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 본 전시 배급제와 정의로운 세계 (1/2)
2018년 1월 10일  |  By:   |  세계  |  No Comment

* 글을 쓴 인문학자 브루스 로빈스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올드 도미니언 재단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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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창 미국을 휩쓸었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때 모두가 외치던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는 99%다!”입니다. 물론 엄밀히 따져 전체 인구 가운데 가진 자 1%와 못 가진 자 99%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있던 건 아닙니다. 이 구호 자체가 애초에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극소수 기득권층과 부자에 비해 갖지 못한 평범한 이들이 92%나 85%, 혹은 66%가 아닌 99%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부각하는 데 1% 대 99% 같은 구도 만큼 극적인 수치가 없었기 때문에 이 구호가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아마 상당히 다른 양상이 나타날 겁니다. 런던이나 뉴욕, 시드니에 사는 사람이 ‘내가 이 세상의 99%요’라고 말하면, 아마 다른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칠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진 자 1%에까지 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위 10% 안에는 들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에 전 세계의 부 대부분이 집중돼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한 거부 몇 명이, 혹은 집단으로 보더라도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 부유층 일부가 온갖 재화와 서비스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사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폐기물을 배출하는 곳도 사실상 정해져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나 어린이 영양 상태에 관한 통계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브란코 밀라노비치가 수십 년에 걸쳐 줄곧 주장했듯이 한 나라 안에서의 경제적 불평등도 심각한 문제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불평등 문제 만큼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불평등은 분명 잘못됐으며, 언젠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막상 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대개 누구나 문제는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몇몇이 머리를 맞대는 정도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는 초국가적인 체계 아래 돌아가는데, 구속력 있는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정치는 기껏해야 한 나라의 국경을 좀처럼 넘지 않습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는 나라에서도 외국인에게 참정권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외국인들의 삶이 그 나라의 정치 상황과 새로운 정책에 큰 영향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표인데, 외국인들에겐 표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당이 전 세계적인 경제 불평등을 언급하려 할까요? 하등 쓸데없는 이슈 취급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침 조지 오웰이 그 문제를 제기하고 다뤘습니다. 오웰이 내놓은 해법은 그 어느 때보다 눈여겨볼 만합니다.

1939년 오웰은 “피부색이 검은 이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현실(Not Counting Niggers)”이라는 제목의 상당히 도발적인 글을 한 편 씁니다. 이 글에서 오웰은 영국인과 인도인 사이에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나는 소득 차이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서 인도인들의 다리가 웬만한 영국 남성의 팔뚝보다도 가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마도 셰필드의 골목을 둘러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분명한 건 영국인들의 평균 소득은 인도인들의 평균 소득보다 12배 높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명분이 아무리 좋다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연대와 연합이 이뤄질까?

1943년에는 친구 물크 라즈 아난이 쓴 책의 서평에 영국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썼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유럽 대륙에 계급 투쟁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도저히 믿지 못한다. 여전히 그들의 눈에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영국인 노동자도 엄연히 자신들을 착취해가는 집단의 일원일 뿐이다.

오웰은 인도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잘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인도인들과 같은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몇 가지 그의 다른 저술과 행위를 통해 이를 유추할 수 있는데, 그는 먼저 1936년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수백만 인도인들이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간다.

6년 뒤에는 이렇게도 썼습니다.

사실 대영제국의 프롤레타리아 가운데 영국 본토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에 있다. 우리는 이런 체제를 살고 있다.

오웰은 분명 영국에선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라도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피착취계급이 아니라 착취하고 군림하는 계층에 속할 수 있음을 인정했던 겁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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