2015년, 한강은 영국 노리치에서 열린 한 번역 워크숍에 참석한 경험에 관해 기고했는데, 당시 이 워크숍에는 데보라 스미스를 비롯해 한강의 작품을 영어로 옮기는 쉽지 않은 작업을 수행하던 여러 번역가가 참석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기고문에 워크숍에 참석차 영국에 갔을 때 자신이 꿨던 꿈을 언급합니다.

하얀 침대 속에 누군가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이 흰 천에 덮여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그녀가 생각하는 말들을 내가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야 해…. 아니야, 이건 너무 평이하다.’, ‘나는 지금 꼭 일어나야겠어…. 아니, 이건 너무 밋밋하다.’, ‘나는 이 침대를 떠나야 해…. 아니, 이건 어색하다.’

Someone was lying in a white bed, and I was quietly watching them.Though the sleeping figure’s face was covered by a white sheet, she could hear what the person was saying. “I have to get up now . . . no, that’s too flat.” Then “I really will have to get up now . . . no, that’s too bland.” And: “I have to leave this bed . . . no, that’s awkward.

(이 기고문을 영어로 번역한 것도 데보라 스미스입니다.)

좋은 번역이란 살아 숨 쉬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한강 작가의 무의식이 꿈에 반영됐는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흰 천에 덮여 있더라도 그 자체로 어떻게든 뜻이 통하고 이해가 되는 그런 번역이 좋은 번역이겠죠. 한강 작가는 이어 “오전 섹션에서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두가 즐거워했으며, 누군가의 악몽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년이 온다> 영문판은 원작의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를 “The Writer, 2013″이란 제목으로 마지막 장에 배치했습니다. 소설은 에필로그를 쓴 이듬해인 2014년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작가 한강은 이 장에서 소설의 주인공 동호가 자신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한강은 정대와 동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 비할 데 없는 극심한 고통이었다며 하루에 길어야 서너 문장을 쓰는 게 다인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에 관해 제대로 된 글을 쓰려고 한강은 관련 역사 자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계속 꾸게 되는 꿈 때문에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취재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느 날에는 어딘가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지리라는 소식을 미리 들었는데, 자신에게 이를 막을 힘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꿈을 꿨고, 또 다른 날은 타임머신을 발견해 1980년 5월 18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다 꿈에서 깨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품에 완전히 몰두한 나머지 꿈을 꿔도 온통 작품에 관한 꿈만 꿀 만큼 무의식까지 작품으로 도배되는 것을 마다할 작가는 없을 겁니다. 그만큼 품을 들여야 좋은 작품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매번 등장인물이 이글거리는 화염 한가운데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꿈이라면, 그래서 몸서리치다가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나는 꿈이라면,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해서 스스로 심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꿈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한강 작가 본인과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느낀 공포와 악몽은 똑같은 것이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잔혹한 폭력의 기억을 도저히 떨쳐내지 못하고 평생 그 기억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그 공포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한강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한강이 한국어로 쓴 글을 다시 한번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겼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종종 언급되는 상황을 한국에서 지켜보며 쓴 글입니다.
외국 언론들은 종종 세계가 두려워하거나 골칫거리로 여기는 북한에 대해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점을 신기하다는 듯이 보도한다. … 그러나 이러한 고요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전쟁의 공포를 극복했다는 방증이 아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며, 아주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순간적으로 그런 해묵은 공포가 내보이기도 한다.
작가 한강에게 글쓰기도, 번역도 마찬가지 작업입니다. 한국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근원적인 두려움과 같은 단단히 쌓인 감정을 들춰내고 관찰한 뒤 그 감정을 심어놓은 인물을 소설 속에 재현해내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난해 11월 영국에서는 한강의 신작 소설 <흰>이 <The White Book>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습니다. 이번에도 번역은 데보라 스미스가 맡았습니다. 책에서 작가 한강은 어린 딸아이를 잃는 어미의 고통과 그로 인해 애도하는 행위 자체를 고찰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흰색은 생과 사, 비탄과 예술적 창조를 모두 아우르는 순수한 상징입니다. 한강은 일부러 소설책의 몇 쪽을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빈 종이로 남겨뒀습니다. (한강이 영국에서 열린 번역 워크숍에서 언급한 악몽 속에 등장한 하얀 천에서 비슷한 모티프가 보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강은 자신의 글이 상처가 난 곳에 바르는 하얀 연고나 상처를 덮는 하얀 천처럼 깨끗한 무언가로 바뀌어 독자들에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 한강에게는 실제로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가 있었는데, 어차피 이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숨을 수 없다면 언니가 느꼈을 고통을 어떻게든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강은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한국 국민은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군사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을 대거 파병했고,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에 일어나기 몇 달 전 측근에게 살해당한 인물입니다. 한강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 열린 촛불집회 가운데 자신도 참가했던 몇 차례 집회를 언급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시민들이 참여한 가장 큰 집회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지난 촛불집회 중에는 시민들이 모두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끄고 어둠은 반드시 가라앉게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거리에서 아로새긴 장면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한강은 이를 가리켜 “우리는 그저 촛불이라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라고 썼습니다. 어쩌면 한강의 작품에 묘사된 행위, 혹은 한강의 꿈에 나타난 이미지와도 방법이 닮았습니다. 촛불은, 그 불꽃은 바람 앞에 나약하고 쉬이 꺼지기도 하지만, 죽은 이를 추모하는 데도, 또한 산 자의 앞길을 비추는 데도 그 무엇보다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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